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언 연대기 - 드래곤의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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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판타지'라는 장대한 '퍼언 연대기'. 작가 '앤 맥카프리'가 창조한 이 방대한 연대기 중 첫번째로 국내에 번역 출간된 '용기사 3부작'의 첫번째 이야기 '드래곤의 비상(Dragonflight)'.

우선 이 소설을 설명할 만한 단어들을 열거하면 '불굴의 의지, 기사도, 교감, 로맨스, 공중전투, 그리고 공간이동'정도가 되겠다. 이야기의 중심에 여주인공(레사)를 내세운 '드래곤의 비상'은 여성작가의 섬세함으로 풀어나간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 점점 성장하는 여주인공 '레사'의 모습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진 '오노 휴우미'의 '십이국기' 중 '요코'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성별만 다를 뿐, 이런 모습은 많은 판타지 소설 속 주인공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하겠다.

'플라프'와 '프로노', 두 이복 형제를 비롯한 용기사들의 기사도, 용기사들과 드래곤들의 교감 그리고 드래곤들의 '간극'을 뛰어넘는 '워프'같은 능력은 소설의 묘미이자 이 소설을 판타지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드래곤과 용기사가 '사포'를 상대로 싸우는 모습은 가슴 한 켠에 '전투기와 혼연일체된 파일롯의 로망'을 끌어오르게 한다. 용기사들사이의 신경전이나 용굴과 성채들의 알력은 이젠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전개를 보이지만, 식상하지 않다. 더구나 이 소설은 2000년대가 아닌 1968년(!)에 쓰여졌다.

소설은 판타지적 요소들 뿐만 아니라, '기사도'와 함께 빠질 수 없는 '레이디와의 로맨스'에도 충실하다. 숙명의 배우자로서 플라프와 레사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붉은 별'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긴박하게 흐르고 첫번째 출격 직전의 상황은 로맨스의 첫번째 정점이라고 하겠다.

'퍼언 연대기'를 '그냥 판타지'가 아닌 '사이언스 판타지'로 만드는 요소도 충분하다. 퍼언인들이 사실은 지구인들의 후예로 우주여행을 통해 다른 항성계에 이주했다는 설정부터 퍼언의 토착 동물을 유전공학으로 개량하여 '드래곤'을 만들어냈다는 설정까지 여러 설정에서 각종 과학의 힘을 빌리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백 회년의 휴지기'는 항성계의 여러 행성들 사이에서 미치는 인력때문이라는 그럴싸한 배경이 깔려있다.

이런 판타지적이고 과학적인 요소들이 얽혀 풀어나가는 이야기들, '붉은 별'에 대한 '용굴'의 대비와 사백 회년 전의 비밀은 공간적 간극뿐만 아니라 시간적 간극까지 뛰어넘는 드래곤의 능력으로 연결되고 퍼언의 세계는 확장된다. 시간을 초월한 여행과 시공의 '필연적이지만 위태로운 균형'은 결국 '돌고 도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연상시킨다. 과거와 미래, 양 시간대의 교류는 한 쪽이 없으면 양쪽다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달걀과 닭'의 관계와 같고, 달걀이면서 닭인 생명체는 없듯이 양 시간대의 균형을 생각하는 모습은 많은 '시간여행'물에서 고려되는 '시간의 충돌'을 염두하고 있다. 또 이 시간의 초월이라는 경천동지할 드래곤의 능력으로 여러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도 갖게 된다.

부록을 제외한 본문만 400페이지가 넘는 3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도 '다섯개 용굴 연합 드래곤 편대들의 비상'으로 끝이난다. 하지만 더 두꺼운 분량의 두 권이 더 남아있으니 아쉬워하긴 이르다. 이번 3부작뿐만 아니라, '퍼언 연대기'라는 길고 방대한 이야기의 다른 조각들도 소개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2007/09/13 15:38 2007/09/13 15:38

폴 오스터 - 유리의 도시 (뉴욕 3부작 中)

예전에 '파스텔뮤직'의 어떤 음반을 사고, 이벤트 상품으로 받았던 '폴 오스터'의 대표작이라는 '뉴욕 3부작'. 첫번째 이야기 '유리의 도시'.

솔직히 이야기하면 참 혼란스럽다.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익명성과 진실된 이름, 그리고 인간의 추락... 이런 것들이 작가가 전하려는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작품 속에서 '윌리엄 월슨'이라는 필명으로 '맥스 워크'의 이야기를 쓰는 '데니얼 퀸'의 관계는 '폴 오스터'란 필명으로 '데니얼 퀸'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관계를 빗댄 모습일지도 모른다. '폴 오스터'가 작가의 본명이라면, 소설 속 오스터의 친구인 화자의 입으로 '데니얼 퀸'의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의 관계로 대치될 수도 있겠다. 사실 무명의 화자는 소설 속 '폴 오스터'일 수도 있겠다.

소설 속 '돈키호테에 대한 대화'-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실존 인물이고 돈키호테의 의도에 의해 세르반테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는-처럼 소설 자체도 그 형식을 빌린 듯도 하다.  하지만 소설 속 돈키호테가 누군지 확실하지는 않다. 데니얼 퀸일 수도, 폴 오스터일 수도 있다. 사실 두 인물이 동일이거나, 퀸은 단지 소설 속 오스터가 지어낸 인물일지도 모른다. '돈키호테(소설 속 폴 오스터 혹은 데니얼 퀸)'를 실제 지어낸 사람이 돈키호테(작가 폴 오스터)이과 소개하는 사람이 '세르반테스(소설 속 화자)'인 것처럼.

소설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해서 쓴다고 했지만, 써놓고 보니 참 어지럽다. 유리의 도시가 그렇다. 익명성의 탈을 쓰고 시작된 이야기는 진실된 이름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고 다시 이름을 잃어가는, 어쩌면 존재를 읽어가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한 사람으로서의 현대인의 익명성. 작가는 뉴욕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서로 서로에게 무관심한, 그 익명성에 대해 생각하길 바란 건 아니었을까?  이름이 존재를 나타낼 수 있을까? 우리의 명함과 물질들이 이름을 대신할 수 있을까? 그 명함과 물질들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이름도 존재도 사라지는 것을까? 진정한 나의 존재를 나타내는 이름은 무엇일까? 이런 이상한 질문들이 자꾸 떠오른다.

어린 시절을 어둠 속에서 보냈던 '피터 스틸먼'처럼, 데니얼 퀸도 마지막에는 피터의 경험을 하게된 것일까? 명함과 물질을 잃어가면서 피터의 아버지 스틸먼이 피터에게서 찾으려했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간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면 소설 속에 누가 '아(我)'이고 '타(他)'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어파리 사람의 본명 또한 다른 수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또 다른 익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뉴욕이라는 대도시 속에서 펼쳐지는 꿈같은 현대식 도시형 판타지가 바로 '유리의 도시'를 조금은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일 수도 있겠다.

*작품의 깊이에 조금은 놀랍기도 하다. 아직 문학에 대해 짧은 나에게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 사이의 깊이 차로 보인다.

2007/09/08 23:07 2007/09/08 2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