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So Sudden' 이후 1년에만 다시부는 봄바람, 'Hee Young(희영)'의 첫 full-length 앨범 "4 Luv"

2011년 뉴욕(Ner York) 브루클린에서 파스텔뮤직을 통해 한국으로 날아온 'Hee Young(희영)'의 EP "So Sudden"은 뉴욕 출신답게 세련되면서도 감성적인 소리로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인디음반의 한계 때문에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우연하게도 그녀의 EP를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full-length 앨범을 기대하기에는 충분했죠. 그리고 해가 바뀌어 EP "So Sudden"으로부터 약 1년이지난 2012년 5월, 따뜻한 봄바람을 타고 그녀의 첫 full-length 앨범 "4 Luv"가 찾아왔습니다. 평소 즐겨찾는 온라인 쇼핑몰에 올라온 그녀의 새 앨범 예약판매를 보고 즐거우면서도 두 가지에 놀라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앨범 자켓에 떡하니 드러낸 그녀의 모습이었고, 두 번째는 "4 Luv"는 조금은 노골적인(?) 제목이었습니다. EP에서 간결한 일러스트로만 옆얼굴을 비추었던 점을 생각하면, 또 "So Sudden"이라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앨범 제목을 정했던 점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대담한 변신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녀의 그런 변화는 앨범의 완성도에서 나오는 자신감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지만, 아주 조금은 안좋은 방향의 가능성에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첫곡 '4 Luv'는 어쩐지 정겨운 소리를 들려주는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연주로 시작합니다. '4 Luv(for love)'라는 제목만 봐서는 핑크빛 노래가 될 법도 한데, 가사를 보면 '사랑을 위하여'가 아니라 '사랑을 향하여'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제목이기에 그런 기대를 무너뜨립니다. "Hey, how are you? It's been so long"라고 홀로 나즈막히 되뇌는 듯한 후렴구에서는 그리움과 완성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묻어납니다. 하지만 그 탄식은 처절한 비탄라기보다는,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들판에 누워 잠깐 찾아온 단잠 속에서 꾼 조금 슬픈 꿈처럼, 미풍에 실려오는 포근한 봄의 기운을 담고 있습니다. 앨범의 타이틀이자 첫곡으로 Hee Young, 그녀는 친절하게도 넌지시 청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이 앨범은 사랑에 대한 노래들이며, 완성되지 못한 사랑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이라고.

'Knew Your City'는 뉴욕(New York)에서 활동하는 그녀의 언어유희가 녹아있는 제목이라고 하겠습니다. 점멸하는 신호등만이 길을 밝혀주는 뉴욕 밤거리의 밤안개를 뚫고 방황하는 그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자, 사춘기 시절을 보냈던 조지아(Geogia)와는 다르게 번잡한 뉴욕의 군중 속에서 느꼈을, 그녀의 '완벽한 이방인'으로서의 고독을 노래하는 곡이랄까요? 그런 점에서 "Knew Your City'라는 제목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에게 (뉴욕에서 만나게 되는 필연적인 고독에 대해 알라고)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Buy Myself A Goodbye"는 이미 파스텔뮤직에서 작년에 발표했던 "사랑의 단상 chapter. 3 : Follow You Follow Me"에 수록되어 친숙한 곡이네요. 그녀의 노래들이 외로움과 쓸쓸함에 대해 노래하지만, 이 곡은 그 상처들에 대한 치유의 노래입니다. "풀을 태우고 새로운 씨앗을 심는다"는 농작물 배제에 비유한 이별의 과정은 매우 참신합니다. 지난 EP에서부터 느꼈던 점이지만, 그녀의 가사 속에는 전원 생활에서 나오는 경험인지, '일상생활 속 자연과학'적인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데 바로 이 곡에서 정점이 아닐까 합니다. 가타와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오밀조밀 소리들은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흐름이라면, 드럼의 큰 북이 내는 무거운 묵직함은 누군가를 마음 밖으로 밀어냈지만 (가사처럼)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쳤지만 모르는 사람처럼 스쳐가야할 때 마음에서 전해지는 먹먹함으로 들립니다.

트랙 순서에는 4번과 5번은 우리말 버전이지만, 저는 뒤에 위치한 영어 버전 트랙들을 끌어와서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상처들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녀는 긍정적인 마음과 위트를 놓치지 않고 있는데, 바로 "Lonely Like Everyone"이 그렇습니다. "everyone, two, three, four"라는 에드립은 순간 당혹감을 주면서도 곧 그녀의 위트에 미소짓게 됩니다. 이어지는 "Big Knot"에서 제목 처럼 큰 매듭(knot)을 만들어 떠나지 못하게 한다는 가사는 그녀의 재치를 다시 느낄 수 있습니다. 또 big knot이나 뒤에 가사에서 등장하는 anchor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인연의 끈'과 어떤 점에서 닮아있어 가슴 시리게 하는 점이 있습니다.

