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im - Days are gone

형제자매로 구성된 밴드를 나열하라고 한다면, 나이가 지긋한 누군가는 'Capenters'와 'Bee Gees'를 떠올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Hanson'이나 'the Moffatts', 'the Corrs', 혹은 'Jonas Brothers'같이 비교적 젊은 세대의 밴드를 떠올릴 수 있겠다. 이제 형제자매 밴드 리스트에 새로운 이름을 추가해야 겠다. 바로 'Haim'이다.

Haim은 국내에는 아직도 낮선 이름이지만, 첫 정규앨범이 발표하기 전인 2012년 말부터 영국 BBC의 컨테스트 'Sound of 2013'의 우승자로 이름을 알리는 동시에 기대를 모은 밴드이다. 독특한 점은 앞서 나열한 밴드들이 모두 형제 혹은 남매 밴드였지만, 이 밴드는 '자매 밴드'라는 점이다. (영국이 아닌) 캘리포니아 출신의 세 자매 Este Arielle Haim(1986), Danielle Sari Haim(1989), 그리고 Alana Mychal Haim(1991)로 구성된 이 밴드는 여느 형제자매 밴드들처럼 성(family name)을 밴드 이름으로 사용했다. 모두 20대 밖에 안되는 세 자매의 밴드라고, 보통 여자 아이돌처럼 말랑말랑하거나 달콤한 음악을 한다고 하면 큰 오산이다.  꾸미지 않은 생머리를 치렁치렁하게 (마치 8,90년대 남성 락스타들처럼) 기른 세 자매의 헤어스타일은 이들의 음악이 아이돌 밴드와는 거리가 있음을 환기시킨다. 또, 어린 시절부터 가족밴드 및 걸 그룹 활동을 하면서 음악과 함께 자란 세 자매는 모두 한 가지 이상의 악기를 다를 줄 안다고 한다. Haim에서는 주로 베이스를 연주하는 Este는 기타도 연주할 수 있고, 메인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는 Danielle는 드럼 세션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고, 주로 키보드를 연주하는 Alana도 기타와 퍼커션를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00년 대부터, 급부상한 밴드들이 장르파괴적인 음악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이제는 장르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구분이 무의미해고 있는데, 이 밴드의 음악 역시 그렇다. 1970년대 활동한 soft rock 밴드 'Fleetwood Mac'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세 자매의 주장에 따르면 R&B/Hip-hop가 혼합된 folk rock 정도로 들릴 수도 있다. 혹자는 Glam rock 등 Hard rock과 Garage rock을 들려준다고도 평하기도 한다. 이처럼 듣는 이에 따라서 규정하는 장르가 다양할 만큼 Haim이 여러 장르의 밴드들의 영향을 받은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확실히 복고적인 요소를 들려주고 있지만, 복고를 바탕으로 그를 뛰어넘는 '새로움'을 들려주는 점이 이 밴드가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이유가 아닐까?

여성 3인조 밴드의 음악으로서는 상당히 파워풀하고 연주와 강렬한 훅을 갖추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밴드의 음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점은 여성 밴드로서 의외의 진정성을 넘어선 '어떤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힌트는 이 세 자매의 큰 언니인 Este의 경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Este의 경력을 살펴보면 2010년 UCLA에서 ethnomusicology(민족음악학) 학위로 졸업했다고 한다. 민족음악학은 그 이름처럼 기본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들의 '민속 음악'을 비교하는 학문인데, Haim의 음악에서도 그런 '민속음악'적인 요소들 녹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민속 음악'적 요소는 Haim의 데뷔 앨범 "Days are gone"의 첫 곡 'Falling'에서부터 보인다. 이 곡은 세 번째 싱글로 발표되었던 곡으로, 이 앨범의 두 번째 곡이자 첫 번째 싱글이었던 'Forever'와 더불어 'Haim'을 각인시킨 곡이기도 하다. 이 곡의 후렴구는 의미를 되새기며 읽어볼 만하다.

"into the fire feeling higher than the truth
I can feel the heat but I'm not burning
fear and desire feed the tired, hugry tooth
feel like I'm falling
I can hear them calling for me"

듣기에 따라서는 굉징히 철학적이고 종교적으로 들리는 후렴구이다. 이 부분을 부르는 Danielle의 음성은 톤을 높여 부르면서 긴장을 고조시키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 혹은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모습이 떠오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Forever에서도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분위기의 후렴구를 갖고 있다. 가사를 옮겨보면 이렇다.

