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로맨서(Neuromance)'라는 단어에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SF와 판타지 장르에 익숙하고 생물이나 의학적 지식이 있다면 '신경/신경계'를 의미하는 'neuro'와 '시체나 영혼을 조종하는 주술사'를 의미하는 '네크로맨서(Necromancer)'를 조합한 단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뉴로맨서'의 작가 '윌리엄 깁슨'은 사이버펑크(Cyberpunk)라는 장르를 개척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한다. '뉴로맨서'는 '사이버스페이스(Cyber Space)'나 '매트릭스(Matrix)' 같은 개념들이 등장하는데, 이 책이 발표된 때는 고작 1984년이었다. 제목부터 뉴로맨서와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는 '매트릭스(the Matrix)'나 인간의 인지 속 세상을 다룬 '인셉션(Inception)' 같은 영화들부터 소설과 코믹스들까지 이 작품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시대를 앞선 SF 작품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이버펑크'라는 장르도 흥미롭다. 전통적인 '고전 SF'에서는 소설의 결말이 비극적이더라도,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는 꽤 낙관적인 견해가 대세였다. 그 낙관적인 견해 속에서 인류는 꾸준히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뤄내고 지구라는 굴레를 벗어나 우주 개척 시대까지 나아갔다. 하지만 '사이버펑크'는 낙관적인 '유토피아적' 미래가 아닌, 불안과 허무로 가득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려낸다. '사이버펑크' 장르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하고, 과학기술은 현재보다 꽤 발전하지만 장미빛 미래는 아니다. 국가과 법을 대신할 '초거대 기업'과 '군산복합체'가 등장하고, 인류는 '안드로이드(인조인간)'이나 '개조인간'과 공존한다. 지구와 태양계 밖에 있는 인류가 이주 가능한 '골디락스 존'의 발견에 대해서도 상당히 부정적일까? '우주 개척'에 대해서도 뚜렷하지 않다. 20세기에 들어서 더욱 두각을 나타낸 '염세주의'와 '허무주의'의 영향으로도 보인다. '사이버펑크'를 생각하면, '인공적인 빛과 그림자가 둘러싼 거대한 도시'나 '향락의 네온 사인 불빛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한 안개와 매연이 가득한 골목' 등이 떠오르는 이유도 그런 디스토피아적 관점에 있겠다.  

소설 뉴로맨서는 그런 특징들을 잘 보여준다. 현실이 아닌 사이버스페스를 배경으로 하는 '전쟁'에서, 소모품인 '병사'는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는 평범한 '인간들과 인공지능들'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고전적인 메타포를 따라 세상을 구하는 '신화적/영웅적 모험담'과는 거리가 있고, '정의'나 '진실' 같은 불변의 가치도 보이지 않는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퇴폐와 염세로 가득하고 결말은 허무에 가깝다. 하지만 기존의 틀에 박힌 이야기가 아니고, 평범한 인생의 종착역에 더 가까운 이야기이기에 'SF 장르의 하나'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었을까? 지금은 꽤 익숙한 소재들을, 오직 글로써 시각적으로 그려낸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은 그 시대를 고려하면, 경이롭다. '모험담'보다는 큰 이야기의 줄기 속에서 '한 에피소드'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섬세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어서 끝까지 꽤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시대를 앞선 상상력' 만큼이나 '시대를 앞선 화법'이라고 할 만 하겠다. 두 번째 소설까지만 발간된 '스프롤 삼부작'이 마지막까지 온전히 번역되어 출간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