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0주년이 되는 파스텔뮤직의 2012년은 어느 떄보다 바쁜 해가 아닌가 싶다. 10주년 기념으로 지난 10년을 뒤돌아보는 에세이북 '조금씩 가까이 너에게'도 발매했고, 5주년과 7주년보다 더 큰 볼륨이 될 앨범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스텔뮤직의 오랜 팬들에게 가장 큰 재미는 바로 '콘서트'가 아닐까? 한 권 분량이나 되는 '조금씩 가까이 너에게'이지만 그 한 권에도 담지 못한, 파스텔뮤직과의 수많은 이야기와 추억들을 기억과 마음에 품고 있는 팬들에게는 또 다른 추억이 될 테니까.
 
파스텔뮤직의 레이블 공연들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데, 2005년 아마도 3주년 기념이었을 '사운드홀릭'과 '클럽 OTWO'의 공연들, 2007년 백암아트홀에서  해외 아티스트들까지 초청하여 큰 규모로 열렸던 5주년 기념 공연, 그리고 2009년 7주년 기념으로 열렸던 여러 공연들까지 모두 멋진 공연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11월 10일과 11일 이틀동안 열리는 10주년 기념 콘서트 'Ten Year After : Liver'는 최근 공연에 목말라있던 나에게 기대를 안겨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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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역 바로 옆 '메세나폴리스'라는 주상복합건물 안에 위치한 '인터파크 아트 센터'는 5주년 기념 공연이 열렸던 백암아트홀과 비교한다면 아담한 규모였다. 하지만 파스텔뮤직 소속의 국내 뮤지션으로만 꾸며진 라인업은 지난 어떤 파스텔뮤직의 레이블 공연보다 알차서, 요 몇년 사이 부쩍 성장한 파스텔뮤직의 입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파스텔뮤직의 입지만큼이나 성장한 인지도 덕분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콘서트를 예매해야 했고, 운 좋게 이틀 모두 앞쪽 자리를 예매할 수 있었는데 우연하게도 같은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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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파스텔뮤직의 이단아', 파스텔뮤직 소속의 유일한 레퍼인 '예슬로우(Yeslow)'가 사회로 등장하여 유창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달군었는데, 조용한 이미지가 강했던 파스텔뮤직의 기존 공연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었다. 그리고 10주년 콘서트를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 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공연은 '러블리벗'의 곡 '그 손, 한 번만'으로 시작했다.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 세 번째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노래를 부른 '강현준'과 등장한 러블리벗은 키보드를 연주했다. 공연이 궁금한 뮤지션이었는데, 한 곡만 들려주고 내려간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그만큼 오늘 등장 인물이 많다는 의미일 터이니, 다음 기회를 기약했다.

두 번째는 너무 오랜만에 보는 '어른아이'의 무대였다. 2006년과 2009년에 1집과 2집을 발표한 그녀는 꽤나 오래 파스텔뮤직과 함께한 뮤지션이라고 하겠다. 첫 날 공연은 '리퀘스트쇼'로 팬들이 신청한 곡들을 들려주는 날인데, 최근 소식이 없었던 어른아이였지만 누군가 잊지 않고 그녀의 노래를 신청했나보다. 두 앨범의 대표곡 'Annabel Lee'와 'Sad Thing'을 들려주었다. 파스텔뮤직의 첫인상인 잔잔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 그 인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녀였다.

