2006년 1월에 발표된 EP '4℃ 유리 호수 아래 잠든 꽃' 이후, 제목처럼 잠들어 약 40개월만에 동면에서 깨어난 '미스티 블루(Misty Blue)'.

약 40개월만이지만, '미스티 블루'가 완전히 동면만 한 것은 아닙니다. 소속사인 파스텔뮤직의 컴필레이션들을 통해 '여름궁전', 'Slow days', '한 쪽 뺨으로 웃는 여자'같이 주옥같은 곡들을 발표했습니다. 또 'MBC 베스트극장'의 '동쪽 마녀의 첫번째 남자'의 배경음악에도 참여했구요. 그 동안 밴드에도 변화가 생겨서  원래 3인조 였지만, 기타리스트가 탈퇴하고 2인조를 유지하고 있지요. 미스티 블루의 멜로디메이커 '최경훈'은 2008년에 '벨 에포크(Belle Epoque)'라는 미스티 블루의 쌍둥이 여동생쯤 되는 팀을 결성해 앨범도 발표했지요.

'1/4 Sentimental Con.Troller - 봄의 언어'라는 긴 제목은 지난 앨범, EP와 마찬가지로 여전합니다. 너무나 이쁜 앨범 커버 역시 '김지윤' 작가의 일러스트로 꾸며져 있어요. 또 얼굴을 가리고 있지요. 언제나 소녀는 부끄러움이 가득합니다. 'controller'가 아니고 'Con.Troller'입니다. 'con'은 사전을 찾아보면 '반대하여'라는 뜻을 갖고 있네요. 'troller'는 사전에 없지만 'troll'은 '명랑하게 노래하다'라는 뜻이 있구요. '명랑한 노래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미스티 블루의 노래 가운데 명랑한 노래는 별로 없었잖아요. 이제, 가장 중요한 수록곡을 둘러보죠.

intro라고 할 수 있는 '04:07:02'는 알쏭달쏭의 제목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시간일지도 모르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컷의 번호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거리 넘어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는 갑자기 클로즈 업되고 또각거리는 구두는 어디론가 급하게 걸어갑니다.

'봄'과 떼어놓기 힘든 '왈츠', '봄의 왈츠를 위한 시계'는 똑딱 똑딱 돌아가는 시계가 아니라 '쿵작짝 쿵작짝' 느리게 흐르는 시계입니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는 꼭 '햇살 좋은 날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잎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오프닝 테마같은 느낌입니다. 그 영화의 제목은 바로 이 곡의 제목이겠구요.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보컬 '은수'의 노래는 감정기복이 없기에 허전함이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가장 잔인한 '4월','4월의 후유증'은 큰 일교차때문에 감기 걸리기 쉬운 4월처럼 변덕스럽습니다. 투명한 느낌의 쟁글거리는 기타 연주는 '미스티 블루표'라고 알려줍니다. '이진우'라는 남자 보컬이 참여했는데 그 건조함은 촉촉하지 않은 은수의 목소리가 생기 넘치게 들리게 할 정도입니다. 건조한 명사와 동사의 나열은 결코 문장이 될 수 없습니다. 이야기가 될 수 없어요. 진실한 관계나 추억이 될 수 없지요. 4월의 후유증은 어쩌면 4월의 그 건조함을 닮아서 건조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증상일지도 모르겠네요.

'봄'과 '4월', 역시 계절과 달력에 민감한 미스티 블루랍니다.

'여름궁전'이나 '화요일의 실루엣'처럼 역시 미스티 블루다운 제목, '하늘 그네'는 그리움에 대해 노래합니다. 기타 초보처럼 막 치는 느낌의 기타 연주로 시작하여 차오르는 감정처럼 풍성해지는 연주가 이 곡의 심상을 대변해줍니다. 그리고 이런 점이, 보컬의 기교로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미스티 블루의 감정 표현법'일지도 모르죠.  몸도 마음도 이만큼 커져서, 진심보다는 이해타산이 앞서서 마음보다는 머리가 앞서서, 이제는 돌아갈 수 없겠죠.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지면 결국 땅으로 돌아오는 그네처럼, 좇아도 좇아도 잡을 수 없는 무지개처럼 기억은 언제나 잡을 수 없는 시간을 추억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도쿄(Tokyo)'가 아니에요. 하지만 '동경 센티멘탈 클럽'은 일본 순정 만화 제목같습니다. 그리고 순정 만화처럼 미스티 블루다운 '파스텔톤 소녀의 감수성'을 노래합니다. 소녀들의 비밀스런 대화같은 곡입니다.

독특한 제목의 '향기 알리섬'은 수록곡 가운데 유일하게 활기차고 밝습니다. '향기 알리섬'은 사실 꽃의 이름이고 꽃말이 '뛰어난 아름다움'이기에 그렇게나 밝은가 봅니다. 가사에 나오는 'Shirley Valentine'은 영화의 제목으로 자신을 찾아가는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지난 EP에서 노래한 '봄에게 미처 배우지 못한 것'을 이제는 배웠나봅니다. 미스티 블루 속의 소녀도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되려나봅니다.

앨범의 부제인 '봄의 언어'는 아쉽게도 마지막 곡입니다. 계절이 변하듯 사람의 마음도 변하고, 봄이 지나면 봄의 언어는 쓸 수 없겠죠. 봄의 언어는 끝나지만 이 EP의 제목 '1/4 Sentimental Con.Troller'에는 힌트가 숨어있습니다. 이번 EP는 큰 퍼즐의 1/4일뿐이고 나머지 3/4도 만나볼 수 있답니다. 바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주제로 한 4장의 연작 EP가 계획되어 '봄의 언어'가 첫번째 작품으로 앞으로 세 장의 EP가 남았다는 즐거운 이야기죠. 계획으로만 끝나지 않고, 꼭 줄줄이 나와주길 바랍니다.

컴필레이션에만 수록되었던 곡들도 수록되길 바랬었는데 그러지 않아 아쉽습니다. 혹시 '여름궁전'은 다음 EP에는 수록되려나요? 다음 EP들의 제목도 '언어 시리즈(여름의 언어...)'는 아니겠죠? 개인적으로는 '여름의 우울'을 예상해봅니다. 그럼 여름 EP에서 만나요. 별점은 4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