"go get out get out of my memory
no not tonight I don't have the enery
go get out get out of my memory
no not tonight..."

일정한 톤으로 단어와 구를 반복하는 이 부분은 마치 어떤 '주문'처럼 들린다. 종교적 의식과 연관시키자면 무속 신앙의 '퇴마 의식'떠올릴 수도 있겠다.

네 번째 싱글이기도 한 'the Wire'에서도 민속음악적 요소들을 들을 수 있다. 앞선 곡들과 마찬가지로 가사의 끝을 꺾거나 적절하게 들어가는 추임새는, 흑인 음악에서 기원한 하는 blues와 hip-hop에서 들을 수도 있지만, Danielle와 Este가 주고 받으며 부르는 형식이나 구성진 연주는 우리 전통음악의 '타령'처럼 들리기도 한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Let Me Go'의 경우 시작부터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초반부에서 Danielle가 읊조리듯 풀어내는 가사와 제창으로 부르는 'Let Me Go', 이어지는 Este의 노래에서 'Let Me Go'의 끝을 구슬프게 꺾어올려 부르는 부분과 돌림노래처럼 부르는 부분, 그리고 노래 전반에 걸쳐 두드러지는 타악기 연주가 긴장을 고조하는 점은, 마치 망자의 영혼을 달래는 일종의 '장송곡'처럼 들리게 한다.

더불어 세 자매가 들려주는 화음은 여성 밴드만의 매력을 더 한다. (Este의 꽥꽥거리는 느낌의 목소리나 힘이 부족한 Alana의 목소리는 Rock 밴드의 메인 보컬로서는 어울리지 않아서, 중저음의 Danielle가 메인 보컬) Danielle의 메인 보컬 위로 두 사람이 쌓아가는 목소리는 남성으로만 구성된 밴드들에서는 들을 수 없는 화음을 만들어내고, 이 화음은 복고의 느낌과 더불어 남성 중심의 rock과는 다른 신선함을 부여한다.

Haim 데뷔앨범 'Days are gone'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겠지만, 확실한 사실은 세 자매의 치기어린 앨범이라고 할 수 없는 굉장한 앨범이라는 점이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세 자매는  점점 말랑해져만 가는 남성 중심의 rock 음악 저변에 주목할 만한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여러 장르의 적절한 차용, 그리고 정통적 밴드 사운드와 미니멀리즘을 적절하게 배치한 노련한 완급조절은 이 앨범이 20대 자매들로 구성된 밴드의 첫 앨범이라고 믿기 어렵게 한다. 하지만, 어쩌면 신인이기에 이런 시도들을 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2013년 최고의 신인이라고 할 만하다. 별점은 4.5개, 반 개는 다음 앨범을 위해 남겨두고 싶다.



2014/02/18 17:43 2014/02/18 17:43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 이애경

사실 전혀 모르는 작가이고 요즘 거의 관심 없는 장르의 책이지만, 정말 우연히 구입하여 일게 되었다. 제목에 대한 첫인상은 상당히 허세스러웠다고 할까.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책의 '영리한 구성'을 빼놓을 수 없겠다. 텍스트만으로는 책 반 권도 나오지 않을 분량이지만, 작가가 직접 찍었다는 사진들을 이용하여 한 권을 채우고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짧은 글들이지만 읽기에는 그다지 가볍지 않을 수도 있는 내용들을 감성적인 사진과 함께 담아서, 사이사이 주위를 환기시켜주고 있다. 작가의 고집이었는지 아니면 편집부의 전력이었는지 알수 없지만, 분명 '사진 + 텍스트'의 구성은 '미니홈피(싸이월드)'의 '일기장'과 '사진첩'이나 블로그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런 반 쯤은 개인적이고 반 쯤은 공개된 새로운 도구에 익숙한 지금의 2,30대에게 이런 구성은 충분히 친숙하고 편안하게 다가갈 만하다. 역시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거쳐 블로그를 사용하고 있는 나에게도, 주로 여성 사용자들이 사진과 함께 올렸던 (허세도 적당히 들어간) 감성적인 문장과 문단들이 떠올랐다.