다음은 놀랍게도 이 공연을 위해 '긴급 재결성(?)'한 남성 듀오 '재주소년'이었다. '조금씩 가까이 너에게'에서 재주소년의 글을 읽었거나, 재주소년 해체를 알리는 글을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기억할 '지났을 줄이야'를 멘트로 언급한 Sabo는 공연장을 웃음으로 채웠다. 'Afternoon'이라는 이름으로 파스텔뮤직에서 솔로 EP를 발표했던 경환은 '박경환'이라는 이름으로 정규앨범을 발표한다고 한다. 그런데 파스텔뮤직이 아닌 다른 레이블이란다. '타루', '요조', '루싸이트 토끼'에 이어 또 다른 뮤지션을 떠나보낸다니, 조금은 서글펐다.(이 여성 세 팀은 모두 지금, 과거 파스텔뮤직에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던 '올드피쉬'가 설립한, '매직 스트로베리 사운드' 소속이다. 인디 레이블 사이에서도 EPL의 맨유와 위성구단 같은 관계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서글픔도 잠시, 소년에서 청년이 된 두 남자는 소년 시절의 히트곡 '귤'과 '이분단 셋째줄'을 들려주고 뜨거운 안녕을 고했다. 언제가 무대 위에 함께 오른 두 사람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어지는 무대는, 이제는 파스텔뮤직의 안방마님(?)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파스텔뮤직과 오래 함께한 '한희정'이었다. 그리고 첫 곡은 '우리 처음 만난 날'이었다. '푸른새벽'의 해체 후, 솔로로 시작한 그녀의 첫 히트곡이라 할 이 노래를 들으면서 2005년 '사운드홀릭'애서 있었던 레이블 공연에서 처음 보았던 '푸른새벽'의 모습이 스쳐갔다. 그떄가 그렇게나 오래된 일이라니, 파스텔뮤직의 오랜 팬으로서 감회가 새로웠다. 이어서 '잔혹한 여행'과 '드라마'를 들려주고 그녀는 내려갔다.

다음은 몇 년째 '앨범 준비 중'인, 이제는 파스텔뮤직의 '만년 기대주'라고 할 수 있는, '이진우'의 무대였다. 그런데 앨범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어서 곧 나온다고 했다. 이제 다른 수식어가 필요하게 된 그는, '사랑의 단상'에 수록되었던 그의 히트곡(이라지만 음원으로 공개된 곡은 이 곡 뿐) '스무살'과 그의 첫 앨범에 수록될 '사랑은 이별을 부른다'를 들려주었다. '스무살'은 언제나처럼 그의 정규앨범을 기대하고 만들었고, '사랑은 이별을 부른다'는 그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게 했다.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까? 1부의 마지막은 바로 '에피톤 프로젝트(차세정)'의 순서였다. 음반으로만 듣던 그의 음악을 공연으로는 처음 보게 되는데, 많은 여성팬들이 그를 보기 위해 왔는지, 반응은 대단히 뜨거웠다. 인디밴드로서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는 '허밍 어반 스테레오' 이후, 음반 판매량과 공연의 관객 동원에서 명실상부 '파스텔뮤직의 기둥'이라고 불릴 만한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기 배우이자 가수인 '이승기'의 음반에 참여했다는 소식(더구나 이승기 측에서 먼저 제안했다는)과 이제는 '인디음악의 대세'가 되어가는 모습은 파스텔뮤직을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서도 뿌듯했다. 세 곡을 들려주었는데 2집 수록곡 '초보비행'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곡은 '이화동'이었다. 그리고 이 곡을 위해 앞서 공연했던 한희정이 다시 무대로 등장했다. 그의 공연이 궁금했고, 특히 세 곡이나 '한희정'과 함께한 듀엣이 궁금했는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전 무대에서도 목이 덜 풀렸는지 조금 불안했던 한희정의 목소리는 고음을 요구하는 이 곡에서도 왠지 불안했다. 마지막 곡은 지금의 에피톤 프로젝트를 있게 한 곡들 가운데 하나인 '눈을 뜨면'이었다.

휴식시간 없이 이어진 2부의 오프닝은 파스텔뮤직의 새 가족이된 '참꺠와 솜사탕'이었다. 3인조 혼성 밴드이고 남녀 보컬을 들려주 팀인데, 만화 제목같은 밴드 이름과는 다르게 진지한 감성의 두 곡, '공놀이'와 '비마음'을 들려주었다.

