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eTable Movement'의 두번째 결과물 '흐른'의 EP '몽유병'. 편안한 멜로디와 솔직담백한 가사가 매력적인 흐른의 곡들을 이제 조용한 방에서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별 후의 감정을 담담하게 노래한 '거짓말'. '사탕'의 비유나 '쉬어버린 밥', '어김없이 오는 아침' 등 생활에 가까운 소재들로 풀어나가는 가사가 많은 생각을 하게합니다. 연주에서는 어렴풋이 '1집의 푸른새벽' 느낌이 나는 점도 있습니다.

문답 형식의 재치있는 가사가 매력적인 '몽유병'. 우리말의 '적당히'만큼이나 모호한 단어인 '평범', 이 단어에 의미를 반문하는 부분에서 '흐른'의 삶에 대한 성찰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화창한 날의 애수(哀愁)'를 노래하는 '버스'. 보컬이 너무 밋밋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밋밋함이 바로 흐른의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애수'라고 표현했지만 연주는 EP의 다른 수록곡들보다도 경쾌합니다. 하지만 덜컹거리는 버스 안의 심정은 그리 경쾌하지만은 않네요.

조금은 노골적인(?) 제목의 '몸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용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록곡들 중 연주가 가장 아름다운 곡이기도 합니다. 키보드와 오르간과 기타의 어울림지 참 멋집니다.

가장 화려한 연주의 '스물일곱'. '나이듦'에 대한 성찰이 느껴지는 가사도 참 매력적인데 '이미 시작된 축제'라는 부분에서는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관련은 없답니다.) '흐른' 공연에서 보기 힘든, 힘찬 '밴드 사운드'지만 보컬에서 '약간의 기교'가 아쉽습니다. 후렴구 부분의 일렉트릭 기타의 긴장김을 밋밋함으로 일관하는 보컬이 받쳐주지 못하는 느낌이랄까요.

마지막 '2003. 12. 28. am 5:00'은 짧은 소절이 반복되는 연주곡으로, 조금은 음산하게 느껴질 수 있는 코러스 때문에 자꾸 듣고 싶어지네요.

'여성해방'이 또 하나의 화두가 된 21세기에,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여성들이 무척 공감할 흐른의 곡들(실제 '흐른'의 EP 발매 공연에서 여성이 대부분이었습니다.)이지만, 단순히 특정 성별이나 연령대에 구속되지 않는 '삶'과 '사랑' 그리고 '나이듦'에 대해 한 번 쯤 생각해본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보편성'이 뭍어나는 EP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