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온 플럭스'도 '매트릭스', '이퀼리브리엄', '울트라바이올렛', 그리고 '브이 포 벤데타'처럼 '사회를 억압하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초반에는 그랬습니다. 그냥 '비주얼을 즐길 만한 액션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았는데,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네요. 결코 만만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원작 애니메이션으로 따지만 앞에 나열한 영화들보다 앞선 작품 '이온 플럭스(Aeon Flux)'. '재앙 후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 '통제된 미래 사회'나 '자유를 담보로 한 안전'은 앞의 작품들이 이 원작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만큼 길지 않은 한 편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이온 플럭스'가 담고 있는 사상(?)은 상당합니다.
특이한 주인공의 이름 'Aeon Flux'의 의미를 살펴보면 'Aeon'은 '영겁(eternity)'이라는 의미를, 'Flux'는 '흐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두 단어를 합치면 '영겁의 흐름' 정도가 되겠습니다. 영어로는 상당히 사이버펑크적인 느낌인데 해석해 놓으니 상당히 '동양적'입니다. 이런 네이밍 센스에서 원작자가 한국계 '피터 정(Peter Cheong)'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하네요. 사실 1995년에 Mtv에서 방영된 원작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그때 보지 않은 점, 지금 후회가 되네요.
살아남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내용으로 흘러가다가 이야기는 옆으로 빠집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확실히 무엇으로부터 구하려했는지 좀 모호하네요. 구한다고 확실히 뭔가 이루어지는 목표가 있어보이지도 않구요. 이런 허술한 목표 의식은 결국 '이온 플럭스'가 딴 생각에 빠지게 합니다.
초반이 지나면 'DNA', '인간복제', '전생의 기억' 등 상당히 흥미로운 소제들이 줄줄히 등장합니다. 번식 능력을 상실한 인류가 반복적인 DNA를 통한 복제를 통해서 흐릿하게 남게되는 전생의 기억들, 이것이 바로 영화 '이온 플럭스'에서 인류를 괴롭히는 무엇일까요?
흔히 말하는 같은 영혼이 전혀 다른 육신(아마도 거의, 혹은 많이 다른 DNA 유전정보)으로 태어나는 '환생'이 아닌 전생과 완벽히 동일한 DNA 복제로 태어난, 또 다른 의미의 '환생'은 영혼과 DNA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영혼이 두뇌에 존재한다면, 인류가 10%도 사용하지 못하는 뇌의 나머지 부분은 과연 무슨 역할을 하는지, 인류의 전체 DNA 중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부분은 10%도 되지 않는다는데, 그렇다면 다른 부분들은 그냥 양을 채우기 위해서만 존재하는지... 제가 오래전부터 궁금해오던, 최근 잊고 있었던 의문들이 다시 떠오르네요.
아마도 다른 육신을 통한 '완벽한 환생'이 아닌 강제적인 DNA 복제를 통한 '불완전한 환생'이 영화 속 인류를 괴롭히는 망령이겠지요. '한 세대의 죽음'과 '새로운 세대를 통한 탄생'이라는 자연적인 '영겁의 흐름'을 막으려는 무리들과의 대결이 결국 'Aeon Flux'의 목표가 됩니다.
전생의 두 주인공이 만나는 두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Will I see you again?'이라고 묻는 남자 주인공(마튼 초카스)과 웃음으로만 대답하는 여자 주인공(샤를리즈 테론)... 인류의 '영겁의 흐름' 혹은 환생에 대한 멋진 선문답이 아니었나합니다.
시각효과나 액션은 보통이지만, 대작이 되기에는 역시 부족한 느낌입니다만, 내용만은 너무나 좋았습니다. 별점 4개.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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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 플럭스(Aeon Flux) - 200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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