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 끈

'더더'와 '푸른새벽'의 히로인 '한희정', 솔로 1집 발표 후 약 10개월만에 EP '끈' 전격 발표.

'더더'와 '푸른새벽'이라는 경력으로 수식되었던 '한희정'은 작년 7월에 발매된 솔로 1집 '너의 다큐멘트'로 그녀의 경력들과는 다른 상큼한(?) 모습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녀의 1집이 결코 나쁘지 않은 음반이었지만, '푸른새벽'시절 공연때마다 비좁은 '빵'을 가득 메웠던 팬들의 귀를 만족시키기에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어쿠스틱 여전사(혹은 여신)'였던 그녀에게 밴드 사운드와 샤방함은, 물론 공연장에서는 좋았지만 방에서 듣기에는, 명곡 '스무살'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이질감이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이 앨범의 키워드는 두 개입니다. 앨범의 타이틀 '끈'과 '어쿠스틱'입니다. 앨범 자켓에서 그녀가 잡고 있는 실뭉치, 바로 '끈'이며, 수록곡들을 들어보니 아마도 '인연의 끈'을 의미한다고 생각됩니다. '어쿠스틱'은 말 그대로, 기타와 함께하는 '어쿠스틱 여전사(혹은 여신)'으로 돌아온 그녀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감격의 앨범 '끈', 시작합니다.

'어쿠스틱'을 표방하고 나섰기에 첫 곡의 제목은 'Acoustic Breath'입니다. 환경소음이 지나간 후 시작되는 기타 연주와 그녀의 목소리, 너무나도 기다렸던 신선한 어쿠스틱의 느낌입니다. 더불어 '끈', 그 인연의 끈을 놓치지 않기위해 그녀의 기타와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합니다. 아침 공기처럼처럼 상쾌하지만, 무거운 한숨처럼 서글픔이 묻어있습니다. 과연 그녀가 기다리는 '너'는 그곳에 있을런지요.

이어지는 '러브레터'는 이 앨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트랙입니다. 역시 그녀와 기타의 조합, 거기에 새로 합류한 첼로는 서글픈 심상을 대변합니다. 조근조근 키보드 소리는 눈앞을 흐리는 눈물처럼 아롱거립니다. 앞선 Acoustic Breath의 자신의 '기다림의 자세'에 대한 노래라면, 러브레터는 '너에 대한 바람'을 노래합니다. 결국 보내지 못할 편지는 놓쳐버린 끈처럼 아프기만 합니다. 제가 '푸른새벽'이 아닌 '한희정'으로서 그녀에게 기대하던 모습, 바로 이곡에 담겨있습니다.

'끈', 제목 그대로 인연의 끈에 대해 노래합니다. 이제는 웃을 수 있는 추억처럼 이야기하지만 마지막은 아쉽기만 합니다. '오늘만'은 1분 30초 정도의 짧은 곡으로 공허한 어리광같은 곡입니다.

'솜사탕 손에 핀 아이'는 그녀의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던 곡으로 어깨에 힘을 빼고 천진하게 부르는 목소리가 인상적입니다. 천진하게 부르지만 가사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역시 놓쳐버린 끈에 대한 아픔이 숨어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흐드러지게 핀 꽃들처럼 환하게 웃을 수 밖에 없겠죠. 너무 기뻐 눈물이 날 정도로 웃을 수 밖에 없겠죠. 추억은 추억으로. 그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추억이 소중한 그 만큼,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 추억에 대한 예의일테니까요.

'멜로디로 남아'는 파스텔뮤직의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에 수록되었던 곡으로, 이번에는 밴드 'Nell'의 '김종완'과 함께합니다. 이미 놓쳐버린 끈에 이제 미련은 남아있지 않나봅니다. 미련들은 모두 눈녹듯 사라지고, 인연에 초연해진 마음은 끈의 그림자를 멜로디로 승화시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의 불협화음은 귀에 거슬립니다. 차라리 '사랑의 단상'에 수록되었던 버전으로 수록되었다면 더 좋았을 법하네요. (절대 질투하는 건 아닙니다.)

'끈'에서 받침하나를 바꾸었을 뿐인데, '끝'이라는 아픈 단어가 되어버립니다. 어쩌면 '끈'의 양쪽을 잡고 있는 '두 사람(二)'에게는 결국 '끝(ㄴ + 二 = 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끈이 결국 '헛된 꿈'이었다고 새침하게 말하는 목소리에서, 이제서야 어떤 그림자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시 '어쿠스틱 여전사(혹은 여신)'로 돌아온 그녀, 게다가 그녀에게 기대하던 아름다운 곡들과 함께하는 그녀,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1집이 세련되고 멋지지만 어딘가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고 어색한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면, 드디어 이 앨범에서 두 어깨에 힘을 빼고 그녀에게 잘 어울리고 편안한 옷을 찾은 느낌입니다.