글의 내용들은 간단히 요약하자면 '20대의 연예에 대한 회한과 30대의 다짐, 그리고 노처녀의 허세'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의 예민한 관찰력과 감성적인 표현력으로 써내려가 감수성이 더해진 글들은 공감의 요소를 만들어낸다. 최근 '웰빙(well-being)'에 이어 '힐링(healing)'이 유행하면서 힐링을 강조하는 감성 에세이들이 많이보인다. 이 책도 그런 시류에 편승하여 쉽게 써져서 쉽게 소비되는 소비재로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2000년대 초반에 불었던 시집 열풍이 '미니홈피와 블로그 세대'에 적합게 변형되고 포장된, '새로운 에세이의 사조'라고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이애경 작가의 글에는 신문의 가쉽란처럼 가볍게 읽고 잊고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알맹이가 있다.
2014/02/12 11:45 2014/02/12 11:45

남녀공룡 (unisexsaurus) - Love is in the Ear (EP)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디레이블'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레이블은 두세 곳 정도입니다. 하지만 최근 무섭게 떠오르는 레이블이 있으니, 바로 '매직스트로베리 사운드(MSB Sound)'입니다. 이제는 레이블 대표 뮤지션이라고 할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옥상달빛'이 바로 MSB 소속이고, 파스텔뮤직 소속이었던 '요조'와 '루싸이트 토끼'나 인디씬에서 인지도가 있는 '카프카'와 '이영훈' 등을 영입하면서 몸집을 불려가는, '인디씬의 신흥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메직스트로베리 사운드'는 인디음악을 어느 정도 들어본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레이블이지만, 아직도 소속 뮤지션들은 낯설게 들립니다. 저도 MSB는 레이블의 초창기부터 알고 있었지만, 지금 소개하는 '남녀공룡'은 작년 말에야 알게 된 뮤지션입니다. 바로 2013년 시작된 MSB의 컴필레이션 프로젝트 '내가 너의 작곡가 vol.1'에 참여한 팀이 이름 가운데 '남녀공룡'이 있었고, '요조'와 함께했다는 호기심에 처음으로 듣게 된 그의 곡이 바로 'This means Goodbye'였습니다. 요조의 차분한 음성과 우주적인 느낌의 사운드로 담담하지만 진한 여운을 남기는 이별을 노래하는 이 곡은 묘한 중독성으로 이 컴필레이션에 함께 수록된 다른 어떤 곡보다도 귀를 사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남녀공룡'에 대한 궁금증에, 2012년에 발매되었던 그의 첫 EP 'Love is in the Ear'를 들어 보았습니다.

서정적인 신비로움을 담고 있는 오프닝 'Sincerely'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Dear J'는 일렉트로닉과 팝이 바탕이 된 깔끔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고 제목도 그 'J'에게 보내는 곡인데, 앞선 오프닝이 보통 영문 편지에서 끝맺음 말로 쓰는 'sincerely'라는 점은 재밌습니다. 'Moonlight'는 제목처럼 신비로운 달빛같이 몽환적인 트랙입니다. 제목은 '달빛', 혹은 '월광(月光)'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달을 의미하는 'luna'에서 파생되어 '광기'를 의미하는 단어 'lunatic'이 떠오를 만큼 어떤 광기가 느껴집니다.

'Blueberry Dream'이라는 제목처럼, 상큼하고 달달하게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 쓰여진 영어 가사와 라운지풍의 연주는 여러보로 일본 시부야계/라운지 음악을 떠오르게 합니다. 특히 나른한 음성은 'Paris Match'의 보컬 '미즈노 마리'의 음성을 떠오르기도 합니다. 'Last Lullaby'는 제목처럼 앨범을 끝맺는 마지막 곡으로서 '마지막'에 어울리는 어쿠스틱 풍의 트랙입니다. 언제가 찾아올 이별을 기다리며, 혹은 그 이별에 순간에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처럼, 슬프도록 아름다운 감정들이 전해집니다. 이 곡이 그려내는 잔잔하지만 강렬한 이별의 이미지는 요조와 함께한 'This means Goodbye'와도 닿아있습니다.

앨범 내내 여성의 음성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노래하지만, 남녀공룡은 남성이라는 점이 재밌습니다. 보코더로 음성을 변조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미성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은 '남녀공룡'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의 이름과 독특한 음성적 선택에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남녀공룡이라는 난해한 이름과는 다르게 EP 'Love is in the Ear'는 난해하지 않고 듣기 편안한 일렉트로니카를 들려줍니다. 언제 정규 1집 혹은 후속 음반이 나올 지는 알 수 없지만, 더 많은 그의 노래들을 기대해 봅니다.
2014/02/06 15:35 2014/02/06 1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