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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시행한다는 '원격진료'. 듣기에는 상당히 미래적이고 진취적이고 그럴싸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과연 기술적 실효성이나 복지로서의 사업성을 올바르 평가했는지 의심이 듭니다. 의사로서 현재 원격진료의 문제점들을 생각해봅니다.

1.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점으로, 진료는 원격으로 하지만 어차피 처방된 약의 조제는 원격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약국들의 병의원 근처에 있는데, 원격으로 진료를 받고 다시 약 때문에 약국으로 가는 상황에서 원격진료는 '빛 좋은 개살구'처럼 보입니다.

2. 우리나라 어르신들 뿐만 아니라 아직 많은 사람들이 병의원에 가면, 주사라도 한 대 더 맞고 물리치료처럼 간단한 처치라도 한 번 더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원격진료 장비가 설치되더라도, 이런 선호도 때문에 한두 번 사용하고 방치될 공산도 큽니다.

3. 원격진료 장비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지방 면단위에 사시는 어르신들 대부분은 컴퓨터 조작을 못하실 뿐만 아니라, 글을 못 읽는 분들도 종종 계십니다. 이런 분들이 원격진료 컴퓨터 장비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까요? 처음에 교육한다고 해도, 한두 번으로 교육으로는 익숙해지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교육해도 이해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구요. 더구나 청력이나 시력이 떨어져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시력 저하의 경우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고, 청력 저하의 경우 정말 옆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해도 진료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이 원격진료 장비를 이용할 수 있을까요? 의사나 환자나 진료가 매우 불편하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4. 대부분의 지방 면 단위에는 '보건지소'가 있고 대부분이 의약분업 예외지역에 있어서 보건지소에서 진료/처방 및 약의 조제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시도마다 다르겠지만, 많은 지자체에서는 면 단위 보건지소의  65세 이상 환자에게 진료비 및 약제비를 지원해서 '무상 혹은 매우 저렴한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의원에서 가져온 처방전의 조제는 되지 않지만, 보건지소에 있는 약에 한해서 의사의 처방과 조제가 이뤄지고 있구요. 그리고 보건지소는 시내의 의원이나 약국보다 환자와 더 가까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화상진료를 하고 시내로 나가서 자비로 조제를 받는게 빠를까요? 아니면 그냥 보건지소로 가서 진료보고 처방받는 것이 빠를까요? 비용적인 면이나 편의적의 면이나 기존의 보건지소를 이용하는 편이 빠르고 편리해 보입니다.

5. 기술적 한계도 있습니다. 진료에서 환자가 목이 아프면 설압자와 팬라이트로 목구멍을 보고, 귀가 아프면 이경으로 보고, 배가 아프면 청진을 합니다. 이런 진료의 기본이 되는 기능조차 구현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화상채팅 수준'의 원격진료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진료는 단순히 '화상대화'만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청진이나 시진 뿐만 아니라, 의사가 직접 만져보고 두드려보는 여러가지 신체 검사(physical test)가 필요할 수도 있고, 질환이나 질병에 따라서는 환자의 움직임이나 걸음걸이도 진단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보건지소에서 진료할 수 없는 수준의 질병은 현재 기술 수준의 원격진료 장비로도 어차피 진료가 불가능합니다. 진료의 기초도 보장하지 않는 수준의 원격진료 장비를 보급하겠다는 건, 식약청이 '효과도 없는 약'을 승인해주고 판매하도록 허가하는 '대국민 사기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브레이크도 에어백도 없고 기본적인 주행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자동차를 판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요? 

6. 원격진료를 대학병원의 유명한 의사가 진료해주는 것처럼 묘사하는데, 대부분의 대학병원 유명한 의사들은 예약이 수일에서 수주까지 이미 완료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원격진료를 하려고 수일에서 수주를 기다려야 하나요? 가까운 병의원이나 보건지소를 가는 편이 낫지 않나요? 앞서 언급한 점처럼 원격진료라면 아무래도 의사 소통에도 불편한 점이 많아서 환자 한 명 당 진료 시간이 늘어날 수 밖에 없을텐데, 가뜩이나 환자가 몰리는 대학병원에서 '대면진료 환자 두 명' 볼 시간을 '원격진료 환자 한 명'을 위해 할애하려 할까요?

7. 단순 감기만을 위해 이용한다면 이는 또 얼마나 낭비인가요? 정부가 걸핏하면 언급하기 좋아하는 그 OECD 국가들의 국민들이 단순 감기로 얼마나 병의원을 찾을까요? 우리나라는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가 덕분에 단순 감기에도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다른 OECD 국가들은 대부분 단순 감기는 슈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는 종합감기약으로 치료하지 않나요? 단순 감기을 폐렴이랑 혼동하면 어쩌나구요? 감기와 폐렴의 감별은 어차피 지금의 원격진료 장비 수준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원격진료 장비를 지원보다 기본적인 상비약을 지원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지 않나요?

8. 허술해질 수 밖에 없는 원격진료에서, 오진은 의사 책임이다? 제대로 교육받은 정상적인 사고 방식의 의사라면, 지금 기술 수준의 원격진료는 하지 않으려는 게 정상입니다.

원격진료는 기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실제 임상에 적용하기에는 아직도 많은 연구 개발이 필요한 상황인데, 왜 정부는 서둘러 도입하려 할까요? 5년 혹은 10년의 연구 개발 기간을 두고 정부가 원격진료 기술 발전에 투자한다면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지금의 기술 수준이 SF 영화에 등장하는 '전신 스캐너' 수준이라면 원격진료에 반대하는 집단은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겠지요. 하지만 의사의 시각에서 지금 정부가 시급하게 도입한다는 화상채팅 수준의 원격진료는, '효과가 있는 약을 임상시험 없이도 사용하게 하겠다'가 아니라 '효과도 없는 약을 세금으로 사겠다'는 말과 다름 없어 보입니다. 국토가 넓지 않고, 비용적인 측면에서의 의료 접근성도 최고인 대한민국에서 시기상조인 미완성의 원격진료를 성급하게 도입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래도 그렇게 원격-화상채팅-진료가 하고 싶다구요? 그럼 크고 복잡하고 사용하기 어려운 PC를 이용하기보다 직관적이고 상대적으로 사용하기 쉬운 '아이패드'같은 제품에 의료관련 앱 좀 넉넉히 설치하고 배포해서 '페이스타임'을 이용하는게 더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로서는 안정적이고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그건 '그 기업' 이익이 되지 않으니 안된다구요?

정말 '국민의 건강'을 위해 우선 해결해야 할 일들은 따로 있습니다. 도서 지역들 오지의 의료 수준 향상을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원격진료 장비가 아니라, 응급 상황에서 환자를 위한 수송 수단과 응급 환자를 치료할 응급 의료 인력입니다.
2014/03/08 20:30 2014/03/08 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