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와 숫자들 '유예' 발매 기념 콘서트 in 12월 22일 Rolling Hall

'롤링홀'을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때가 언제였더라?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되었는데, '9와 숫자들'의 단독 공연이 열린다기에 오랜만에 발걸음을 옮겼다. 공연 제목은 "9와 숫자들 두 번째 작품 '유예' 발매 기념 콘서트"로 거창한 제목이지만, 사실 공연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및 연말 시즌이기에 '발기 기념' 및 '연말 정산(?)' 공연이라고 봐도 되겠다. 물론 12월 22일이라는 날짜는 좀 애매하지만, 때가 때이니 만큼 장소 섭외도 쉽지 않았으리라.

7시 시작인 공연은 6시 30분부터 입장을 시작했고, 예매순서로 입장순서가 정해지기에 '얼리버드'로 빨리 예매했지만 빠른 입장번호는 아니었는데도 다행히 앞쪽에 앉을 수 있었다. 이미 12월 초에 단독공연과 비슷한 '공청회'를 보았기 때문인지, 공청회와는 어떤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다른 셋리스트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더불어 오랫만에 듣는 게스트들의 이름에서 근황이 궁금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궁금했던 두 오프닝 게스트 가운데 첫 팀은 바로 '한강의 기적'이었다. 생각해보면 데뷔앨범은 잘 들었지만 공연을 본 기억은 없는데, 같은 레이블(TuneTable Movement)인 '9와 숫자들'을 통해 처음 공연을 보았다. 밴드로 기억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무슨 사정인지 프런트맨만 무대로 올라왔다. 밴드 이름의 의미를 담고 있는 '한강의 기적'을 포함하여 2~3곡의 짧은 무대였다. 이름 덕분에 '대통령 테마주'처럼 새로운 대통령의 '수혜 밴드(?)'가 될 수도 있겠는데, 2013년에는 활발할 활동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두 번째 게스트는 바로, 외모와는 다르게 달달한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 '티어라이너(Tearliner)'였다. 과거 파스텔뮤직 소속으로 처음 알게되었고, 레이블 공연에서 몇 번 보았던 밴드이다. 파스텔뮤직에서 데뷔앨범도 발매하고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 OST로 파스텔뮤직의 부흥과 본인의 음악적 커리어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고 볼 수 있는데, 최근에 활동이 뜸하다가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데뷔앨범과 EP를 '파스텔뮤직'에서, EP를 '해피로봇레코드'에서 발매했는데, 이번에는 9와 숫자들의 앨범을 유통하는 '파고뮤직'과 함께 두 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한다고 한다. OST 참여로 쌓인 곡들이 꽤 될 듯한데, 그 곡들 가운데서 몇 곡 들려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공연으로 만나는 밴드인데 기타리스트도 그대로였고, 사실 '티어라이너'의 2집보다는 티어라이너와 그 기타리스트가 함께한 'Low-end Project'가 왠지 더 기대가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디어 시작된 본 공연 '9와 숫자들'의 무대는 '연날리기'로 문을 열었다. 지난번 공청회처럼. 4인조 밴드 구성에 키보드 세션(오수경)이 함께 공연을 진하리라 예상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한 명의 세션이 더 있었다. 바로 기타리스트 '유정목'의 형이자, 그의 원래 밴드 '프렌지'의 드러머 '유성목'이었다. 공연을 보지 않았다면 드러머가 두 명이라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공연에서 그는 드럼이 아닌 퍼커션과 다른 보조 악기들을 담당해서 더욱 풍성한 소리를 들려주는 역할이었다. 이어 '칼리지 부기', '오렌지 카운티', '몽땅', '말해주세요'를 연이어 들려주었고 1집의 공연처럼 즐거운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1집의 곡들과 다르게 EP 수록곡들은 공청회처럼 차분한 어쿠스틱 공연이 확실히 좋았는데, 이 콘서트에서도 EP 수록곡들은 어쿠스틱으로 들을 수 있었다. '유예'를 시작으로 '아카시아꽃', '플라타너스', 그리고 컴필레이션 수록곡 '서울 독수리'까지 어쿠스틱으로 들려주어, 공청회에 초대받지 못했던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단독 공연에서만 볼 수 있다는 9가 빠진 숫자들 '넘버스'의 특별 공연이 있었고, 30세 전후의 팬이라면 기억할 '쿨'의 '어떤 그리움'을 들려주었다.

