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일,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자 '추석' 전날 홍대 인근에 위치한 클럽 '빵'에서는 '특별한 공연'이 있었습니다. 사실 금요일은 빵의 정기 공연이 있는 날로 별로 특별할 것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추석 연휴에 펼쳐지는 공연이라는 점만으로도 공연하는 밴드들에게나 관객들에게나 설명하기 힘든 특별함을 부여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위는 가족과 함께'라는 생각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한가위에 인디밴드 공연'은 충분히 특별하지 않나요?

공연은 7시 30분 시작이었고 부랴부랴 달려간 발걸음은, 제 시간에 만난 버스와 급행열차 덕분에 대략 50분 정도 일찍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연휴 때문인지, 홍대 인근이 모습은 낯설었습니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었지만 많은 음식점, 상점들이 문을 열지 않아서 마치 새벽녘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 쓸쓸함을 더했죠. 처음 도착했을 때는 기대보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어서, 역시 썰렁한 공연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7시 30분이 되기까지는 여유가 있었지만 10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날도 싸늘하고 밖이 어둡고 해서 리허설을 들으며 지하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30분이 가까워져서 입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밖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나봅니다. 다행히도 빵의 좌석들은 거의 다 찼으니까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쓸쓸한 홍대의 빵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가장 쓸쓸한, 홍대의 살풍경을 보여준 날이었으니, 이날 빵에 온 사람들은 홍대에서 가장 쓸쓸한 사람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순서는 '데미안 더 밴드(Demian the band)'였습니다. 빵의 초창기인 2001년부터 빵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데미안은 2002년 말부터 지금까지 현재의 라인업으로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는, 돋보이지는 않지만 꾸준한, '빵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밴드입니다. 최근에는 다른 클럽들에서도 종종 공연을 하고 있는데, 이 특별한 공연을 위해서 연휴의 첫 날을 희생했습니다. 첫 곡은 지난 빵 공연에서 처음 만났던 곡 'Wolf'였습니다. 제목처럼 보름달 밤에 외로이 울부짖는 늑대가 떠오르는 도입부 기타연주가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그 외로움에 굴하지 않고 들판을 신나게 질주합니다. 이어지는 곡은 처음 듣게되는 곡으로, 제목에서 언어유희가 느껴지는 'Your god forgot'이었습니다.

세 번째 곡은 이 밴드의 1집 수록곡이기에 가장 익숙한 'Challenger'로 유일하게 간간히 싱얼롱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그루비하고 보컬과 코러스의 어우러짐이 인상적인  'I become to you'에 이어 역시 언어유희스러운 제목의 'Everybody's every party'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두 곡은 지난 공연으로 친숙해진 'fuckin' umbrella'와 'Vintage dance'였습니다. fuckin' umbrella는 제목도 제목이지만 반복적인 기타리프와 후렴구는 인상적입니다. Vintage dance는 댄서블한 리듬에 독특한 소리의 타악기(?) 덕분에 뇌리에 박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7년까지의 음악활동을 정리한 1집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신곡들은 더욱 댄서블한 느낌이 강합니다. 음악활동의 후반전를 보내고 있는 데미안의 행보를 기대해보죠.

두 번째 밴드는 빵 공연 일정표에서만 보았던 이름 '한음파'였습니다. 밴드 이름이 과연 무슨 뜻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장발의 보컬을 프런트 맨으로 하고 말 머리가 달린 독특한 현악기를 보유하고 있는 이 밴드의 음악은 더욱 궁금했습니다. 첫 곡은 몽환적인 느낌으로 시작하는 '초대'였습니다. 이 밴드의 앨범을 찾아보니 앨범에서도 첫 곡으로, 앨범이나 공연이나 시작으로 알리며 청자를 한음파의 음악세계로 '초대'하기에 적절한 곡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어 '200만 광년으로 부터의 5호 계획'이라는 긴 제목의 곡이 멘트 없이 이어졌습니다. '초대'보다는 한음파의 음악색을 더 잘 알리는 곡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하드락 사운드를 기반으로 메탈처럼 강한 연주를 감미한 이 밴드의 지향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사실 장발의 보컬에, 제 귀에는 (좀 더 부드러워진) 'Nickelback'의 'Chad Kroeger' 정도가 연상되는 음색에서 알아차려야했습니다.

