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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정규앨범과 비정규 작업 등으로 꾸준히(1년에 앨범 2장 정도) 앨범을 발표하고 있는 '이루마'. 역시 올해도 올 봄에 발매되었던, 비정규 작업인 '봄의 왈츠 classic'에 이어 5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정규앨범의 타이틀은 'h.i.s monologue', 부제로 'one day diary... 19th september'를 달고 있습니다. 행여나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군대가기 전 하루동안 뚝딱 만들어낸 앨범'이라고...

아기자기한 서정미를 들려주는 '이루마 스타일'을 정립한 두번째 정규앨범 'First Love'와 그 스타일을 이어간 3번째 'From The Yellow Room'에 이어, 작년 11월에 발매된 4번째 'Poemusic'은 '정규앨범'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낯선 소리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첫 세장의 정규앨범을 통해 들려주었던 '피아노'를 기본으로 하여 '현악'이라는 양념을 가미한, 전형적인 '이루마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요. '드럼', '기타', '베이스' 등과 함께한 'Cross-over'적인 시도는 지난 정규앨범들의 연장선에서 벗어나있었기에, 정규앨범이라기보다는 이미 2장이나 발표했던  'special album'이라고 불러야 어울릴 법한 것이었습니다. 짜임새 속에서 풋풋한 감성을 느낄수 있었던 'First Love'와는 달리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짜임새'가 부족했습니다. 물론 'Poemusic'도 감상용으로 좋은 편이었고 앞선 앨범들에서의 감수성이 느껴지는 'Wonder Boy'같은 곡들도 있었지만,  'Cross-over적인 시도'와 '이루마'다운 감수성이 혼재하면서 '한 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이리저리 쉬갈겨 쓴 메모들을 모아놓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렇기에 이번 앨범의 발매 전부터 기대만큼의 우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뚜껑은 열렸고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내용물을 담고 있었습니다. 군대가기 전 급하게 만든 앨범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지금까지 그의 정규 앨범들 중에 가장 적은, 10곡을 담고 있지만 전체의 플레이 타임은 48분 정도로 절대 짧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이루마의 곡들이 3~4분대였던 점을 생각한다면 이번 앨범의 수록곡들은 평균 5분에 가까우니, 한 곡 한 곡에 얼마나더 시간을 노력을 기울였을지 유추해 볼 수 있겠습니다.

'자, 이제 그의 독백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h.i.s. monologue', 조용한 전자음과 함께 시작하는 곡입니다. 2분 30초가 안되는 짧은 곡으로 intro의 성격이지만 이번 앨범의 지향점을 간결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루마'의 앨범을  모두 들어보았다면, 비슷한 전자음을 들은 기억이 있을텐데 바로 2004년에 발매된 special album인 'Nocturnal lights...they scatter에서 일겁니다. 수록곡들의 제목만으로도 이런 연상이 단순히 '느낌'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one day diary', 이제까지 '이루마'의 곡들은 5분을 넘지 않았지만 이곡은 7분이 넘는 대곡입니다.(참고로 이번 앨범에서는 5분을 넘는 곡이 절반인 5곡이나 됩니다.) 제목처럼 하루를 담아내고 있는데, 하루 중에도 아침, 점심, 저녁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하듯, 서로 다른 3부분으로 나눌 수 있고 어찌 들으면 세 곡을 붙여놓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긴 재생시간에도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데, 세 부분이 마치 전혀 다른 세 곡 같기 때문이죠. 첫번째 부분은 창 밖의 빗소리, 천둥소리와 함께 시작됩니다. 막 잠에서 깨어 눈을 뜬, 어느 비내리는 10월 아침의 곡이죠. 아침이지만 평온하게 흘러가니, 이른 새벽이거나 휴일의 아침일 수도 있겠네요. 이런 날이면 우연히 그리운 얼굴을 보게 될지도 모르죠. 다시 빗소리가 들리면서 곡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계속 빗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볼 때, 이제는 실외인듯 하네요. 비와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서 그리운 뒷모습를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을 헤치며 좇았지만 결국 인파속으로 사라집니다. 천둥소리가 들리면서 곡의 분위기는 마지막으로 변합니다. 다시 여유가 찾아온 밤이겠죠. 일기를 씁니다. 일기장을 덮고 잠이 듭니다. 하루가 그렇게 또 갑니다.

'Septemberise', 조용한 방에서 CDP로 들어보기를 권하는 곡입니다. 피아노 소리 아래로 낮게 깔리는 '이루마'의 흥얼거림을 들어보세요. 이루마의 음성 뿐만 아니라 소리의 '공간적 배치'도 눈에 띄는 곡입니다. 옆에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에 화답하는 듯 잠시 멀리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이제까지 이루마의 곡들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또 다른 시도'네요. 9월을 뜻하는 단어 'September'를 변형해서 만든 단어 'Septemberise', '9월이 되다' 혹은 '9월이 오다' 정도의 뜻을 담고 있을까요? 경쾌한 피아노의 선율에서 시원한 가을의 공기를 느끼며 점점 물들어가는 가로수 사이로 달리는 자전거가 떠오릅니다.