Acoustic Breath는 어쩌면 그녀의 이런 모습을 기다려온 팬들을 위한 노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러브레터는 기다려준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나 당신의 기타와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언제까지나 귀기울이고 있을테니까. 언제까지나 음악과의 끈을 놓지말아주세요. 반대편에서 그 끈을 꼭 잡고 있을게요. 별점은 5개입니다.

2009/05/28 20:56 2009/05/28 20:56

어른아이 - Dandelion

데뷔앨범 'B TL B TL' 이후 약 2년 반만에 새앨범 'Dandelion'으로 찾아온 '어른아이'.

2집의 타이틀 'Dandelion'의 의미는 '민들레'입니다. 자켓을 보면 여러 손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수화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의미가 궁금해집니다. 자켓 디자인에 참여한 작가의 별명이 '꽃도둑'이라고 하니 재밌습니다. 1집 'B TL B TL'은 타이틀처럼 비틀비틀거리는 슬픔으로 가득찬 앨범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괜찮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비내리는 날 정도가 아니면 즐겨듣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2집에서도 과연 그럴지 살펴봅시다.

첫 곡 'Annabel Lee'는 파스텔뮤직 홈페이지에서 미리듣기로 짧게 공개되어 많은 기대를 모은 트랙입니다. 가사는 '우울과 몽상'으로 유명한 '애드거 앨런 포우'의 동명의 시를 인용했습니다. 1집의 첫곡 'B TL B TL'을 기억하시나요? 그 곡에서 시작과 함께 빗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면, 이 곡에서는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가사에  'a kingdom by the sea'가 등장하기 때문이겠죠. 해변을 거닐며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느릿느릿 읊는 목소리는 세상 풍파에 초탈한 느낌입니다. 파도소리와 함께 끝날 것만 같았던 곡은 파도에 무서지는 물거품처럼 슬픔이 서려있는 목소리로 여운을 남깁니다.

'행복에게'는 지금까지의 '어른아이'의 곡답지 않게 밝은 제목과 그 만큼 밝은 사운드를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하니, 지긋이 기다리면 언젠가는 행복이 찾아오겠죠. 이 앨범을 관통하는, '어른아이의 변화'를 알리는 곡이 아닌가 하네요.

'민들레'는 이 앨범 타이틀 'Dandelion'과 같은 제목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다시 피어나는 민들레의 질긴 생명력을 노래합니다. 앞선 두 곡과는 보컬의 음색이 다릅니다. Annabel Lee가 두성의 느낌이었다면, '행복에게'는 가성이었습니다. 이 곡은 육성 정도가 되려나요? 그 토닥여주는 느낌이 좋습니다. 아스라이 들려오는 오보에(?) 소리도 인상적입니다.

음색이 또 다른 'Fool', 보고싶은 얼굴을 우연히 보았을 때 느낄 법한 감정들, 생각해두었던 말들은 사라지고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하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쩔수 없다고 내게 말하지만, 어쩔수 없다면 내게 말하지마!'라는 상당히, 아니 너무나 긴 제목의 이 트랙은 상쾌하게 질주하는 기분이 들게합니다. 'Miss'는 제목처럼 그리움에 대한 곡으로, 전작의 'Sad thing'처럼 간단한 가사의 반복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그 반복은 끝없이 울려퍼져 마치 출구 없는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게합니다. '그리움'이라는 미로에요.

'아주 아주 슬픈꿈', 제목만으로는 상당히 슬픈 곡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멜로디는 슬프기보다는 상쾌하기까지 합니다. 앨범 전반적으로 밝아진 분위기이고, 1집의 슬픔이 주체할 수 없어 쓰러질 정도의 무게였다면 2집에서의 슬픔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여서 한 때의 감기처럼 지나가버리는 느낌입니다. '서성이네'는 groovy한 기타연주가 돋보이는 트랙입니다.

'You' 화려한 현악 편곡으로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트랙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 결국은 바로 '너'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여기까지 들었다면 확실히 느꼈겠죠? 어른아이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쿨한 멋에 취해있던 모던락 소녀가 봄 바람에 이끌려 어여쁘게 꾸밀줄 하는 숙녀가 되어가는 것일까요? 늦은 사춘기일까요?

마지막 곡이라고 할 수 있는 'I Wanna B'는 이제 'You'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을 꺼내는 트랙입니다. 간결하지만 뭔가 깜찍하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느낌이 마음에 듭니다. 1집에서 이런 상큼한 곡이 있었던가요? 'Annabel Lee(single version)'은 파도소리가 빠진 버전입니다.

'Dandelion'의 꽃말은 '신탁', '사랑의 사도', '사랑하는 그대에게' 등 여러가지가 있답니다. '어른아이'에게 신탁이라도 내려졌을까요? 1집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상쾌하고 상큼한 느낌들, 어떤 뮤지션들의 어떤 변화들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을 수 있지만 어른아이의 이런 변화들은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2009/05/28 14:01 2009/05/28 1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