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연못 <5>

소년이 믿을 수 있었을까?
연기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소녀가 만난 신비한 여인이 이야기를.
소년은 소녀가 잠시 졸다가
꿈을 꾼 것이라고 생각했어.

소녀는 믿을 수 있었을까?
소년이 약속에 늦은 이유가
소년의 마을에 큰 폭설이 내려서라고.
호수 반대편 소녀의 마을은
아침부터 날이 좋았던 그날에.

그 여인의 모습에 매료된 소녀는
마을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말했어.
하지만 어른들과 아이들, 어느 누구도
심지어 가장 나이 많은 노인들도
그런 신비한 모습의 여인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했어.

소녀와 소년이 만나기로 한 날,
소년은 언제나 폭설이 내려 늦었어.
그리고 소년이 나타나는 시간은 점점 늦어졌어.
그리고 소녀는 소년을 기다리는 동안
언제나 신비한 여인을 만나서
빵과 차를 마실수 있었고,
여인은 소년이 나타날 때 즈음 사라졌어.

북쪽나라는 점점 추워졌고
게다가 계속 되는 폭설 때문에
소년이 사는 마을의 사람들은 하나 둘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기 시작했어.
폭설과 추위 때문에 낚시나 사냥도 할 수 없었고
숲의 나무에서는 열매가 열리지 않았으니까.

또 소녀과 소년이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었어.
소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소년에게는 소녀를 만나는 마지막 날이었어.
하지만 그날, 소년의 마을에는
어느때보다도 엄청난 폭설이 내리고 있었어.

그리고 그 때 소녀는 또 그 신비한 여인을 만났어.
여인은 소녀에게 소년을 기다리냐고 물었고,
소녀는 역시 그렇다고 대답했지.
"그래? 과연 그럴까?"
여인은 또 알 수 없는 말을 했어.

2009/06/24 00:04 2009/06/24 00:04

얼음연못 <4>

소녀는 얼마나 기다렸을까?
소녀가 집을 나섰을 때,
막 떠올랐던 태양은
어느덧 하늘 한가운데 떠있었어.
하지만 소년은 나타나지 않았지.

그 때 소년의 마을 쪽에서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어.
소녀는 소년이라고 생각하고
그 모습에게로 달려갔지.
하지만 그 모습은 소년이 아니었어.

새하얀 왕관에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역시 새하얀 코트를 걸친,
살결이 너무나 창백한 점을 빼면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었어.
그 모습은 소녀가 처음보는 사람이었어.
소녀가 들어본 적도 없는 모습이었어.

그 여인은 소녀에게 말을 걸었어.
"안녕, 이렇게 추운 곳에서 뭐하고 있니?"
소녀는 대답했어.
"친구를 기다리고 있어요."
"얼마나 기다렸니, 얼굴도 손도 다 얼었구나."
"아침에 나와서 지금까지요."
"춥겠구나. 이것 좀 먹어보렴."

놀랍게도 빈 손이었던 여인의 손에는
따뜻한 차와 맛있어 보이는 빵이 담긴
반짝반짝 빛나는 접시가 있었어.
소녀는 낯선 사람을 경계했지만
너무나 배고픔을 참을 수 없었지.

차와 빵을 다 먹고 마신 소녀를 보며
여인은 만족한듯 웃으며 말했어.
"그 친구가 올 것같니?"
"네. 그럼요."
"그래? 과연 그럴까?"
여인은 알 수 없는 말을 했지.

그때 아주 멀리서 또 다른 사람의 모습이 보였어.
하얀 입김을 내며 달리는 모습이었어.
바로 그렇게 기다리던 소년이었지.
"꼭 온다니까요."
소녀는 말했어.
여인은 웃으며 대답했어.
"어머, 오는구나. 하지만 많이 늦었네."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구나.
조만간 또 보자구나. 안녕."
여인은 알 수 없는 인사를 하며,
소년의 반대편으로 걸어갔어.
소녀는 인사를 하기 위해 뒤돌아 보았지만,
여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어.
2009/06/23 16:09 2009/06/23 1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