그루비한 느낌의 '매미'에 이어 이 밴드의 곡들 중 가장 인상적인 '무중력'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곡에서 보컬이 준비했던 '말 머리가 달린 현악기'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검색을 통해서 알아보니 이 현악기는 몽골의 전통악기 '마두금'이라고 합니다. '하아!'라는 탄성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름이었습니다. 악기 위에 달린 '말 머리'를 의미하는 '마두(馬頭)'일 테니, 너무나 단순하고 명확한 이름이니까요. 집시 음악처럼 유목 민족의 애환이 담겨있을 법한 마두금의 연주와 함께 흐르는 하드락 사운드는, 제 귀를 새로 깨우는 느낌이었습니다. 최근 대체적으로 '여성보컬은 우호감 남성보컬은 비호감'이라는 일종의 편식적으로 음악 감상을 하고 있고, 하드락이라는 장르 자체는 몇몇 곡을 제외하고는 즐겨듣지 않는 장르이지만, 이 곡 '무중력'만은 묘한 마력을 갖고 귀를 열게 했습니다.

'독감'이라는 곡은 퇴폐적인 느낌으로, 앨범에 참여한 '요나'의 이름을 보면 왜 그런지 끄덕일 만했습니다. 마지막 두 곡은 '독설'과 '참회'였는데 순서가 재밌습니다. 독설을 내뱉고 참회한다는 의미의 순서였을까요? 앨범에서도 마지막 두 트랙이 이 곡들이지만, 순서는 참회 다음 독설로 공연과는 반대더군요.

마지막은 앞선 두 밴드 데미안과 한음파 모두 멘트 중에 덕분에 객석이 가득 찼다고 언급하기도한, 슈퍼밴드 '로로스'였습니다. 등장은 했지만, 독특한 밴드 구성과 관객을 압도하는 사운드를 위해서 인지, 세팅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긴 기다림 끝에 '로로스표 사운드'는 시작되었습니다. 첫 곡은 바로 너무나 장대해서 EP 'Dream(s)'에도 세 트랙으로 잘라서 수록되었던 'Dream(s)'였습니다. 장장 17분에 이르는 시간 동안 Dream(s) 1과 2를 들을 수 있었죠. 너무나 길고 변화가 많은 곡이라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 곡을 듣고 있자면 인류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느낌입니다. 선사시대를 시작으로 문명의 시작과 고대와 중세를 거쳐 전체주의와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혼란의 시대와 파멸로 치닫고 있는 현재의 인류를 거쳐, 지구가 먼지처럼 사라져버리는 비극의 미래로 끝이 납니다. 인류의 어긋난 꿈처럼 말이죠.

한바탕 '꿈'이 지나간 후에는 (사실 짧지 않지만 비교적) 짧은 곡들이 이어졌습니다. 마법사를 만나기 전까지 쓸쓸한 신데렐라(혹은 동물들을 만나기전 콩쥐?)의 쓸쓸한 모습을 노래하는 듯한 'She didn't go to the party', 한 폭의 동양화 혹은 시조 같이 '정중동'의 심상으로 가득한 '방안에서'가 이어졌죠. 메인보컬 및 키보드 '도재명'이 고릴라 인형을 보고 만들었다는 'My cute gorilla'는 싱글에 수록되었었지만 1집에는 빠졌던 곡으로, 그래서 그런지 참 오랜만에 라이브로 듣게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마지막의 속주는 새로웠구요. 예정된 마지막 곡은 '너의 오른쪽 안구에선 난초향이 나'였습니다. 역시 서정적으로 분위기 잡는 곡인데, 도입부부터 실수로 그 분위기는 조금 어긋나버렸죠. 5분 가까이 되는 곡이지만, 다른 곡들이 길어서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졌습니다.

당연히 준비된 앵콜로는 앨범과는 색다른 느낌의 '비행'이었습니다. 그런 라이브에서만 들을 수 있는 색다름이 바로 공연장을 찾게하는 매력 포인트겠죠? 한 곡이 더 준비된듯 했지만 악기의 문제로 공연을 마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방안에서', '너의 오른쪽 안구에선...'과 더불어 로로스의 초기 3대 서정곡이라고 할 수 있는 'It's raining'을 들을 수 없었던 점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이미 준비된 곡들도 대단했기에 아쉬움은 크지 않았습니다.

시작에 홍대에서 가장 쓸쓸한 사람들이 모인 공연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더불어 가장 즐거운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공연이라고도 해야겠네요. 인디음악을 사랑하고 공연장을 즐겨찾는 사람들이 아니고는 추석 전날 빵을 찾기 어려웠을텐데, 그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악을 배불리 들을 수 있었을테니까요. 짧은 연휴가 무척이나 아쉽지만, 세 밴드의 멋진 음악 선물에 그나마 아쉬움을 조금은 잊을 수 있는 밤이었습니다. 10월 2일의 밤, 빵을 찾은 모든분들이 좋은 꿈을 꾸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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