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밤의 도시를 노래하는 'Allegrow(알레그로)'의 첫 EP "Nuit Noire".

초기 주로 여성뮤지션들을 소개했던 '파스텔뮤직'은 '에피톤 프로젝트'와 '짙은' 등 남성 뮤지션들의 괄목한 만한 성과 이후, 남성 뮤지션 발굴에 더 많은 노력을 할애왔습니다. 그런 노력들은 컴필레이션 앨범 "사랑의 단상" 연작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데, 이 연작의 마지막 2011년에 발매된 "사랑의 단상 Chapter 3. Follow Me Follow You"는 '알레그로(Allegrow)'를 비롯해, '헤르쯔 아날로그(Herz Analog)', '이진우', 그리고 '옆집남자'까지 이전 연작들보다 많은 남성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앨범이었습니다. "사랑의 단상" 연작은 처음부터 앨범을 발표할 뮤지션들의 음악을 미리 들어보는 샘플러같은 성격도 있는 앨범이었는데, 역시 이 연작의 세 번째에서 소개했던 '헤르쯔 아날로그'는 작년에 EP와 첫 정규앨범을, 알레그로는 올해 2월에 EP "Nuit Noire"를, 그리고 '이진우'는 최근(5월) 첫 정규앨범을 발표했습니다. 같은 해에 2장의 앨범을 발표했다는 점이나 홍보로 보았을 때, 파스텔뮤직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남성 뮤지션들 가운데 '헤르쯔 아날로그'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걸었다고 생각되는데, 제 취향에는 알레그로의 노래들이 더 마음에 드네요.

"사랑의 단상"에서 'Love Today'로 들은 첫인상은 '무난함'과 '기대감'사이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스텔뮤직 10주년 기념 앨범인 "Ten Years After"에 수록된 '어디쯤 있나요'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이 사라지기 전에, 파스텔뮤직은 소속 뮤지션들의 2013년 첫 앨범으로 바로 알레그로의 "Nuit Noire"를 발표했습니다.

'검은 밤'을 뜻하는 앨범의 프랑스어 제목 "Nuit Noire"처럼, 앨범을 여는 첫 트랙은 어스름한 밤이 시작될 즈음의 시간일 법한 'PM 7:11'입니다. 3호선역의 안내방송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 연주곡은 꽤나 경쾌합니다. 정시가 지난 퇴근 시간인 7시 11분 즈음의, 보람찬 하루 일과를 끝낸 경쾌한 마음, 혹은 낮의 일상과는 또 다른 밤의 일상에 대한 기대감처럼 들립니다.

앨범의 타이틀 곡인 'Urban Legend'는 함께한 여가수의 이름과 독특한 제목이 먼저 눈에 띄는 트랙입니다. 바로 같은 소속사의 '한희정'이 참여했고, 제목은 우리말로 하면 '도시 전설' 정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보통 인류가 도시에 밀집해서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괴담/전설을 '도시 전설'이라고 하는데, 알레그로는 어두운 밤 마음을 어지럽히는 '사랑의 망령'을 이 '도시 전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제목이나 가사에서 '공포 스릴러 영화'를 연상시키는데, '망령'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강렬한 기타리프가 인상적인 락넘버입니다. 이미 같은 소속사인 에피톤 프로젝트, 박준혁의 곡에서도 아름다운 음성을 들려주었던 한희정은 이 곡에서도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 곡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바로 그 '망령'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고, '공포 스릴러 영화'를 완성하는 방점입니다. 하지만 그 망령의 목소리가 너무나 아름답다는 점은 또 다른 비극입니다.

