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 - 장미 비파 레몬

오랜만에 읽는 에쿠니 가오리의 장편 소설 '장미 비파 레몬'.

'에쿠니 가오리'는 국내에게 꽤나 유명하고 인기있는 일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꽤나 많은 작품들이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지만, 사실 그녀의 대표작 '냉정과 열정 사이' 외에는 '재밌다'고 할 만한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편이다. 그나마 '냉정과 열정 사이'를 제외하면 재밌게 읽은 소설들은 대부분 단편집들이었다. 그렇기에, 사실 '장미 비파 레몬'도 큰 기대는 없이 읽었다.

그런데 기대 이상이다. 아니, 상당히 재미있다. 그녀의 장편 소설로서 '재미'는 한 손의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로서는 드물게, 등장인물들이 상당히 많다. 그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하나씩 들쳐보고, 새롭게 연결되는 고리들을 따라가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굳이 비유하자면 '미드 위기의 주부들 +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한국식 막장 드라마'를 적당히 버무렸다고 할까? '위기의 부부 관계'라는 긴장감 넘치는 배경 속에서  그 '위태로운 관계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점이 매력적이다.

일본에서는 2000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주요 등장인물로 '네 부부'가 등장하지만, 아이가 있는 부부는 한 쌍이고 그 아이도 단 한 명이라는 점은 꽤 이상하면서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한국은 2010년 전후로 '저출산'이 큰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10여년에서 20년 정도 시차를 두고 일본에 이어 한국에 나타나는 다른 문화 사회현상들(커피, 와인, 미식 등)처럼, 저출산도 일본은 이미 최소 20년 전에 '겪기 시작한 혹은 겪어왔던' 문제로 소설 속에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점이다. 한국은 얼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저런 '극심한 저출산'에 익숙해 질 수 있을까? 몇몇 부분에서는 확실의 우리나라보다는 여러 부분에서 '선진국'이라고 할 수있는 일본의 문화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대비할 이유가 있어보인다.

중간에 삼천포로 빠졌지만,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세계에 입문하는 사람에게도 '장편 소설'로는 '그녀의 작품 세계의 필수 교양서'라고 할 수 있는 '냉정과 열정 사이' 다음으로 추천해고 싶은 책이었다.
2015/11/03 01:02 2015/11/03 01:02

아이유(IU) - CHAT-SHIRE

기억이 맞다면,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된 때는 2009년 상반기 쯤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주목하게 된 이유에는 흔하지 않은 '솔로'로 데뷔한 '여자 아이돌'이라는 점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어느 동영상 때문이었습니다. '여신'이라고 부를 만큼 뛰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10대답게 풋풋하고 귀여운 외모의 소녀가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모습에서, 한국 가요계에서는 찾기 힘든 '크게 성공할 만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모습이 보였고, 그녀의 미래가 궁금해졌습니다. '싱어송라이터'에 주목한 이유는 그때도 한참 빠져있던 'Taylor Swift'의 영향이기도 합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그녀의 '성장'은 아쉽게도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아이돌'을 뛰어넘는 독보적인 '가창력'으로 인정받는 실력파 뮤지션이 되었고, 수 많은 메스컴이 주목하고 수 많은 국민들이 그녀의 이름을 하는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바로, 본명인 '이지은'보다 예명이 더 친숙한 '아이유(IU)'입니다.

지금까지 그녀의 행보는 다분히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싱어(가수)'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정규 2집부터는 꾸준히 자작곡을 들려주면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모든 곡의 작사니 작곡에 참여한 새 미니앨범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오랜 기다림의 결실이었죠. '아이돌'로서의 그녀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풋풋한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생각하면 언제나 아쉬웠으니까요.

공식적으로는 '네 번째'가 되는 미니앨범의 제목은 'CHAT-SHIRE'입니다. 톡특한 제목인데,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입니다. 네티즌들의 추측에 의하면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체셔캣(Cheshire cat)'을 의미한다는데, 앨범의 아트웍이나 사진 컨셉트 그리고 수록곡의 가사까지 고려한다면 꽤나 신뢰할 만합니다. 다만 "왜 변형하여 사용했을까?"하는 의문은 남습니다.

