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도 100% 팝, '미스티 블루(Misty Blue)'의 사계절 연작 EP, 그 두 번째 이야기, '2/4 Sentimental StoryTell(h)er - 여름, 행운의 지휘'

미스티 블루가 지난 5월에 발매된 EP '1/4 Sentimental Con.Troller - 봄의 언어(이하 봄 EP)'이어, 약속대로 여름을 맞아 약 3개월만에 '2/4 Sentimental StoryTell(h)er - 여름, 행운의 지휘(이하 여름 EP)'를 발표하였습니다. 지난 봄 EP가 독특하고 중의적인 제목을 달고 있었는데 이번 여름 EP도 마찬가지입니다. 'Sentimental Storytell(h)er'는 괄호안에 들은 'h'을 무시한다면 '감성적인 이야기꾼'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그 h를 괄호 밖으로 빼내면, (문법에는 어긋나지만) 'Sentimental Story tell her', 바로 감성적인 '이야기가 그녀에게 말하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앨범 커버의 일러스트는 역시 여전히 독특합니다. 얼핏 본 첫 인상은 어두운 푸른색 계통 때문인지, 마치 현상되기 전의 필름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름답게 장식된 모자를 쓴 여자아이의 얼굴이 보이고, 그 여자아이는 손으로 모자를 잡고 있습니다. 여자아이의 등장은 '역시 미스티 블루'라고 하겠습니다. 또  바다를 연상시키는 푸른색 때문인지, 여름바다의 시원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첫 곡 'Picnic'은 이 여름 EP가 봄 EP와는 다르면서도 연장선에 있음을 알리는, 모순적인 오프닝 트랙입니다. 도입부의 '알람이 나를 깨우며'는 멜로디는 봄 EP 수록곡 '4월의 후유증'의 일부분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징글거리는 기타 소리는, 이제는 아득한 데뷔앨범 '너의 별 이름은 시리우스B'에서 들을 수 있었던 발랄함을 예고합니다. 사실 제목부터 발랄함이 느껴지지 않나요?

'빨간 벽돌집 바이엘'은 현재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청취자들에게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트랙입니다. 제 어린 시절, 바로 '피아노 학원' 열풍이 불던 그 시절, 피아노 입문생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바이엘이 들은 피아노 가방' 소절이나, 모 피아노의 CM송을 연상시키는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소절이 그렇습니다. 미스티 블루의 두 멤버도 염두해두었는지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올해 관람했던 '행복을 그린 화가 - 르누아르전'에서 본 유명작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더불어 제가 어린 시절 살던 주택가는 대부분 빨간 벽돌의 이층집 주택들이이기도 했지요) 'Picnic'에서 미심쩍었던 발랄함을 확인시켜줍니다.

'Moderate Breeze'는 우리말로 '산들바람'의 하나인 '건들바람'을 의미합니다. 건들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새파란 바다가 닿아있는, 아무도 없는 해변을 걷는 상상을 해보세요. 바람에 흔들리는 가사들은 바람따라 시시각각 변하는듯한 붓터치로 그려진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강하지도 않은, 알맞은(moderate) 세기의 바람인 건들바람처럼, '지금까지의 미스티 블루'를 생각하면 ('날씨맑음'만큼이나) 너무 발랄했던 '빨간 벽돌집 바이엘'의 분의기를 환기시킵니다.

'여름, 행운의 지휘'는 여름 EP의 타이틀 곡답게 가장 흥미로운 트랙입니다. 고민을 던지고, 운명을 이기고, 사랑을 기다리는 진취적 분위기와 소녀같은 설램을 노래한 가사는 데뷔앨범의 '일요일의 오디오'가 생각납니다. 밝은 분위기를 더 빛내주는 브라스는 '너의 별 이름은 시리우스B' 수록곡 '8월의 8시 하늘은 불꽃놀이 중'을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두 곡 모두 8월을 위한 곡들입니다. 봄 EP가 역시 데뷔앨범 수록곡들인 'Spring Fever'와 '너의 별 이름은 시리우스B'의 연장선이라면, 여름 EP는 바로 '일요일 오디오'와 '8월의 8시 하늘은 불꽃놀이 중'의 연장선이 아닐까도 합니다. 그렇다면 가을 EP는 제가 데뷔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두 곡인, 'Daisy'와 '화요일의 실루엣'의 연장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겨울 EP는 EP '4℃ 유리 호수 아래 잠든 꽃' 수록곡인 '봄에게 미처 배우지 못한 것'의 연장선이라면 좋겠구요.

'빗방울 연주'는 미스티 블루의 보사노바에 대한 애환이 담겨있습니다. 데뷔앨범의 'Cherry'에서 흥겨운 보사노바 리듬으로 애절한 신파극 'Cherry'를 그려냈던 미스티 블루의 두 사람은 여름의 온도에 힘을 얻어 편안하게 즐길만한 보사노바를 만들어냈습니다. 비내리는 여름날 창이 넓은 카페에 앉아 들으면 참 좋겠습니다.

'Slow days'는 독특한 컴필레이션 앨범 'Siamese Flowers'에 수록된 곡으로, 'Siamese Flowers'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 묻혀버리기에는 아까운 곡이었는데 이렇게 다시 빛을  보게되어 반갑기까지 합니다. 미스티 블루의 음악치고 날카로운 연주와 강한 보컬을 들려주면서도, 미스티 블루다운 감수성을 들려주는 곡이기에, 또 다른 컴필레이션 앨범 'Cracker'에 수록된 '여름궁전'과 더불어 정규앨범에서 보았으면 했던 곡이었지요.

마지막 곡 '여름 몽상'은 이번 EP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입니다. '여름 몽상'이라는 제목으로만 봐서는 '여름궁전'의 후속편일 법하지만 전혀 그렇지는 않습니다. 쓸쓸함과 그리움이 교차하는 보컬과 말랑말랑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연주, 열기가 식어가고 바람이 점점 서늘해지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부르는 분위기는 완연히 '미스티 블루표'입니다. 여름이 끝나가면 여름의 열기가 만들어낸 그 몽상들도 끝이 나겠죠.
 
'봄의 언어' 발매 이후 여름 EP의 알려진 부제는 '여름의 온도'였는데 '여름, 행운의 지휘'로 바뀌었네요. '봄의 언어'가 타이틀 곡은 아니지만 수록곡과 같은 제목이었는데, 여름 EP도 수록곡 제목으로 맞추려고 그랬을까요? 봄과 여름, 두 조각이 공개됨으로서 큰 퍼즐의 절반이 공개되었습니다. 완성될 그림이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네 장의 EP 후 나올 2집은 더욱더 궁금해집니다. 연작 EP의 베스트 곡들을 모아서 2집을 만드려나요? 아니면 전혀 새로운 곡들이 담기려나요? '여름궁전'이나 '한 쪽 빰으로 웃는 여자'도 그 때 즈음에는 수록되겠죠? 봄보다 더 즐길 만한 여름을 들려준 '미스티 블루', 가을과 겨울이 더욱 기대됩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