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라스윗 - 계절의 空 (계절의 공)

옥상달빛, 루싸이트 토끼, 랄라스윗, 제이레빗, 스웨덴 세탁소...인디씬의 '여성 듀오'를 생각하면, 활동 중인 팀들이 더 있겠지만, 제가 최근 몇 년 동안 즐겨 들었던 수준에서는 대략 이 정도가 떠오릅니다. 그 가운데서도 인지도를 떠나, 가장 '꾸준한 음반 작업과 공연 활동'을 보여주는 팀이라면 '랄라스윗'이 아닐까요?

2010년에 첫 EP '랄라스윗'을, 2011년에 첫 정규앨범 'bittersweet'을 발표했던 듀오 '랄라스윗'은 2014년 두 번째 정규앨범 '너의 세계'에 이어 2015년 10월에 두 번째 EP '계절의 空'을 발표했습니다. 최근에 음반 구입이 조금 느슨해지면서, 조금 늦게 이 앨범을 발견했네요. 한자 '空(공)'은 우리말로 '공허(emptiness)'나 '덧없음(vanity)'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는데, 겨울을 앞둔 10월 말에 발매되었기에 그 의미가 더 확연하게 느껴집니다.

'밤의 노래'를 시작으로 총 4곡을 담고 있는 EP는 멈추지 않고 변화하는 계절의 쓸쓸함과 밤의 감정을 노래합니다. 첫곡 '밤의 노래'는 여름이 자나가고 가을이 다가오면서 고즈넉하게 깊어가는 밤의 감정을 노래합니다. 이어지는 '불꽃놀이'는 화려한 불꽃놀이 후 다가오는 허무한 쓸쓸함을 노래합니다. 불꽃놀이가 더 밝고 화려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밤은 더 어두울 수록 좋고, 그래서 모든 불꽃이 사그라든 뒤에 느껴지는 허무의 깊이는 더 깊을 수 밖에 없나봅니다. '여성 듀오'다운 보사노바 스타일의 '시간열차'는 잡을 수 없는 시간과 청춘에 대한 노래입니다. 뜨거운 여름과 쌀쌀한 가을의 변화 사이에서 유독 그런 쓸쓸한 감정들이 심해지는데,  쉼 없이 지나가는 인생을 열차에 비유한 점이 재밌습니다.

마지막 곡은 외국곡을 번안한 'Cynthia'입니다. 원곡은 스웨덴 뮤지션의 곡 'Sincere'이고, 이 원곡을 일본의 여가수 '하라다 토모요'가 'Cynthia'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여성 뮤지션이라는 점과 문화적 친근성 때문일까요? 랄라스윗의 리메이크는 원곡보다는 일본 리메이크곡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Sincere'가 리메이크하면서 'Cynthia'가 된 이유는 비슷한 발음 때문이겠죠?

달, 겨울, 그리고 밤...보통 노래에 등장하는 '달'은 분위기를 만드는 소재가 되거나, 기원이나 기도를 들어주는 대상입니다. 하지만 독특하게도 이 노래에서는 '달'을 의미하는 제목처럼, 화자가 되어 노래합니다. 의인화된 달이 주인공이 되어 노래하는 겨울의 밤은 자연의 섭리를 시(詩)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절히 배치된 피아노 연주와 현악 연주는 쓸쓸함과 애절함을 더 짙게 합니다. 사실 마지막 한 곡 만으로도 이 음반의 소장 가치가 충분하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나 좋은 곡입니다. 더 좋은 곡들이 가득한, 랄라스윗의 세 번째 정규앨범을 기대해봅니다.
2016/02/03 17:54 2016/02/03 17:54

에쿠니 가오리 - 소란한 보통날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은 '인기 작가'답게 꾸준히 우리나라에도 소개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2016년에는 작품들의 국내 출간 속도를 따라잡겠다는 마음으로, 작년 말부터 꾸준히 읽기로 했다.

이번에 읽은 '소란한 보통날'은 '장미 비파 레몬'보다도 앞선 1996년에 일본에서 발표된 작품이다. 고작 4년 차이지만 꽤나 '옛날 생각'의 느낌이 짙다. 이유는 '1990년대'나 '20세기'가 주는 '시간적 차이의 무게감'일 수도 있겠지만, '소란한 보통날'의 주인공이 19세 정도로 어린 나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소설은 작품 속 화자 '고토코(셋째)'를 중심으로, 그녀의 남매들 '소요(첫째)', '사마코(둘째)', '리쓰(막내)' 그리고 네 남매의 부모가 풀어나가는 일상을 담고 있다.

이야기의 배경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1996년에 발표된 점을 생각하면, 적어도 90년대 초반이나 그 이전일 수도 있을 만큼, 이야기 속 네 남매의 생활은 '디지털'이나 '스마트'라는 단어와는 멀다. 더구나 짬짬히 등장하는  '네 남매의 더 어렸던 시절'에 대한 회상은 '진짜 옛날 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아마도 8,90년 대를 기억하는 지금의 30, 40대의 유년기나 청소년기와 겹칠 만한 부분도 분명히 있으리라.

보통 가족의 이야기지만, '소란한'이 붙은 만큼 마냥 평범하지 많은 않은 네 남매의 이야기라서 꽤 재미있다. 작가는 네 남매를 통해 변화하는 시대상을 담고 있는데, 첫째 소요를 통해 '이혼'과 둘째 사마코를 통해서는 '독특한 연애'와 더불어 '미혼모', '입양' 등 이전 세대에게는 낮선 소재들을 담고 있다. 그나마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고토코'도 고등학교 졸업 후에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하지 않은 상태이고 막내 '리쓰'는 '은둔형 외톨'이나 '왕따'는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성적인 청소년들'이다.

이제는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그리고 기억 속에서 안개가 점점 짙어지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는 점이 좋았고, '나도 형제자매가 더 많았다면 즐겁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또, 반복하는 이야기지만, 일본 사회의 성숙함에 다시 놀랐다. 90년대 초중반이 배경이지만, 소설 속 주인공의 가족들이 받아들이는 첫째 '소요'의 이혼에 대한 반응은 너무나 '쿨'하다. 미국 소설이라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이고 게다가 약 20년 전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혼에 대한 태도는 지금의 우리 사회보다도 더 성숙한 분위기다.

소설 속에서 느껴지는 '일본 사회의 성숙함'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빠른 서구화를 겪었기 때문이겠지만, 결코 우리가 따라 잡을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선진국민으로서의 여유와 질서  그리고 존중'이 느껴지기에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난다.
2016/01/19 14:56 2016/01/19 1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