첫 곡 '새 신발'의 제목에서부터 딱 떠올랐던 곡은 정규 3집의 '분홍신'입니다.(가사에도 역시 '분홍신'이 등장하기는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소녀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너무 '성숙함'을 정규 3집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습니다. 또, 기교를 아끼면서도 상쾌하고 편안하게 부르는 창법이나 그녀가 직접 쓴 시원하고 자유로운 가사는 분명 지난 앨범과는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다분히 '아이돌'이 아닌 '싱어송라이터'에 가까워진 모습으로 내놓은 앨범의 첫 곡이기에 '새 신발'은 적절한 배치입니다. 다만 자작곡이 아니라는 점이 '옥의 티'네요.

모든 가사를 그녀가 직접 쓴 만큼, 가사가 꽤 고백적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Zeze'는 꽤나 은유적인 표현들이 가득하고 또 꽤나 '야하다'는 느낌이 드는 곡입니다. 사실 이번 미니앨범의 수록곡들은 은유적인 표현들이 많이보이는데, 이 곡이 '은유'로는 그 정점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녀와 연애를 하다가 더 어린 여자에게 떠난 누군가를 저격하는 곡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맞다면 그 누군가는 꽤나 뜨끔하겠습니다.

이어지는 '스물셋'은 타이틀로 Zeze만큼이나 논란이 될 수 있는 곡입니다. 컨셉트부터 은유가 가득한 이 앨범에서 비교적 솔직한 곡인데, 경쾌한 진행 위로 풀어내는 그 솔직함이 주는 후련함이 꽤나 매력적입니다. '연예인'과 '행복하고 싶은 23세 여성'으로서 갈등도 담아냈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변덕스러운 '메스컴과 여론'의 태도를 당당하고 꼬집는 점입니다. 조금 위험해보이는 솔직함이지만, 이제는 이런 변덕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성숙하고 성공한 그녀의 당당함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올해의 노래'로 뽑을 수 있을 만큼, 가사나 곡 모두 '아이돌의 노래'라고 하기에는 놀라운 수준입니다.

작사/작곡 모두 그녀가 해낸, 온전한 '그녀의 곡'이라고 할 수 있는 곡은 총 3곡인데, '푸르던'은 그 시작입니다. 잔잔한 기타 연주 위로 흐르는 여린 그녀의 음성은 딱 그녀의 첫인상을 떠오르게 합니다. 적절한 비유와 서정성은 '싱어송라이터 이지은'이 추구하는 음악 세계가 아닐까요? '푸르던'이라는 과거형의 제목부터 가사로 이어지는, 잡을 수 없는 지난 시간에 대한 '잔잔한 아쉬움'은 꽤나 좋습니다. 다만 이 곡을 반드시 기억하게 할 만한 어떤 '임팩트'라고 할 만한 부분이 없는 점은 아쉽습니다.

음원깡패 '자이언티(Zion.T)'와 함께한 'Red Queen'은 제목에서부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오릅니다. 스윙째즈풍 연주와 자이언티의 음성은 담배연기 자욱한 바(bar)를 연상시킵니다. 가사는 역시 다분히 은유적인데, 그 가사의 주인공은 남이 아닌 '그녀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자전적인 느낌입니다. 

'무릎'도 온전한 '그녀의 곡'으로 가슴시린 발라드입니다. 이번에는 기타가 아닌 피아노 반주와 함께 하는데, '푸르던'보다 절정이 뚜렷한 곡의 흐름으로 자작곡 가운데서는 가장 사랑받을 만한 곡입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지금의 외로움을 절제된 감정으로 노래하는 모습에서는 '신인같은 풋풋함'과 '8년차 뮤지션의 노련함'이 교차합니다. '누구'의 무릎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무릎에서라도 잠시 위안을 얻을 수 있길 바랍니다.

마지막 자작곡 '안경'도 다분히 은유적이며, 제목 자체는 중이적이기도 합니다. 가사까지 살펴보면 '그녀에 대한 타인들의 삐뚤어진 시선'인 '색안경'을 의미할 수도 있고, 그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는 '안경'이기도 합니다. 안경 없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은 '스물셋'의 당당함과도 이어지지만, 꽤 적극적인 '스물셋'과는 다르게 이 곡에서는 소극적인 자세로 들립니다.

 '싱어송라이터 이지은'으로서는 이제 크게 한 걸음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부터 자작곡들로 성공했던 Taylor Swift와는 다르게 꽤나 먼 길을 돌아왔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 이지은'을 기대해도 좋을까요? 앨범의 별점은 4개입니다.
2015/11/01 21:03 2015/11/01 2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