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 로버트 A. 하인라인

'달은 무자비한 밤의여왕 (The moon is a harsh mistress)'은 '미스터 SF'라고 불리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스타쉽 트루퍼스', '여름으로 가는 문'에 이어 세 번째인데, 제목은 '여름으로 가는 문'만큼이나 시적이지만 내용은 '스타쉽 트루퍼스'처럼 정치적이다. 다만 '스타쉽 트루퍼스'가 '다분히' 정치적이었다면 이 작품은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SF 소설이다. 작품은 범죄자들의 유형지로 시작하여 독자적인 문화와 경제를 구축한 식민지 '달 세계'가 그들을 지배하는 지구의 '세계 연맹'과 '총독부'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SF소설들은 보통 '신화, 전설, 그리고 고전에 대한 오마주나 패러디', '역사적 사건이나 현실의 풍자' 혹은 '미래에 있을 법한 일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진행된다. 그 사건은 '달 세계의 독립'과도 관련이 있을 수 밖에 없는 18세기의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대혁명'이다. 실제로 작품 속 여러 고유명사들은 '프랑스 대혁명'에서 차용했고, 미국 독립전쟁에서도 여러 소재들은 가져왔다.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했기에 어찌보면 기승전결은 뚜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진행이지만, 여기에 SF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치밀한 상상력'이 녹아들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총독부를 뒤엎고 독립을 향한 '혁명'에 우연히 참여하게 된 세 사람 '미구엘', '교수', '와이오밍'의 구성은 각각 '프랑스 대혁명' 정신적 이념인 '형제애, 자유, '평등'을 의미하는 동시에, 인간 사회를 조직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젊은 남자의 행동력', '나이든 사람의 지혜', '젊은 여성의 풍요로움(수태 능력)'를 의미하는 모양새다. 이런 3인조의 구성은 후대의 SF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속 '네오, 모피어스, 트리니티'의 '삼위일체(trinity)'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더불어 지구 태생이자 온전한 지구인으로 달 세계 혁명의 끈끈한 동지가 되는 왕정주의자 '스튜어트'의 모습에서는 여러모로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에 참여한 '라파예트'가 떠오른다.

'달 세계 식민지'는 인간의 달착륙을 목격한 작가에게는 그리 멀지 않은 실현 가능한 상상이었다. 그렇기에 슈퍼컴퓨터 '마이크'의 존재는 이 소설 속에서 가장 SF적인 요소이다. 혁명을 이끄는 세 사람에게는 '신의 권능'과도 같은 슈퍼컴퓨터 '마이크'의 도움으로 독립 혁명을 성공하는데, 약간의 제한이 있지만 달 세계에서는 거의 '전지전능'한 '마이크'가 그의 영향력이 거의 없는 '지구'와의 싸움에 기꺼이 동참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인간의 이성이나 감정을 넘어섰지만 인간에게 우정을 느끼고 '인간들의 놀이'에 동참하는 그의 모습은 '신'에 가까우면서도, 능력에는 확실한 제한이 있다는 점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 불완전한 신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500 페이지가 넘는 꽤 많은 분량이지만, 작가 '로버트 A. 하인라인'의 과학적이고 치밀한 상상력과 필력은 엄청난 흡인력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과학기술적인 SF 요소 외에도 미래 인간 사회에 대한 작가만의 재밌는 장치들도 숨어있는데, 대표적으로, 여자가 부족한 달 세계에서 특별하게 고안된 결혼 형태인 '가계 결혼'이라는 부분이다. 이 외에도 지구와는 다른 달 세계 사회까지 세밀하게 글로 풀어나가는 부분에서 그에게 '미스터 SF'라는 별명이 허명이 아님을 깨닿게 한다. 아마 현대 SF 마니아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모티브의 소설일 수도 있지만, 현대 SF의 기반을 확립하고, 우리보다 수 십년 앞서 살면서 우리의 수 십 수 백 년 뒤를 꿈꾸었던 거장의 걸작은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달 세계 사람들의 기본 정신이자 혁명의 밑거름이 되는 명언 '탄스타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ain'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 TANSTAAFL)'는 현대 사회와 정치에 대한 냉철한 통찰력이 엿보이는 부분으로, 수 십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도 통용되는 말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2014/04/30 01:43 2014/04/30 01:43

여름으로 가는 문 - 로버트 A. 하인라인

SF 장르의 거장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여름으로 가는 문(1957)'은 고양이가 그려진 표지부터 시작해서 SF답지 않은 제목에 의아했던 작품이다. 혹시 우리말로 번역되면서 제목이 바뀌었나 했지만, 원래의 영문 제목도 'the Door into Summer'로 다를 바 없다. '스타쉽 트루퍼스(1959)'로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가이기에 이 작품은 어떤 미래(혹은 과가의 작가가 꿈꾼 우리의 현재)를 그리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300쪽이 넘는 장편이지만, 활자가 커서일까? 아니면 작품이 너무 지지하지 않아서일까? 오랜만에 쉽게 쉽게 읽어나간 작품이었다.  SF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확실히 독특한 작품이다. 시간 여행을 위한 왕복 티켓이라고 할 수 있는 '냉동 수면'과 '타임머신'이라는 SF적인 재료로 쓰여진 이야기지만, 시간 여행이나 시간 여행으로 인한 사건 그 자체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의 위한 중요한 '양념' 정도로 쓰일 뿐이다. 놀랍게도 SF 거장이 이 작품은 로맨스 소설에 가까웠다. 사실 정통 로맨스라기 보다는, 고결한 사랑을 이룩하기 위한 한 남자의 고군분투기 정도라고 할 수 있지만, 'SF의 거장'에게 '전형적인 SF 작품'를 기대한 'SF 독자'라면 이 정도도 대단한 로맨스라고 할 만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아동청소년 성문제와 관련되어 다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로리콘'적인 요소도 있는 작품인데, 이 작품이 발표된 1950년대 미국은 요즘 이슈에 자주 등장하는 소위 '베이비붐' 시대이기에 그 당시 사회적 통념으로도 어떠했을 지도 궁금하다. '시간을 초월한 로맨스'라는 점에서, 후대의 '조 홀드먼'이 '영원한 전쟁(1975)'에서 보여준 '시공을 초월한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듯하다.(영원한 전쟁 속 주인공이 시공을 초월하여 이뤄낸 사랑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소설 속 사랑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
 
