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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말, 예고도 없이 찾아온 푸른새벽의 두번째 정규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이 되어버린 '보옴이 오면'.

공연도 별로 없이 갑자기 발매된 두번째 앨범만으로 이별을 고하니 많은 이들이 아쉬웠겠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double disc로 발매된 EP 'Submarine Sickness + Waveless'에서 이들의 행보는 예견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눈으로 덮힌 벌판에 한 그루의 나무만 쓸쓸히 서있는 자켓과 그 아래 쓰여진 '보옴이 오면'. 봄을 기다리며 리뷰를 시작합니다.  

'intro', 그야말로 인트로입니다. '이별만은 아름답도록'이라지만 마지막을 고하는 앨범의 intro로는 너무나 밝은 느낌입니다. 밝다 못해 희망적이고 진취적입니다. 푸른새벽, 두 멤버의  앞 길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Undo', 도입에서부터 앞선 intro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intro에서 느꼈겠지만 1집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1집에서는 기본적으로 기타가 중심이 되었지만, 1집과 2집을 잇는 EP 'Submarine Sickness + Waveless'에서 보였던 키보드나 신디사이저 중심의 변화가 확연히 느껴집니다.

'사랑', '푸른새벽'의 대표곡 '스무살'에 필적할 만한 아니 뛰어넘을 만한 '임팩트'를 가진 곡입니다. dawny의 '나른한 슬픔'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너무나 매력적인 곡이구요. 나른하게 진행하는 보컬은 후렴에서는 황량한 슬픔으로 바뀝니다. 그 황량함은 앨범 자켓에서 보이는 눈으로 덮인 쓸쓸한 벌판과 싱크로율 100%에 가깝네요. 조용한 방안에서 듣다가 숨이 먿을 듯하고 주체할 수 없는, '텍사스 들판의 소떼처럼 몰려오는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후렴에서는 'Maximillian Hecker'의 'Dying'이 떠오르더군요. "I'm dying"이라는 외치는 모습과 겹쳐지네요.

'하루', 앞선 두 곡이 dawny의 보컬에 상당히 의존하는 곡이었다면 이곡에서 보컬의 비중은 줄어들고 연주가 중심입니다. 앞선 두곡이 더블 EP 중 'Submarine Sickness'의 연장선이라면 이 곡은 'Waveless'의 연장선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더블  EP 중 'Submarine Sickness'는 dawny의 스타일이고, 'Waveless'는 sorrow의 스타일이라고 본다면 대충 맞지 않을까하네요.

'우리의 대화는 섬과 섬사이의 심해처럼 알 수 없는 짧은 단어들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너무나 긴 제목의 곡입니다. 아마 제가 지금까지본 우리나라 노래 중 가장 긴 제목이 아닐까하네요. 주도권은 다시 dawny쪽으로 기울었지만 두 사람사이의 균형이 느껴집니다. 다른 좋은 곡들이 있지만, 이 곡이 제가 '푸른새벽'에게 바라던 모습들과 가장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가사처럼 이번 푸른새벽은 앨범이 끝이라도 다른 모습으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별', 시작이 왠지 EP에도 수록되었던 '빵'이 떠오르는 곡입니다. 담백함과 기교가 적절히 어우러진 보컬이 매력적으로 곡의 길이가 짧다는 점이 아쉬울 정도네요.

'딩', 특이한 제목과 나긋나긋한 보컬이 인상적인 곡입니다. 처음 앨범을 들었을 때, 예전에 Demo로 들었을 때의 거친 느낌과는 많이 달라서 처음 들었을 때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Tabula Rasa', 파스텔뮤직의 컴필레이션 앨범에 실렸던 곡입니다. 보컬과 기타 연주에서 2집보다는 1집과 EP 사이에 있을 법한 분위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오후가 지나는 거리', dawny의 보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곡입니다. 3분이 좀 안되는 짧지 않은 곡이지만 interude같은 느낌이 드네요. 단조롭다고 할까요.

'명원', EP 수록곡 '별의 목소리'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는 느낌이 드는 곡입니다.

마지막 곡 '보옴이 오면', 봄이 오면 하고 싶은 바람들을 노래하는 곡입니다. 가사의 처음 dawny의 목소리가 '보옴'으로 늘어지는 부분에서는 아른한 그리움이 느껴집니다. '봄'이 아닌 '보옴'으로 늘어져 화자에게는 그 그리움만큼이나 바람들도 너무나 멀어보입니다. 우린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아늑한 '빵'에서 공연하는 '푸른새벽'의 모습을.

아쉽습니다. 많은 사랑를 받았던 밴드가 고작 2장의 앨범과 1장의 EP만 내고 사라진다니 아쉽습니다. 아쉽지만 이것이 우리나라의 언더그라운드 씬의 현실이기도 하니 착찹하기도 하네요. '보옴이 오면'이라는 제목처럼 봄은 너무나도 멀어 보이지만 언젠가 두 사람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이들에게 남겨진 앨범 '보옴이 오면'. 가만히 듣다보면 우리에게 '보옴'이 오지 않을까요? 그날을 기다립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