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피가 났다.

내가 지금까지 흘린 피가 얼마나 될까?

아마도 지금 내 온몸의 피보다는 많으리라...

그 피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지 않아서

오랜시간 동안 조금씩만 빠져나가서

나는 아직 살 수 있다.

피가 조금씩 빠져나가듯.

내 기억도 차차 조금씩 사려져서

한꺼번에 모든 것이 지워지지 않아서

나는 아직 살아있다.


한번쯤은 모든 기억을 송두리째 읽어버리는 것도 좋지 않을까?
2006/11/26 16:31 2006/11/26 16:31

망각과 추억, 기억의 야누스

사람은 망각하기에 살아갈 수 있다. 반대로 사람은 추억하기에 살아갈 수 있다.

'망각', 사전적 의미는 '경험하였거나 학습한 내용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기 어렵게 된 상태'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진 기억의 일부'라고 할 수 있지 있겠다.

사람의 기억에 '망각'이라는 기능이 없고 모든 경험과 사고들을 뚜렷히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어린 시절 친구와 싸운 기억부터 부모님을 속상하게 한 기억, 헤어진 연인에 대한 아픈 기억들이 매일매일 찾아와 괴롭히지 않을까? 지우고 싶은 기억들, 회한스러운 기억들만 되뇌이다 후회 속에 삶을 마치거나 쓸쓸하게 자살을 택할지도 모를 일이다.

반대로 사람의 기억에 추억이라는 기능이 있다. 사전적 의미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인데 특별히 도드라지거나 미화된 기억의 일부분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의 기억에 '추억'이라는 기능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모든 기억들이 똑같은, 그저 그런 기억들, 특별한 의미 없는 기억들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살아나갈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첫사랑, 결혼, 자녀의 탄생 등 인생의 가장 빛나던 순간들을 기억하기에 마지막 눈을 감기 전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떠오를 리 없을 것이다.

중요한 시험을 보는 날 시험지를 펼쳐든 순간, 망각은 우리를 괴롭히기도 한다. 익숙한 장소, 익숙한 상황에서 '안 좋은 추억'이 찾아와 우리를 슬프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하루 부딛히는 수 많은 일상을 모두 기억하지 않음에 우리는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밤새 달려 찾아간 바다 끝에서 떠오르던 태양을 기억하기에 우리는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망각은 기억이라는 돌의 모난 부분을 쪼아내고 추억은 기억을 인격이라는 형상의 일부로 다듬는다. 잊기에 살아가고 또 잊지 않기에 살아간다. 잊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또 잊지 않음에 지금에 내가 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잊혀지지 않음과 잊혀짐이 두려운 것이다. 잊혀지지 않아 남은 이들을 슬프게 하고, 잊혀져 우리 존재가 증명될 수 없으므로...
2006/05/09 00:02 2006/05/09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