'Lord... Hold My Hand', 제목만큼이나 평온한 느낌의 곡입니다. 제목과는 관계 없이 역시 '가을'이라는 주제와도 잘 어울리는데, 앞선 곡이 '시원하게 달리는 자전거'같은 곡이라면 이 곡은 단풍잎 끝에 찾아온 가을을 느끼며 걷는 '여유로운 늦은 오후의 산책'같은 곡입니다.

'air on D', '이루마의 곡'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특이한 분위기의 곡입니다. 이전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불안함' 혹은 '불온함'이 느껴집니다. 느린 피아노의 쓸쓸함과 바탕에 깔리는 소리들의 긴장감이 어우러지면서 그런 불안함이 조성됩니다. 곡이 진행하면서 한 음 한 음  강하게 들려지는 피아노 소리의 비장함은 그런 느낌을 강화시키구요. 이 곡에서도 '소리의 공간적 배치'가 느껴집니다. 사막의 지평선 끝 신기루처럼 멀리서 들려오는, 마치 어느 이교도들의 예식에서 들을 법한 소리들, 그리고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무희'의 처절하지만 절도있는 춤사위같은 피아노의 선율...그 신기루는 멀어지는 듯하다 다시 가까워지고 이교도들의 예식은 무희의 춤과 어우러집니다. 한 무리가 된, 그 쓸쓸한 축제는 점점 사라집니다. 6분이나 되는 짧지 않은 곡이지만, 처음느끼는 묘한 분위기에 다시 반복해서 듣게되는 상당히 중독적인 곡입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마음에 드는 트랙이기도 하구요.

'The Sundeams They Scatter...', 바로 'Nocturnal lights...they scatter'에 같은 제목으로 실렸던 곡입니다. 이전과 비교해보면 한 음 한 음의 음색이 더 선명해졌고, 음의 울림이 더 맑아진 느낌입니다. 비 온 뒤 맑게 개인 아침,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 사이오 쏟아지는 햇살의 느낌, 제목같은 맑은 느낌입니다.

'Poemusic-Logue', 제목만으로는 전작 'Poemusic'의 연장선에 있거나 전작에 실리지 못한 곡인가 봅니다. 6분 40여초나 되는 역시 긴 곡인데, 만약에 전작에 실렸다면 '베스트 트랙' 중 한 곡이 되었을 만한 곡입니다. 단지 피아노 연주만으로, 속주같은 기교가 없이도 충분한 감정을 전달하는 '이루마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지난 앨범들에서 이루마의 대표곡들같은, 멜로디와 음의 아기자기한 배치에 의한 감정 형성이 아닌 피아노 소리가 음이 아닌 울림으로만 남는 공간에서도 감정이 느껴집니다.

'Improvisation', 역시 많이 본 제목이고 '즉흥시'라는 뜻을 가진 곡입니다. 앞에 너무 좋은 곡들이 즐비해 있어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지만, 'First Love'보다 성숙함이 강했던 세번째 앨범 'From The Yellow Room' 즈음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이루마의 느낌'이 있는 곡입니다.

'H.I.S. Heaven', 제목에서나 소리에서나 첫곡 'h.i.s. monologue'의 연장선에 있을 법한 곡으로 다음 곡이 있지만 이 앨범의 마지막 곡이나 마찬가지인 곡입니다. 유유히 흐르다가 격정적으로 변하는 연주은 그 끝에서 '천국'을 발견한 '환희'였을까요?

'He Knows My Name', 보너스 트랙 성격의 곡입니다. 앞선 곡이 마지막곡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이 곡이 유명한 외국의 CCM 뮤지션의 곡을 피아노로 편곡해서 연주한 곡이기 때문입니다. 이루마의 곡도 아니거나와 CCM 쪽에서는 좀 유명한 곡이니, 정규앨범에서 정식 수록곡이라고 부르기에는 '함량미달'이라고 할 수 있겠죠. (국내에서도 센세이션일 일으켰고 얼마전에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일본의 만화, 노트에 이름이 적히는 죽는 그 만화를 생각해보면 무서운 제목입니다. '그가 내 이름을 알고 있어!!')

'이루마'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2집과 '이루마'를 한국 newage계의 정점에 올려놓았던 3집을 통해 '이루마 = 한국 newage의 새로운 바람' 정도의 등식을 성립시켰다면, 다분히 실험적이었던 4집의 산고를 겪은 후 탄생한 5집 'h.i.s. monologue'을 통해 이루마의 음악세계는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2집과 3집으로 대표되는, 그에게 '대중적 인기'를 선사한 '용매'에 special album과 4집의 실험을 통해 터득한 '용질'을 녹여 완성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만한 앨범 'h.i.s. monologue'로 이제 그는 '젊은 바람'을 넘어서 '거장(巨匠)으로 가는 길'에 한 발을 들여놓고 있습니다. 아직 젊은 그가 '거장으로 가는 길'을 숨죽여 지켜봅시다.

그의 discography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앨범으로 남게될 'h.i.s. monologue', 별점은 4.5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