미국적 위트도 녹아있는 이 작품은 분명 정치적, 군사적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고전 SF 작품들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역시 미국인답게 장황한 설명은 그다지 길지 않은 이야기를 크게 부풀린 기분도 들기는 하지만, SF 형식을 빌린 기행문같은 '여름으로 가는 문'은 다른 장르의 소설 못지 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제목 '여름으로 가는 문'은 본문 속에서 언급되기도 하지만, 다분히 중의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댄과 그의 고양이가 찼었던 진짜 여름의 날들은 결국 시간 여행을 통해 '찾은 아름다운 사랑의 날'이 아니었을까?
 
*주인공 댄은 애완동물은 '고양이'로 등장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평행우주에 관한 반전적인 부분이 등장하는데 혹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염두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2014/01/13 17:32 2014/01/13 17:32

로버트 A 하인라인 - 스타쉽 트루퍼스 & 조 홀드먼 - 영원한 전쟁

최근 2년 가까이는 큰 일이 없음에도 자잘하게 바빠서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그나마 읽었던 책 가운데 기억나는 책은 SF(science fiction) 소설의 거장들이 쓴 두 권의 책이다. 한 권은 SF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이 썼고 우리나라에는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스타쉽트루퍼스'이고, 다른 한 권은 역시 뛰어난 작가이지만 우리나라의 SF 저변은 약하기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이다. 두 소설 모두 SF 소설답게 우주여행과 외계인과의 조우/전쟁을 그려내고 있지만 그에 대한 시선은 두 소설이 각각 집필되었던 시대적 배경의 차이만큼이나 매우 편예 첨예하다.

세계 곳곳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2차 세계 대전'에 해군으로 복무한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시각이 녹아든 '스타쉽 트루퍼스'는 애국주의적인 입장에서 독자로 하여금 국가와 가족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읽는 내내 우주해병대의 현실적이면서도 멋진 활약에 푹 빠져들었는데, 우주전쟁에 대한 낭만에 빠져든 어린 시절이 있었던 성인 남자라면  충분히 피를 끓게할 매력과 흡인력을 갖고 있다. 더불어 이 소설은 우리나라에서 문화현생이 되기도 했던 '스타크래프트(Star craft)'와 스타크래프트에 앞선 우주를 배경으로 한 워게임(war game)인 '워해머 4000K(Warhammer 4000K)'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에 반해 명분없는 전쟁이자 미국이 처음으로 패배했던 전쟁인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이 녹아든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은 오해와 탐욕이 만들어내는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전쟁이 투입되기도 전에 준비 과정에서 부터 훈련병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훈련 환경과 위험한 장비들부터 세세히 설명하는 모습은 '스타쉽 트루퍼스'보다 더욱 현실감 있는 묘사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스타쉽 트루퍼스가 허무맹랑한 소설이라는 말은 아니다. 스타쉽 트루퍼스도 역시 현실적인 SF를 보여준다.) 하지만 전쟁 자체 보다도 훈련병으로 시작하여 전쟁의 진행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령까지 진급하는 주인공 '만델라'의 눈으로 전쟁을 통해 피폐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훈련과 우주여행, 그리고 전쟁의 과적에서 목숨을 잃는 수많은 동료들의 모습, 전투에서 살아남고  부당하게 늘어난 복무기간까지도 마치며 살아서 지구에 돌아가지만 지구에서는 이미 잊혀져간 사람이 된 퇴역병들의 상황과 그 들이 적응하기에는 사회로부터 너무 멀어져버린 시간은 재입대라는 절망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모습은 일관적으로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그리고 순정적이게도, 우주여행이라는 시간의 상대적 흐름 덕분에 지구 시간으로 100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그 끈을 놓치않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 주인공 '만델라'와 그의 짝 '메리게이'의 모습에서 이해와 사랑이 인류가 스스로 구원하고 구원받는 길임을 이야기한다. (SF 전쟁 소설이지만, 매우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과 북이 분열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어떤 시각이 옳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소설 속에서 외계인의 침략에 굴하지 않는 인류의 모습처럼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말처럼 아직도 약육강식인 국제사회에서는 힘을 갖추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미비한 SF 저변 덕분인지, 두 책은 아쉽게도 절판이 되어버린 상황으로 중고시장에서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두 책과 마찬가지로 '행복한책읽기'라는 출판사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여러 해외 SF 소설을 소개했는데, SF 소설이 돈이 되지 않는지 거의 대부분 절판이 된 상태이다. 읽고 싶은 책이 몇 권 더 있는데 이제는 구할 수 없어서 아쉽다. 여러 SF 거장들의 책들이 원서가 아닌 우리말로 변역되어 활발하게 소개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2012/05/24 00:37 2012/05/24 0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