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농도

두 사람이 있었다.


"알고 있어?"

"응?"

"이길을 함께 걷는 사람하고는 이별하게 된데."

"응, 들은 적 있어."

"아아. 그럼, 우리도 언젠가는 못 보게 되겠구나."

"뭐, 그럴지도. 슬프게도 모든 시작은 끝을 향하고 있는 걸."

"그렇다지."

"동전의 양면처럼. 시작과 끝, 떼어놓을 수 없다 잖아."

"그래도 헤어짐은 언제나 아쉬운 걸."

"시작과 끝, 만남과 이별은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럼?"

"그 시간의 길이보다 중요한건, '시간의 농도'라고 생각해."

"시간의 농도?"

"응.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글쎄, '시간이 기억 속에 새겨지는 정도'라고 할까."

"그럼, 시간의 가치!"

"아, '가치'라고 할 수도 있겠네."

"그렇다면,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시간은 언제 즈음일까?"

"영혼의 짝과 함께 보낸 시간이라면 그 농도는 어떤 시간에도 비교할 수 없지 않을까?"

"영혼의 짝?"

"응. 영혼의 짝, 영어로는 Soulmate"

"나도 그건 안다고."

"그냥 그렇다고."

"그런데, 그 시간은 어떻게 알 수 있으려나."

"확실히 알 수는 없겠지만, 마지막 눈을 감을 때 스쳐가는 시간은 그 시간이 아닐까?"

"그럼 눈을 감을 때야 알 수 있는거야?"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많은 사람을 만나봐야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 영혼의 짝."

"난 보는 순간, 직감으로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 아직 그, 감이 안 온 거야?

"Anam Cara"

"응?"

"아니야. 이제 이 길의 끝이네. 그럼 이별인 건가?"

"아니 아직은. 뭣 좀 마시자."

이 길의 끝에 이별이 있다해도 당신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2006/12/21 11:06 2006/12/21 11:06

우루과이

두 사람이 있었다.


"난 어렸을 때, 내 반쪽은 저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 중 어딘가에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럼, 어린 왕자라도 지구로 찾아와야하나."

"어린 왕자라... 그럴지도."

"그런데 태양처럼 빛을 내는 별에는 너무 뜨거워서 생명체가 살 수 없어."

"아, 그렇겠네. 미안해요 내 반쪽, 당신은 타 죽었군요."

"아마 그 별에 딸린 어떤 행성에 살고 있을지도. 태양에 딸린 지구에 우리가 살고 있듯."

"아니면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어."

"음, 지구 반대편?"

"응, '해피 투게더'처럼."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

"응, '홍콩'의 반대편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날아간 주인공처럼."

"아, 홍콩의 '대척점'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였지."

"대척점?"

"응, 대척점. 지구의 정반대 지점을 대척점이라고 한데."

"그럼, 한국의 대척점?"

"한국의 대척점은 '우루과이'쯤이라나."

"우루과이?"

"응."

"그럼, 언젠가 가보아야겠는걸."

"있잖아."

"응?"

"나도 예전에 그런 생각한 적이 있었어. 지구 반대편."

"정말?"

"응, 정말."

"그럼 언젠가 같이 우루과이 가는거야?"

"그래야하나. 그런데 그럼, 거기가서 동성연애라도 해야하는건가?"

"뭐?"

"'해피 투게더'라며."

그곳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2006/12/20 10:34 2006/12/20 10:34

얼음땡

두 사람이 있었다.


"이봐요!"

"...응?"

"혼자 가는거야? 난 여기 서있는데."

"아, 미안."

"무슨 생각하는데?"

"지난번에 이야기했었던 '열병'에 대해서."

"죽을까봐?"

"아니."

"그럼?"

"봄이 가까워지고 눈이 녹다가 그 봄이 다시 멀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얼어버리겠지."

"응. 눈이 녹다 얼어버리면 얼음이 되겠지. 눈보다 단단한 얼음."

"응. 얼음."

