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信)의 반대는 불신(不信)이 아니다. 바로 의심(疑心)이다...


신을 믿는 자들은 신을 믿지 않는 자들, 흔히 불신자(不信者)들을 교화시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불신, 믿지 않음은 다른 면에서 보면 또 다른 '강력한 믿음'이다. 무신론, 그 자체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무신론자로 출발된다. 하지만 한 시대의 과학의 궁극에 달한 과학자들은 다시 신에게 귀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로 종교와 무신론의 맞닿은 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지구의 한 점에서 두 사람이 반대로 걸어가다보면 결국에는 지구 반대쪽 다른 한 점에서 만나게 되는 이치처럼...


한 3~4년 전만 하더라도 지하철 역이나 전철 안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도통 볼 수가 없다. 요즘 조금만 거슬려도 주먹부터 나가는 사람들이 많기때문인지, 외치던 사람들도 모두 자제하고 있나보다. 덕분에 전철안에서 마음껏 졸 수 있어서 좋다.

의심...의심은 믿음이 불신으로 변질되는 중간 과정이 아닌 믿음과 불신의 일직선과는 떨어져있는 믿음의 부패(腐敗)이다.

종교개혁 이전 지금의 카톨릭과 하나였던 개신교는 크리스트교의 부패에 저항하여 다른 길을 취한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의 모습을 보면 또 다른 종교 개혁이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된다.

믿음을 외치며 뒤로는 욕심 채우기에 급급한 (적지 않은) 몇몇 종교 지도자, 특히 '목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과연 그들이 신을 믿고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니 그들은 확실히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다.

그들이 펼치는 탐욕은 신의 이름 아래 인간이 행했던 엄청난 과오, '십자군 전쟁'과 다를 바가 없다. 신의 뜻을 행하는 믿음의 군대의 업적은 확실히 '의심하고 있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수 세기가 흐른 지금, 또 다른 '탐욕의 십자군'이 다시 생기고 있다. 믿음이 있다면 그런 과오를 범하지 못하리라.

내 주위에도 성당이나 교회에 다니면서 위선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예로, 어떤 이웃이 강아지를 데려다 놓고 몇일만에 버리면서 하는 변명이 '하나님이 인간이 동물을 다스리라고 했다.'였다. 허울좋은 핑계다.


어머니, 아버지 양가가 모두 카톨릭이고 세례도 받았지만,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에 의해 왜곡된' 교리에 거부감을 느낀다. 오히려 진짜 신이 있다면 인간만을 편애하는 신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불교의 교리처럼 모든 생명체에게 같은 자비를 베푸는 모습일 것이다. 결코 많은 인간들이 원하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이것이 '우주의 절대 의지'라고 생각된다. 죄를 행한자 결국에는 그 죄값을 치르게 된다. '평일동안 죄를 행하고, 다음주에 다시 죄를 행하기 위해, 알량한 마음의 안식을 얻기위해 주말에 종교를 찾는 사람들'보다는 신을 믿지 않고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