9가 다시 무대로 올라왔고 2부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평소에 보기 힘든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9가 커다란 안경을 쓰고 '그리움의 숲'을 부르는 모습이라던가, '석별의 춤'을 부르면서 자칭 '맨체스터 댄스'를 추는 모습이 그랬다. 단독 공연에 찾아온 팬들을 위한 '특별 선물'이었다고 할까? 2부에서도 아직 어떤 앨범에도 수록되지 않은 '깍쟁이'를 비롯하여 앨범에 수록된 여러 곡들을 들려주었고, 2장의 앨범으로 풍성해진 셋리스트를 느낄 수 있었다.

꽤 많은 곡을 들려주었고, 그만큼 짧은 않은 시간의 공연이었지만, 오랜만에 깊게 몰입되었던 공연이어서 짧게 느껴졌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 당연히 앵콜 요청이 있었고, 앵콜로 '슈가 오브 마이 라이프'와 신곡 '산타클로스'를 들을 수있었다. 신곡 '산타클로스'는 기존의 '9와 숫자들'의 곡들과는 다른 재치가 느껴지는 곡으로 이 밴드의 또 다른 색깔을 들을 수 있었다.

데뷔앨범이 요즘 청년들의 '늘어난 유년기'에 대한 자아성찰이었다면, EP '유예'는 진중한 '성장통'이 느껴지는 앨범이었다. 2집에 담기에는 무거운 이야기들을 EP로 풀어내지 않았을까 하는데, 2집에서는 '깍쟁이'처럼 흥겨운 곡들로 1집의 분위기를 이어가지 않을까 한다.

2013/02/07 17:07 2013/02/07 17:07

한강의 기적 - 한강의 기적

지금을 살아가는 청춘들을 위한 조금은 시린 성장기 '한강의 기적'.

'한강의 기적'이라니, '눈부신 경제 개발'이나 '새마을 운동'이 떠오르는 군사정권 시절도 아니고 참으로 익숙하지만, 밴드의 이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낯선 이름입니다. 홍대 앞 '클럽 빵'의 공연 일정에서는 2008년 즈음부터 보아왔던 이름이었고, 공연 사진 속 밴드의 보컬이 밴드 이름과는 다르게 준수한 외모이기에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공연을 본 적은 없었네요. 어느 즈음부터 앨범 준비 소식이 들려왔었지만, 많은 인디밴드들의 앨범이 그렇듯이 작업이 지연되면서 '기대 음반'에서 사라졌죠. 조금은 독특한 이름의 '한강의 기적'의 기적을 설명에는 '형제밴드'가 따라오곤 합니다. '한강의 기적'에 '형제'라니, 어떤 형제의 '대박 성공 신화'가 떠오르기도 합니다만, '복고'를 전달하기에는 적절한 밴드 이름이 아닐까 합니다.

첫 곡 '신대방 삼거리로 가는 152번'은 신나는 기타 연주와 함께 시작합니다. 3분이 채 되지않는 비교적 짧은 곡이지만 깊은 여운을 던집는 곡으로, '날 기다리진 않을까? 날 구해주진 않을까?'라고 묻는 가사는 (청년실업과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갈 길 잃은 청춘의 현실이 전해집니다. 그런데 '내려야 할 것 닽아 다음 정거장에'는 모 CF에서 '저 지금 내려요'라고 외치던 장면과 겹쳐지면서 웃지못할 상상도 조금은 하게 되네요. 마지막  딱 10곡이 수록된 앨범이지만 대중교통과 관련된 곡들이 여러 곡 보이는데, 서울 '152번 버스'의 노선을 살펴보면 '한강대교'를 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152번을 타고 한강대교를 건너다가 밴드 이름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요?

'해파리'는 여름 느낌이 물씬 나는 실로폰 연주로 시작하기에, 노골적으로 여름 시즌을 노리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사가 재밌는데 잘 음미해보면 가사 속 주인공이 사람인지 해파리인지 혼동됩니다. '울고있는 나'나 '겁많은 해파리'나 거대한 바다 앞에서는 차이가 없게 들립니다. 이 앨범에서 가장 흥겨운 곡이기에 시원한 해수욕장에서 이 곡이기 울려퍼지기를 기대해봅니다.

