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모던 포크 듀오 '옥상달빛'의 데뷔 EP '옥탑라됴'.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홍대 인디씬에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나 '푸른새벽'처럼 혼성 듀오로 인기를 모은 밴드들도 있었지만, 단일 성별의 듀오는 흔하지 않은 구성이었습니다. 1장이라도 발매한 팀들 가운데, 남성 듀오로는 그래도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노 리플라이', 이제는 만날 수없는 '재주소년'이나 한때 2인조였던 '올드피쉬'가 떠오르지만, 여성 듀오로 인기를 모은 밴드는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여성은 원래 여성끼리만 있으면 협력이 힘들다'라는 편견이 생길 정도로 말이죠. 2010년 주목할 만한 활동을 보여준 밴드 가운데 그렇게 희귀한 구성의 밴드가 하나있었습니다.

바로 모던 포크 듀오 '옥상달빛'이 그들입니다. 아 밴드, 우선 이름이 특이합니다. 영어이름의 밴드들이 많은 시대에 우리말 이름에, 한국인의 주요 생활공간이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동하고 듣기 어려운 단어인 '옥상'과 '달빛'의 조합이라뇨. 옥탑방에 사는 고학생이 달빛을 받으며 느끼는 운치와 삶의 애환이 모두 담겨있을 법한 느낌입니다. 여성 듀오이기에 두 사람의 보컬에도 관심이 가는데, '말괄량이' 컨셉의 '박세진'과 '새침데기' 컨셉의 '김윤주'가 '옥상달빛'입니다.

앨범 자켓어서 눈에 띄는 점은 단연 '공룡의 머리'입니다. '모던 포크 듀오'답지 않게 무시무시한 공룡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긴 한데, 옥상달빛의 클럽을 방문(탐구?)해 보았다면 한 번 즈음은 만났을 공룡이랍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티라노사우르스'처럼 무시무시한 녀석이 아니라 초식을 하는 '용각류' 공룡이에요. 무서워하지 말고, 이제 옥상달빛의 노래들을 들어보자구요.

도입부의 멜로디언 연주가 매력적인 첫 곡은, 청자와 방금 만났기에 뜬금없게 들릴 수 있을, '안녕'입니다. 용기있게 고백하지 못하고 마음만 떠보는 얄미운 친구에게 쿨하게 외치는 '안녕'은 관계의 끝을 선언하는 마지막 인사이겠지만, 또 다른 연애사의 시작을 알리는 첫 인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드코어 인생아'는 과격한 제목과는 다르게 잔잔하게 흘러가면서도, 이 밴드의 이름처럼 젊은 세대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노래하는 곡입니다. '청년실업'과 '88만원 세대'로 대변되는 지금의 젊은 세대가 느끼는 좌절감을 노래하는 꾸밈없는 가사는 '옥상달빛'의 담백한 매력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또 좌절 속에서도 인생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 메시지는 두 멤버의 음성을 더욱 아름답게 합니다.

'옥탑라됴'는 이어지는 '옥상달빛'의 인트로 성격의 트랙입니다. 두 멤버의 코믹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옥탑라됴'는 바로 두 멤버가 진행하는 라디오 형식의 UCC의 제목이기도 하며, 앨범에 수록되면서도 역시 라디오 방송처럼 녹음이 되었습니다. 솔직담백하게 진행되면서도 사연을 보낸 청취자들의 이름과 두 멤버의 능청스러운 반응을 보면 실소를 터질 만큼 재밌습니다.

밴드 이름과 동일한 곡 '옥상달빛'은 이 밴드의 주제곡이라고 할 수 있는 트랙입니다. 앞선 '옥탑라됴'에서 청취자들(?)이 보낸 사연을 가사로 부르는 이 노래는 경쾌한 왈츠 리듬 위로 기쁨과 희망을 노래합니다. 옥상달빛이 청춘에게 보내는 연가라고 할까요?

'Another Day'는 분위기를 바꾸어 쓸쓸함을 그득히 담은, 여성 듀오만의 매력이 가득히 담겨있는 트랙입니다. 두 여성 멤버가 들려주는 보컬의 하모니는 완숙미가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을 생활 속에서 마주친 꽃과 새에 비유한 점도 멋집니다.

'외롭지 않아'는 두 멤버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어갑니다.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가득하지만 애써 '외롭지 않아'라고 외치는 모습은 너무나 처량합니다. 마지막 곡은 분위기를 다시 바꾸어 친구들과 함께 부리는 '가장 쉬운 이야기'입니다. 이 곡을 가득 채우고 있는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는 결국 하드코어 인생이지만, '인생은 그래도 살아볼 만하다'고 이야기 하는 듯합니다. 'Good-Bye (Remix)'는 첫 곡 '안녕'의 리믹스로 마지막의 '항상 모른 척 살짝 흔들어 놓고'는 상당히 중독성이 있습니다.

흔하지 여성 듀오 '옥상달빛'이라고 하면서 떠오르는 남성 듀오 가운데 '올드피쉬'가 있었는데 옥상달빛은 현재 올드피쉬의 'SODA'씨가 세운 레이블 'MagicStrawBerry sound' 소속이라고 합니다. 어쩐지 초창기 올드피쉬와 감성적인 고리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두 멤버의 찰떡궁합이 지속되어 멋진 곡들을 오래도록 들려주었으면 합니다. 진지함과 유쾌함을 두루 갖춘 이 특별한 모던 포크 듀오의 행보가 궁금해지네요. 정말 '기록에 남을 만큼 장수하는 여성 듀오'가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정규앨범의 소식도 조금씩 들려오니 기대해 보도록 하죠. 별점은 4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