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권순관의 '그렇게 웃어줘'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여배우를 보았다.
2. 웹서핑으로 어렵지 않게 찾아낸 그녀의 이름은 '정은채'였다.
3. 그녀는 몇 편의 영화에 출였했고, 최근에는 '음반'까지 발표했다.
가끔 우연히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괜찮은 노래들을 찾아내는 경우가 있는데, 몇년전에 우연히 듣게된 모델 '장윤주'의 데뷔곡 'Fly Away'처럼 지금 소개하는 영화 배우(로 더 유명한) '정은채'의 '소년, 소녀'가 그런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정은채의 EP는 자주 방문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얼핏 봤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음반이었습니다. 하지만 보통 연예인들이 유명 작사/작곡가의 곡으로 팬서비스 정도로 음반을 발표하는 모습과 다르게, 일부 곡을 작곡하고 모든 곡의 가사를 쓴 점과 인디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발표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노래가 궁금하기에 충분했습니다.
EP를 시작하는 첫곡 '이방인'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담겨있는 곡이랍니다. 외국인들의 음성이 가득한 공항의 소음을 배경으로 낮게 울리는 허밍은 쓸쓸함을 그대로 전합니다. "Hello, Hello. I'm fine. thank you, and you?", 반복적으로 홀로 답하는 영어 가사는, 낯선 공간에서 홀로 남겨진 고독함을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 간결하게 반어적으로 전달합니다. 곡이 진행되면서 합류하는 스트링 연주는, 감정이 절제되고 건조한 정은채의 목소리와 대비되어, 그녀의 목소리가 전하는 감정을 극대화합니다.
'이방인'과 더불어 그녀가 작곡한 '잘 지내나요'는 '정은채', 그녀의 투명한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이렇게 천진한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는 보컬이 얼마나 있을까요? 청아한 피아노 연주 위로 노래하는 꾸밈없이 맑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서툴게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별 후에 남은 감정들을 굿굿하고 태연하게 노래하려는 모습에서 소녀는 어느새 숙녀로 성장해갑니다. 그녀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풋풋하고 미숙했던 이성에 대한 감정'을 회상하면서 이 곡이 썼을 때, 그녀는 조금 더 세상의 쓸쓸함에 대해 알게 되었고, 꼭 그만큼 성숙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나라 노래와 영미권 노래들을 모두 즐겨듣다보면 다른 언어로는 전달하기 힘든, 언어 특유의 '감정적 울림'이 느껴지곤 하는데, "How are you doing?" 부분에서도 제목과 같은 우리말 "잘 지내니?"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울림느 느껴집니다.(물론 노래가 아닌, 영화 속 대사라면 또 달랐겠지만, 멜로디를 따라야하는 노래에서 우리말 "잘 지내니"는 확실히 불리하다고 생각되네요.)
이제 이 EP의 프로듀서로 참여한 '권영찬'이 작곡하고 정은채가 가사를 쓴 3곡이 어어집니다. '달'은 달의 스산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곡입니다. 마지막 곡 '여름바다'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초여름의 동해와 그 바다에 담긴 추억들이 떠오르는 곡입니다. 그런데 두 곡은 보컬의 색이나 곡의 분위기에서 가수 '박지윤'의 최근 곡들과 많이 겹치는 느낌입니다. 아마도 '박지윤'과 작업하기도 했던 프로듀서의 영향이라고 생각되네요.
EP의 타이틀 '소년, 소녀'는 밴드 'My Aunt Mary'의 보컬 '토마스 쿡(정순용)'이 함께한 곡입니다. 여린 정은채의 보컬과 이제는 연륜(혹은 내공)이 느껴지는 토마스 쿡의 묵직한 보컬은 조금은 어색한 대비를 이룹니다. 하지만 묵직한 토마스 쿡의 음성이 여린 그녀의 음성을 감싸주는 느낌이 들어서, 묘한 조화를 이뤄냅니다. 개인적으로 가수의 역량을 단지 '가창력'으로만 평가하려는 세태는 잘못된 획일화라고 생각하는데, 뛰어난 가창력은 아니지만 자신의 가사를 자신의 목소리로 제법 그럴싸하게 전달하는 '정은채' 그녀의 모습에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발전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다만 마지막 'ㄹ' 받침의 발음이 부정확한 점은 이 곡을 듣는 내내 아쉽습니다.
그녀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욕심이었는지, 혹은 그녀의 미래를 위한 소속사의 의도된 전략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배우'의 음반으로서는 꽤나 들을 만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음반을 들고 배우 '정은채'는 뮤지션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녀가 이 EP로 뮤지션으로서의 인지도를 얻을 수 있다면, 아마 가을 즈음에는 'GMF 2013'의 '페스티벌 레이디'로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신인 배우 '정은채'로 신선한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그녀가 가끔 신선한 자작곡들이 담긴 앨범으로도 만나길 기대해봅니다. 앨범 북클릿 마지막에 실린 그녀의 인사말 '씩씩하고 재밌게 살겠습니다'처럼 말이죠.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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