상당히 긴 제목의 '그녀가 원하는 건 연예인들이 하는 그런 종류의 키스'는 이 앨범의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는 곡입니다. 조금 서글픈 가사와 다르게 브라스가 참여한 연주는 상당히 낭만적(로맨틱)이고 멜로디는 편안합니다. 더불어 가사가 담고 있는 많은 청춘들이 공감할 만한 소위 '낙오자의 감수성'은 공연장에서 '남녀' 모두 함께하는 '눈물의 싱얼롱'이 펼쳐지기에 적절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제목만 듣는다면 '그녀'는 '된장녀'처럼 생각되지만, 가사 속에 '그녀'도 사실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그'만큼이나 외로운 존재이니까요.

묘한 그리움을 불러오는 하모니카 연주로 시작하는 '신촌 로터리'는 익숙하고 활기찬 신촌의 풍경 속에서 서글픈 젊음을 노래합니다. 이어지는 '작은 기타'와 '나 혼자 몇 마디' 역시 이 앨범을 관통하는 '서글픈 젊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또 두 곡은 각각 '정직'과 '진실'을 노래하며 '자아 성찰'을 보여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반면 다른 점이라면 '작은 기타'는 서글픈 가사와는 상반되는 흥겨운 연주로 '해학'적인 면이 있다면, '나 혼자 몇 마디'는 '...난 고개를 들 수 없었다'라는 가사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부끄러움'이 떠오를 만큼 시적인 면이 있습니다.

장엄한 스케일이 담겨있을 법한 제목과는 다르게 '한강의 기적'은 그리움이 물씬 느껴지는 '소년의 성장기'입니다. 꿈에서 영화 속 주인공도 되어 대사를 잊는 장면은 상상해보면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 주인공의 입장으로는 서글픕니다. 잠깐 잠든 사이에도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은 아직 더 자라야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어느덧 훌쩍자라서 소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슬픔이 느껴집니다. '다른 누군가의 스무 살'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인디씬의 선배들인 '이장혁'이나 '푸른새벽'의 '스무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물로켓, 글라이더, 고무동력기'와 '양화대교'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두드러진 락 넘버들입니다. '물로켓, 글라이더, 고무동력기'는 어린 시절 익숙한 소품들을 이용하여 성장기를 이어갈 법도 하지만 사실 이 앨범에서 가장 사랑에 집중한 곡입니다. '양화대교'에서 보컬 '주영찬'의 절규와 기타 리프는 왠지 코맹맹이 소리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노래를 들려주는 '빌리 코건'의 'Smashing Pumpkins'가 떠오르게 합니다.

마지막 곡은 '시소'입니다. 밴드 '한강의 기적'은 앨범 전반에 걸쳐 익숙한 장소나 소재들을 이용하고 있고, 슬픔을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고 풀어나가는데 이 곡에서도 그러합니다 연주는 '펑크락'풍으로 시작되는데 '창문 밖으로 뛰어 내리고 싶었지만'의 조금 과장되고 과격한 가사는 재밌고 '펑크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합니다. 신나는 연주와는 다르고 가사는 그 한 소절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진지한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최근의 '틴에이지 로맨스'물의 한 장면처럼 세련되면서도, 이제는 '성장 드라마(만화)'의 거장라고 할 수 있는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 속 한 장면처럼 '여백의 미'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기른 '수염'과 '머리(카락)'가 나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인지 그렇게 변한 두 사람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인지, 궁금하네요. 고의로 중의적인 표현을 썼으려나요?

다시 언급하지만, 밴드  '한강의 기적'가 들려주는 앨범 '한강의 기적'은 '소년의 성장기'입니다. 이 성장기는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일상의 단편들과 자기고백과 '젊기에 어쩔 수 없는 슬픔'을 담고 있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란 누군가에게는 눈부신 경제 발전의 감격을 연상시킬 수도 있겠지만, 밴드 '한강의 기적'은 이 땅에 태어나서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꿋꿋히 버티고  성장해가는 모든 소년과 청년들, 바로 이 앨범을 듣는 모두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점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포크'와 '락'이라는 서양 음악의 형태를 빌려,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실적인 감수성을 담아낸 앨범 '한강의 기적'은 '가장 현재의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인디적'인 앨범이 아닐까 합니다. 더불어 내년 초에 있을 '한국대중음악상'에 '한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이 '올해의 신인'에 올라가있을 것이라고 슬며시 예상해봅니다. 그야말로 쉽지 않은 현실의 낭만과 재치를 담아낸 놀랄 만한 데뷔 앨범이 얼마나 될까요? 별점은 4.5개입니다.

2011/08/19 04:24 2011/08/19 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