"그 얼음은 말야 쉽게 녹지도 않을거야."

"그렇겠지."

"눈보다 얼음에게 봄은 더 멀겠지?"

"아마 그렇겠지."

"이젠 봄이 온다는 건 정말 두려운 일이야."

"더 심한 열병이 되려나."

"아니. 열병보다도 다시 돌아가야한다는 게."

"무슨일 있어? 의기소침해진 거야?"

"그런건 아니야. 아무튼 봄이란 내겐 너무 먼 이야기인지도 몰라. 이젠,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당연? 어째서?"

"그건 비밀."

"뭐야, 궁금하게해놓고."

"춥고 배도 고픈데 요기나 하러가자."

"그래."

"어? 거기서 뭐해 안갈거야?"

"아까 '얼음'했으니 와서 '땡'해주고가."

"그래 '땡'이다."

그대가 내 마음의 봄이 되길 바랍니다.
2006/12/19 18:55 2006/12/19 18:55

돌이킬 수 없는 것들

두 사람이 있었다.


"어떤 원소는 동물이 먹고 소화하고 배설물되서 바다로 흘러간 후 침전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데.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지금까지 계속 육지에 있는 그 원소를 이용한 거지."

"그럼 육지에서 그 원소가 고갈되면 동물은 모두 멸종되는 건가?"

"아마 그렇겠지."

"슬픈 이야긴 걸. 하긴 그런 일이 있기전에 우린 없어지겠지만."

"뭐, 그렇지. 돌이킬수 없는 건 한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니."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거야?"

"뭘?"

"그 원소."

"모르지. 지각변동이 일어나서 바다가 육지가 된다면 되돌아가는 게 아닐까?"

"그럼 다행이네."

"삶이란 것도 전혀 되돌릴 수 없지는 않을거야. 물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윤회(輪廻)를 믿는다면."

"불교에서 죽고난 다음에 다시 태어나는 거?"

"응. 그거."

"좀 다른 거 아냐?"

"되돌린다는 표현이 잘못되으면, 다시 시작하는 거라고 해야하나?"

"그럼, 그때도 우리 만나서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까?"

"모르지. 아마 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건 좀 아쉬운데."

"뭐, 인연(因緣)이라면 다음 삶에서도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인연이 아니라면?"

"인연이 아니라는 건 없을거야. 다만 그 인연이 약하다면 그땐 그냥 스쳐지나갈 수도 있겠지."

"그것도 슬픈이야기다."

"걱정마. 내가 널 꼭 알아볼테니."

"정말?"

"응. 하지만 혹시 모르니 너도 꼭 알아봐줘."

"응. 그럴게. 꼭."

언젠가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2006/12/18 10:38 2006/12/18 10:38

눈이 녹으면

두 사람이 있었다.


"눈이 녹으면 몸이 온다고 그랬나?"

"응, 그렇지."

"한 가지 더 있어."

"음. 뭐?"

"눈이 녹으면 더 추워진다는 거."

"그런가?"

"눈이 녹으면서 대기중의 열을 빼앗으니까..."

"그렇겠네. 그렇다면 봄이 되기까지의 산통인 건가."

"뭐, '열병'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열병?"

"응, 열병. 고독을 벗어나기까지의 열병."

"음..."

"고독에 머무를 때는 쓸쓸함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잖아."

"아! 그 고독이라는 겨울이 녹는 봄이 아까워지면 비로소 쓸쓸함을 느끼게 된다?"

"응, 그때가 되어야 그 쓸쓸함이 한꺼번에 찾아오겠지. 계절이 바뀌면서 감기에 잘 걸리듯."

"겁나는데!"

"응?"

"아마, 너무 고독 속에 오래 있던 사람은 그 열병이 찾아오면 죽을지도 몰라."

"그런건가."

"어, 눈이다."

"올해도 느지막하게 오는구나."

"한번 고독 속을 걸어볼까?"

"그래."
2006/12/17 23:08 2006/12/17 2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