이어서 단독 공연이 보고 싶었지만 빈번이 기회를 놓쳤던 '캐스커(Casker)'의 무대였다. 그리고 당연히 전자음을 기대했는데, '융진'의 옆자리에 '준오'는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앉았다. 그리고 들려준 곡은 '향'이었다. 음반이 아닌 공연으로 보는 두 사람의 어쿠스틱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융진'의 뛰어난 보컬은 놀라웠다. 명료한 발음과 특별한 음성을 들려주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라이브가 아닌 음반을 듣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이어지는 곡도 역시 어쿠스틱으로 들려준 '나의 하루 나의 밤'이었다. 원래 앨범에서는 '마이 언트 메리(My Aunt Mary)'의 '정순용(aka Thomas Cook)'이 불렀던 곡으로 융진의 보컬로 들으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앨범에서 정순용의 목소리는 피로하고 지친 기분이 역력했다면, 융진이 부른 느낌은 그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있었다. 마지막 곡은 최근에 발매된 새앨범 수록곡인 '나쁘게'였다. 이 곡만은 어쿠스틱이 아닌 DJing과 함께 들을 수 있었다. 5집의 '물고기'랑 느낌이 비슷하지만 가사의 내용은 전혀 다른 곡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파스텔뮤직 소속 밴드 가운데는 가장 많은(듀오로는 5번째이지만) 6번째 정규앨범을 발매한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와 노련함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다음은 '에피톤 프로젝트'와 'Sentimental Scenery'를 잇는 파스텔뮤직의 '차세대 기대주'라고 할 수 있는 '헤르쯔 아날로그(Herz Analog)'였다. 그런데 각종 매체를 통해 공개된 사진보다 후덕한 모습은 사실 좀 충격이었다.(소개 없었다면 못 알아볼 뻔했다.) 곧 발매할 1집 수록곡 '오랜만이다'와 이미 발매된 EP 'Prelude' 수록곡 '살고있어'를 들려주었는데, EP 수록곡들 가운데 남성 듀엣이 인상적이었던 '살고있어'는 EP에서 함께 부른 '소수빈'이 등장하여 듀엣을 보여주었다. '살고있어', 곡의 끝맺음이 아쉽지만 남성 듀엣은 좋았다.

두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으니, 정화의 순서는 바로 '루시아(심규선)'이었다. 뮤지컬의 주연이기도 했던 그녀이기에 공연에서 모습이 참 궁금했었는데, 그녀에게 매혹될 수 밖에 없는 무대였다. 최근에 발표한 (무려 10곡이 수록된) EP '데칼코마니'의 타이틀 'Savior'로 시작하여 에피톤 프로젝트와 함께한 데뷔 앨범의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와 '부디', 총 3곡을 들려준 짧은 무대였지만 그녀가 남긴 인상을 뚜렸했다. 열정적인 보컬과 더불어 연주를 손으로 표현하는 듯한 그녀만의 독특한 제스처는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그녀의 무대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10일 공연에서 최고의 노래 실력을 보여준 두 사람을 꼽는다면 앞서 언급한 캐스커의 '융진' 더불어, 바로 '루시아'였다.

마지막은 역시 파스텔뮤직의 대표 뮤지션이라고 할 수있는 '짙은'이었다. 행복전도사같이 환한 웃음으로 등장한 그는 대부분 우울한 곡들을 들려주었던 앞선 뮤지션들과 다르게, 행복 가득한 'Sunshine'으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곡은 역시 그 기운을 이어가는 Feel 'Alright'이었다. 아마도 이 공연을 잘 즐기지 못한 관객들에게는 안도하게 만드는 짙은의 모습이었으리라. 마지막 곡은 'TV Show'였고, 그렇게 즐거운 쇼는 끝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관객들은 앵콜을 연호했고, 앵콜로는 '백야'를 들려주었다. 곡 중간에는 이 날 공연에 참여했던 모든 뮤지션들이 등장하여,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뮤지션들을 한 꺼번에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되었다.

나오는 길에 이 날 공연했던 뮤지션들의 앨범이 팔지 않았던 점은, 파스텔뮤직의 유일한 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