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안', '우안'의 다른 책들에 비해 상당히 오래 읽은 마지막 '우안' 2권.
결론은 마리의 이야기 '좌안'이 성장연애소설이었다면, '우안'은 성장, 초능력, 심령, 종교에 미스터리까지 결합된 판타지 소설이라고 해야겠다. 마리와 큐, 두 사람 인얀의 연결고리는 중요하지만 역시 큐의 이야기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비오면 생각나는 파전'처럼 큐의 인생에서도 가끔식 생각나는 사람이라고 할까? 물론 파전보다야 중요한 존재이지만.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되는 사람들 중에서, 두 사람의 가족말고 화가 '시즈오'가 중요한 조연으로서 마리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부각되어, 어린시절 마리의 오빠이자 큐의 친구인 '소이치로'만큼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후반부에는 언급도 없어서 좀 아쉬웠다.
'좌안'에서 거의 편지로만 만날 수 있었던 큐이기에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역시 많은 부분이 해소되었다. 하지만 의문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큐와 네네의 연이은 교통사고는 과연 우연이었을지, 프랑스의 초능력 연구소의 진짜 정체는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큐의 제자 소노 분도의 과거와 큐가 목숨을 구해준 슈켄사의 이야기 등등...
나약한 여자이지만 강인한 영혼의 소유자였고 운명을 능동적으로 개척해가는 마리에 비해, 염동력, 예지력, 공중부양 등 강력한 초능력에 건장한 신체를 가졌지만, 운명을 능동적으로 개척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 나약한 의지 때문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깨닭음을 원하지만 스스로 나아가려는 노력은 많이 하지 않고 우유부단한 모습은 어쩌면 그의 게으름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들기도.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떻게 그렇게나 타락할 수 있었는지, '좌안'의 마지막 모습과 '우안' 1권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나 이상했는데, 그렇게나 영특한 그의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대반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구도자 같았던 그가 알콜중독자가 되는 모습은 조금은 억지스럽기도 하다.
아미와 사키를 통해 마리와의 인연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그래도 해피엔딩. 확실히 '냉정과 열정사이'와는 다른 느낌의 소설로 '냉정과 열정사이'를 기대하고 읽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겠다.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츠지 히토나리 - 우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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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른 - 흐른
밴드 '로로스'로 더 유명한 '튠테이블무브먼트(TuneTable Movement)'의 유일한 여성 싱어송라이터 '흐른'의 1집 '흐른'.
홍대 클럽 '빵'을 중심으로 하던 '흐른'은 남성 그리고 밴드가 위주였던 레이블 'TuneTable Movement'에 합류하여 2006년 EP '몽유병'을 발표하고 늦은(?) 나이 유학길에 오릅니다. 그리고 어느새 귀국하여 약 2년 반이 지난 2009년 3월 정규 1집 '흐른을 발표했습니다.
잔잔한 수면 위로 떨어진 잉크가 퍼지는 듯한 그림의 자켓으로 그녀의 음악활동의 이름인 '흐른'을 표현하고 있는 1집은 그 내용면에서도 일맥상통하여, 전작인 EP '몽유병'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일상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EP와 1집 사이에 있었던 유학을 통해 느낌 생각들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첫곡 "Don't feel sorry"는 영어 가사의 곡으로 나름 유학파이자 페미니즘 성향의 그녀를 엿볼 수 있습니다. EP '몽유병'에 이어지는 그녀의 어쿠스틱 사운드가 반가울 따름입니다. 더불어 EP 수록곡 '몽유병'의 당돌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내 빵을 뜯었나"는 제목에서 유명한 책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힌트를 얻은 제목이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빵'이라는 단어에서는 어떤 '정치적 색'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쿠스틱의 느낌으로 시작하지만, 예상외로 디스코풍의 전자음이 등장하면서, 흐른의 음악에 대한 선입견의 뒤통수를 후려칩니다. 개인적으로는 프로듀싱에 참여한 '누군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하네요.
"다가와"는 EP의 '스물일곱'과 마찬가지로 가사에서 흐른의 소박하지만 솔직한 면모를 느낄 수 있는 트랙으로, 연주에서도 그녀다운 편안함이 지배합니다. 봄에 발매되었지만, 가사에서 여름 시즌을 노렸다고 생각되고, 요즘같은 여름밤에 듣기 좋네요. "어학연수"는 실제 어학연수를 다녀온 그녀가 타지에서 느낀 이방인으로서의 고독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Wake Up in the Morning"은 애견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사가 재밌는 트랙입니다. 여름 시즌을 노렸다고 확신시켜주는 "You feel confused as I do(Summer Mix)"는 마지막 트랙인 "Autumn Mix"와 비교하며 들으면 재밌습니다. Summer Mix가 댄서블한 빠른 템포와 시원한 전자음으로 여름을 노렸다면, Autumn Mix는 느린 템포의 넉넉한 밴드 사운드로 가을을 배려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두 곡 "산책"과 "Global Citizen"은 삶과 세상에 대한 사색이 짙게 느껴지는 트랙들입니다. "산책"은 버려진 기타를 통해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Global Citizen"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순들을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꼬집고 있습니다. 종족분쟁의 케냐와 캐냐산 커피, 기아의 잠비아와 옥수수를 먹여 키운 소고기 햄버거라는 잊고있던 자본주의의 모순들은 직시하게 합니다. 적당히 댄서블한 사운드에 담담한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직설적이면서도 풍자적인 가사가 익살스러우면서도 아프게 와닿습니다. 앞선 두 곡 "누가 내 빵을 뜯었나"와 "You feel confused as I do(Summer Mix)"와 같이 빠른 템포는 세 곡을 연작 같이 느껴지게 합니다.
이어지는 세 곡은 '빵'에서 솔로 뮤지션으로 공연하는 그녀를 느끼게 해주는 트랙들입니다. 가사에서 사랑과 배려, 그리고 하얀 거짓말이 떠오르는 곡 "할 수 없는 말"은 둘이어서 더욱 외로울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그녀의 울림 때문에 아름다운 트랙입니다. "그렇습니까"는 EP 수록곡 '거짓말'의 연장선 위에 있는 조심스러운 사랑 노래입니다. 아니, 그 조심스러움 때문인지, 솔직하지 못한 '그녀의 노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지만 결론은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는 것인가 봅니다. "Song for the Lonely"은 'Sarah McLachlan'의 'Angel' 조용하지만 굳건한 위로와 지지가 느껴지는 트랙입니다. 세 곡에서 느껴지는 조용한 울림은 아마도 가장 가장 '흐른'다운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튠테이블 무브먼트의 숨겨진 야심작이었던 앨범 '흐른'은 그 야심만큼 곡 자체의 탁월함 뿐만아니라, 연주를 담당한 세션들에도 각자의 밴드 활동으로 실력을 입증받은 튠테이블 무브먼트의 뮤지션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진이라고 치면 '후보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믹싱 및 마스터링에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문외한인 저에게도 느껴지는 소리의 질은 아마도 튠테이블 무브먼트를 통해 발매된 음반들 가운데 최고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소속사 튠테이블 무브먼트와 음반 배포를 담당한 '파고뮤직'의 빈약한 홍보 능력 때문인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점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어쩌면 비단 앨범 '흐른'과 튠테이블 무브먼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인디씬 전체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요. 인디씬에서도 요 몇년 사이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면서 메인스트림과 마찬가지로 (실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홍보력이 비중이 점점 커지는 듯하여 아쉽습니다. (그렇다고 홍보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요.) 별점은 4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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