"Fly Lo Fly Hi"는 좋은 곡들이 가득한 이 앨범에서도 특히 귀와 마음을 사로 잡는 곡입니다. 유유히 흐르는 기타와 현악의 강물 위로 물안개처럼 퍼지는 아련한 그녀의 목소리는 (뛰어난 가창력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숨이 막힐 만큼의 그리움과 간절함의 공기를 담고 있습니다. 더구나 '나'와 '그녀'를 대조하는 가사나 "4 Luv"의 탄식의 가사는, (아마도 북미의 정서에서는 보편적인 표현 방법인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사랑에 빠졌던 미국 대중음악의 '그녀들'의 화법과 많이 닮아있어, 더욱 더 마음이 끌립니다.

이제부터 락킹한 두 곡이 이어지는 첫 곡인 "Sally Mason"은 그녀가 읊조리는 이 이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부터가 궁금해지는 곡입니다. 그런데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면 이 이름의 주인공은 'University of Iowa'의 여성 학장의 이름입니다. Hee Young, 그녀가 왜 이 이름을 알 수는 없지만 그녀의 답답함을 호소할 가상의 누군가를 대신해서 이름을 부른다고 생각됩니다. "Let Me In"에서는 직접적으로 '너'에게 직접  비참함을 토로합니다. 나긋나긋한 시작과 탄식이 폭발하는 후렴구의 대비는 그녀가 '너'에게 느끼는 일종의 양가감정이 표출되는 것일까요?

기타와 현악이 울창한 숲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Winter Road"는 매우 사색적인 분위기로, 사랑하는 사람과 온종일 함께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결핍에 대한 노래가 아닐까합니다. "Call Your Name"은 중복되는 곡들을 제외한다면 마지막 트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앨범의 처음부터 바로 앞선 곡까지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가득찼다면 이 곡은 다릅니다. 꿈을 꾸는 듯 잔잔한 피아노 반주 위로 Hee Young과 함께하는 낮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궁금해지네요.  꿈 꾸는 듯한 사랑에서 깨어나지 않려는 간절함이 'anchor'같은 단어 선택에서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꿈을 꾸는 듯 잔잔한 피아노 연주'처럼 가사 속 상황자체가 '자각몽' 속의 일처럼 들려서 듣는 이에게는 서글픔이 더합니다.

앨범 "4  Luv"가 담고 있는 적지도 많지도 않은 10곡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백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합니다. 탁월한 멜로디, 진솔함이 묻어나는 가사는 뛰어난 가창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담백한 매력의 목소리를 빛나게하고 봄날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어떤 곡에서도 감정 표출에서 과잉되지 않은 목소리나 연주는 듣는 이를 편안하게 하는 미덕입니다.

그녀의 노래들은 미국 문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에서 만들어졌지만, 그녀의 음악적 배경에는 사춘기 시절을 보낸 조지아(Georgia)주에서의 시간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조지아주는 바로 미국 컨트리(Country) 음악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내슈빌(Nashville)이 주도(미국 주의 수도)인 테네시(Tennesse)주의 바로 동남쪽에 붙어있기에, 컨트리 음악의 영향을 충분히 받았을 법합니다. (그러고 보면 최근 4~5년 동안 제가 가장 즐겨들었던 앨범이 'Michelle Branch'와 그녀의 친구 'Jessica Harp'가 결성한 컨트리 듀오 'the Wreckers'의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앨범 "Stand Still Look Pretty"와 미국을 뒤흔든 컨트리 아이돌 'Taylor Swift'의 두 장의 앨범 "Fearless"와 "Speak Now"였네요.) 그녀의 음악을 컨트리라는 장르라고 확신하기는 쉽지 않지만, 기타와 바이올린을 비롯하여 여러 현악기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컨트리 음악의 특색은 녹아있습니다.

'Hee Young'은 활동 영역에서 해외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고 이 앨범도 영어 앨범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발매했기 때문인지 우리말 버전의 곡이 중간에 들어있습니다. 우리말 버전을 마지막에 넣었던 EP와 다른 점인데, 개인적으로 우리말 버전을 중간에 넣은 점은 이 앫범의 유일한 아쉬움이자 단점입니다. 하지만 담백하고 진솔한 그녀의 독백같은 노래를 수입반이 아닌 정식발매반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의 열악한 음반 시장을 생각한다면 행운이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 또 어떤 노래들로 찾아올지 기대가 되며 머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 그녀의 목소리와 사랑에 빠진 듯하네요. 별점은 4.5개입니다.

*예스24에서 예약판매로 구입을 했는데, 위드블로그 리뷰에 당첨되어서 CD가 2장이 되었네요. 이미 CD는 잘 받아서 듣는 상황에서 신청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