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하는 여성 작가들'의 단편 소설을 모았다는 책, '일곱 빛깔 사랑'. '에쿠니 가오리'의 글이 있다는 점도 구매한 이유이지만, 아직 모르는 다른 일본의 여성 작가들의 글이 궁금하기도 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드라제'.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여진 그녀의 소설이 있었던가?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드라제'는 중년과 청년, 두 다른 나이대의 여성의 시각에서 회상하는 형식이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회상에 잠겨드는 두 사람, 나이대가 다른만큼 사고방식도 다르다. 작가는 두 사람의 '대비'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보여주려한 것일까? 적어도 그녀의 책들을 읽어온 나로서는 그렇게 보인다. 역시 중년의, 현재의 그녀는 '쿨'하다.

'기쿠다 미쓰요'의 '그리고 다시, 우리 이야기'. 현재 36세가 된, 세 친구의 이야기를, 그 셋 중 한 친구가 2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되는 회상이다. '외도'는 일본 여성 작가들의 단골 소재일까? '에쿠니 가오리'도 그렇고 이 글도 그렇고 다음에 나올 몇몇 글도 그렇고 '외도'의 관한 이야기다. 화자의 '유부남과 연애하는 두 친구'의 이야기다. 유부남과 연애하기에 골든위크, 연말,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는 함께 할 수 없고, 결국 '연애 동맹'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런 날을 함께 보내는 두 친구를 바라보며 '연애' 대한 짧은 생각이 담겨있다. '연애 동맹'이라는 이름이지만, 그 두 친구의 관계도 '연애'가 아닐까? 꼭 이성과만 '연애'할 수 있는 것은 아닐테니.

'이노우에 아레노'의 '돌아올 수 없는 고양이'. 역시 '외도'가 소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소설의 주관심사는 아니다. 부인의 외도와 결국 헤어지기로 한 부부, 그 둘이 헤어지며 부인이 짐을 싸서 나가는 날에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수년 만에 기록적인 강우는 부인의 발목을 잡는다. 남편에의해 구조된 옆집 고양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결국 부부의 죽은 고양이, '테르'는 대신할 수 없듯, 두 사람의 사랑은 변했다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니무라 시호'의 '이것으로 마지막'. 이 글도 '외도'와 약간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다시, 우리 이야기'처럼 친구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작가의 나이가 적어도 30대나 40대일텐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비치(bitch, 소설 속 그대로의 표현)'들의 이야기를 꽤나 재밌게 쓰고 있다. 그렇다고 우습거나 그런 이야기만은 아닌, '관계'와 '성장'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거 할까? 성장통을 지나 '어른'이 되어가는 주인공과 그런 성장통 속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아이'로 남아 있으려는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과 관계의 종말. 좋아하는 친구와 멀어지는 일은 어떤 이유에서든 언제나 아쉬운 일이다.

'후지노 지야'의 '빌딩 안'. 이제야 이 책의 제목인 '일곱 빛깔 사랑'에 어울릴 만한 '정상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사랑이야기라기 보다는 '인간 관계'의 한 시작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옮겠다. 거리에서 우연히 묘한 행동을 하는 남자를 보게된 주인공이 그를 같은 빌딩 안의 다른 회사 직원임을 알아내고 우연을 가장하여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어떤 '시시한 연애담'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 하지만 시시하다기보다는 소박하도 해야겠다. 이 후에 두사람은 연인이 되었을까? 아니면 그냥 친구가 되었으려나.

'미연'의 '해파리'. 작가의 이룸이 심상치 않은데, 책 앞쪽의 작가의 간단한 이력을 보면 '역시나 한국 출신임'을 알 수 있다. 작가가 디자인과 사진을 공부했다고 하는데, 그 영향인지 글이 상당히 시각적이고 감각적이다. 내용은 제목처럼, 바닷속을 유유히 떠다니는 '해파리'처럼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한 편의 초현실주의 영화같다고 할까?

'유이카와 케이'의 '손바닥의 눈처럼'. 드디어 '진짜 사랑이야기'라고 할까? 애인 '료지'의 한 순간 실수를 참지 못하고 1년 후에 만나자고 한 주인공 '나오'와 료지와의 하룻밤 불장난을 한 애인 '다에코'을 보낸 '슌스케', 한 달의 한 번 두 사람의 만남과 연애에 대한 담론들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남자의 입장, 여자의 입장, 아마도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눈에서 멀어지면 역시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일까? 하지만 그 끝을 만날 때 까지의 끊임 없는 탐색, 그것이 진짜 '연애의 본질'일까? 그래도 가장 훈훈한 결말을 보여주는, '순백의 사랑'.

정말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들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하나 하나가 재밌는 이야기들이다. (사실 '해파리'는 좀 난해한 점이 있어서 읽기 힘들었지만.) 이제 에쿠니 가오리외에 다른 일본 여성 작가들의 책도 하나 하나 찾아 읽어볼까? 결국 시간의 문제인가? 독서도, 연애도.

나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들을 때는 잘 나가는 컴필레이션이나 샘플러를 찾아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는 지론을 갖고 있다. 어쩌면 독서도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일곱 빛깔 사랑'같은 '컴필레이션'이라면 일본 소설 입문자들(?)에게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소중한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소중히 여기는 일인지, 그때 나오는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모든 것은 아마도 이 손바닥의 눈처럼 녹아버리고 말겠지.
그러고 싶지 않다면.
그러고 싶지 않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