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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발표한 EP 'Bye Bye My Sweety Honey'로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준 밴드 '네스티요나(nastyona)'. 당시 이 EP로 당시 권위가 있다고 할만한 모 음반몰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을 만큼 이 밴드의 장래는 밝아보이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충격은 정규앨범이라는 꽃을 곧바로 피우지 못하고, 멤버의 이탈과 활동 중단 등의 진통을 겪으면서 점점 리스너들의 기억에서 흐려져 갔습니다.

하지만 2007년 초부터 홍대 클럽가 반가운 이름을 보이면서 드디어 데뷔앨범 '아홉 가지 기분'을 발표합니다. 오랜 공백 끝에, 더구나 레이블을 옮기고 발표한 데뷔앨범을 열어보았을 때의 기분은 사실 기대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 언더그라운드씬에 주력하는 이른바 '지각있는 몇몇 레이블'을 제외하고는,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밴들이 대형 음반사를 통해 앨범이 발매되면 밴드 대부분이 고유의 색을 읽고 상업성이라는 미명 아래 그렇고 그런 밴드가 되어버려 왔으니까요.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을까요?

앨범 타이틀과 동일한 '아홉 가지 기분'이라는 제목의 첫 곡은 intro 느낌의 연주곡으로 피아노과 현악이 어우러진 도입부는, 영화음악의 한 부분을 생각나게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에서 멋진 음악을 들려준 '조영욱' 음악감독의 작품들을 생각나더군요. '왜 아홉일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우연일지도 모르겠지만 13트랙이 담긴 이 앨범에서 가사를 가진 곡은 딱 '아홉 곡'이더군요.

이어지는 초반의 세 트랙은 이른바 '몰아치는 느낌'의 곡들인데, 제목부터 '그 기분'을 알 만하게 합니다. 첫 트랙 '아홉 가지 기분'이 서장에 불과했고, 본편의 시작을 알리는 '돌이킬 수 없는'의 힘찬 리듬은 '행진'을 연상시킵니다. 절망을 향한 위태롭고도 흥겨운 행진이라고 할까요? 이어지는 '바늘'은 '몰아침의 절정'에 있는 트랙으로, 한 소절 한 소절 주문을 외우는 듣한 보컬이나 바늘로 인형을 찔러 저주를 내린다는 가사는 다분히 주술적인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무대 위에서 마녀를 영상시킬 만한 밴드의 프런트 우먼 '요나'의 외모처럼 말이죠. 길고 절망적인 냄새를 풍기는 제목의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이야기'는 어두운 가사와는 다르게 두 박자의 리듬이 '폴카'나 '탭 댄스'를 연상시키는 아이러니한 분위기의 트랙입니다.

앞선 트랙들이 다분히 파괴적인 느낌이 강했다면, 네번째 트랙 'Empty'부터는 그 분위기가 많이 달라집니다. 일렉트로니카를 연상시키는 연주와 후렴에서 요나의  담백한 보컬을 들을 수 있는 'Empty'는 가사에서 제목처럼 공허가 느껴집니다. 일렉트로니카 혹은 트립합으로의 시도를 옅볼 수 있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밤'은 어쿠스틱풍의 곡으로, 파스텔뮤직 소속 어느 밴드의 곡이라고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분위기는 '네스티요나'라고 하기에는 담백합니다. 하지만 요나의 여린 보컬과 함께하는 그 매력은 짙습니다. 어쿠스틱 스타일로 공연하는 네스티요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기대하게 하네요.

'Tete'는 두번째 연주곡으로 '아홉 가지 기분'의 화려함과는 다른, 소박한 슬픔을 들려줍니다. 피아노 솔로에 이어지는 기타 연주는 '슬픈 세레나데'를 연상시키고 앞선 '사라지지 않는 밤'과 이어지면서 앨범이 끝난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어지는 두 트랙에서 차분함은 역시 이어지지만 그 분위기는 또 달라, 크리스트교의 입장이라면 '이단적'이라고 하겠습니다. 'Judith'는 '클림트'의 그림으로도 유명한 여인, 바로 '유디트'를 영어로 써놓은 이름입니다. 속삭이면서 기도하는 듯한 보컬은, 바로 유디트의 이미지처럼, 경건하면서도 에로틱하다고 할까요. '쓸쓸하고 잔혹한 사랑의 노래'의 분위기라고 하겠습니다. '요단강' 또한 유디트와 마찬가지로 성경에서 볼 수있는 이름입니다. 일종으 '천국으로 건너가는 관문'으로 그리스 신화 속의 저승으로 인도하는 '스틱스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노래 속 화자에게는 '천국을 향한 길'이라기보다는 '괴로운 현실을 위한 탈출구'처럼 느껴집니다.

'To my grandfather'는 연주곡으로 EP 수록곡들을 잘 알고 있다면 재밌을 수도 있는 제목입니다. EP 수록곡 제목에서 Mom(mother), father, brother가 등장했었죠. 물론 그 곡들과는 전혀 다르고, 오직 피아노 솔로만으로 연주되는 뉴에이지풍의 트랙으로 자장가의 느낌입니다.

이어지는 두 트랙은 전혀 다른 시도와 분위기를 들을 수 있는데, 이 두 트랙으로 앞으로 이 밴드의 행보를 옅보게 하는 트랙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꿈속에서'는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밝은 곡이자, 역시 유일한 듀엣곡입니다. 이질적인 분위기가 거북하기도 하지만 제목과 재생시간에 주목합시다. 결국 그런 행복도 꿈속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짧은 기분이겠죠. '잠들 때까지'는 째즈풍의 라운지로 제목처럼 몽롱하고 아늑한 느낌입니다. 나쁜 기억들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평온한 잠이 찾아오길 바랍니다.

'포옹'은 심연같은 느낌의 마지막 트랙입니다. 요나가 들려주는 절망과 슬픔 등 나쁜 기분들, 그녀는 그 기분들과 결국 포옹하였나 봅니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겠죠.

이 앨범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파괴와 절망을 향한 비극의 찬가'라고 하고 싶습니다. 앨범 천체적으로 비극처럼 어둡고 쓸쓸한 기운이 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장르의 곡들을 한 앨범 속에 적절하게 융화시켜 네스티요나만의 '한 흐름'으로 승화시켰기에 그 비극은 찬란합니다.

EP 시절에 보여준 거친 '네스티요나'를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좀 부드러워지고 대중에 가까워진 이런 모습에 아쉬움이 들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EP에서의 거친 질감을 세련되게 다듬고, 거의 요나 중심이었던 힘의 배분도 밴드 전체로 나누고  영어가사를 탈피한 모습들을 환영하고 싶습니다. 바로 마지막 트랙의 제목처럼 더 많은 사람들과 포옹하기 위한 변화가 아니었을까요? 2007년 반드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앨범 '아홉 가지 기분', 별점은 4.5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