'Urban Legend'는 알레그로의 기존 곡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곡이었지만 이어지는 곡들은 대체로 잔잔하게 진행됩니다. 'Under the Fake Sunshine'는 네온사인과 가로등같은 인공적인 빛들을 'fake sunshine(가짜 태양볕)'에 비유하고 도시인 느끼는 '군중 속의 고독'을 노래합니다. '밤'이라는 시간은 사람의 감정을 멜랑콜리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곤 하는데, 피아노와 기타 연주는 그런 밤의 공기를 타고 서정적인 시어(詩語)들을 나열합니다. '긴 밤을 채우는 추억'에서는 누군가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을 '그리움으로 하얗게 지세운 밤'을 떠오르고, '시간의 강'에서는 '추억과 현실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을 떠올라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acoustic set의 느낌으로 흘러가는 연주에서 배경음처럼 사용된 synth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화자를 위로합니다. 과하지 않게 synth가 사용된 점은 알레그로의 데뷔곡 'Love Today'와의 공통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곡을 들으면서 올해로 11년차를 맞는 파스텔뮤직의 지난 10년을 생각하게 합니다. '미스티 블루', '푸른새벽', '어른아이' 등 파스텔뮤직의 초기를 대표하는 '여린 소녀적 감수성의 시대'를 지나서, 현재는 '에피톤 프로젝트', '짙은', '캐스커', '센티멘탈 시너리'로 대표될 만큼 남성 뮤지션 중심의 '확장되고 다변화된 음악적 스펙트럼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인디레이블로서는 '장수와 번영(live long and prosper)'를 누리고 있다할 수 있겠는데, 이 곡에서 듣고 느낄 수 있는 '남성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여린 감수성'과 '전자음과 어쿠스틱 연주의 조화'는 이 곡을 파스텔뮤직의 초기와 현재사이 즈음에서 그 둘을 이어주는 가교이자 가장 '파스텔뮤직다운' 곡으로 들리게 합니다. '파스텔뮤직다운'이라는 말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파스텔뮤직의 초기 뮤지션들에 대한 그리움이 갖고 있는 파스텔뮤직의 올드팬들에게 그 그리움을 조금은 달래줄 만합니다.

그런점에서 '봄의 목소리'이 곡도 올드팬의 그리움을 자극합니다. '봄의 목소리'라는 제목도 그렇지만, 경쾌한 연주 위를 달리는 달콤씁쓸한 긍정의 감정은 여러모로 '미스티 블루'의 노래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 곡의 미스티 블루의 목소리로 들으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알레그로의 목소리 역시 담백함으로 부르기에 그런 생각이 더 들지도 모르겠네요. '우리가 스쳐온 서울 밤하늘엔'은 긴 제목만큼이나 긴, 4분이 넘는 연주곡입니다. 역시 제목처럼 창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서울의 야경과 그위로 펼쳐진 밤하늘을 상상하게 합니다. 앨범의 나머지 두 보컬곡 'Sunflower'와 '너와 같은 별을 보며'에서도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의 감정'은 지속됩니다. Sunflower에서는 가까이 할 수 없지만 언제나 태양을 바라보는 제목 '해바라기'로 안타까움을 표현합니다. '너와 같은 별을 보며'에서는 아주 멀리 떨어진 별들의 빛이 오랜 시간을 날아서 지구의 하늘을 비추듯, 언젠가라도 '너'에게 닿길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합니다. 이 두 곡들도 여성보컬의 목소리로 들으면 또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트랙 '잔향'은 앨범을 닫는 outro입니다. 한희정의 허밍을 들을 수 있는 곡인데, 진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그녀의 울림은, 이 앨범이 전하는 고독과 그리움의 메시지에 대한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알레그로의 첫 EP 'Nuit Noire'는 기대하지 않았던 '보석의 발견'이라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전업 뮤지션이 아닌, 평범한 회사원으로 뮤지션을 겸업하는 그이기에 더욱 놀랍습니다. 그런 이중생활(?) 때문에 이 EP의 제목이 'Nuit Noire', 즉 '검은 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은 밤이 내려와,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인 그를 '밤의 음유시인'으로 바꾸어 놓으니까요. 최근 파스텔뮤직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다른 소속 뮤지션들에 가려져 있었지만, 다른 어떤 뮤지션들보다 그의 다음 앨범이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가장 '파스텔뮤직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알레그로'의 정규앨범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