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최근작 '파피용'.
과학으로 포장한 인문학 소설이라고 할까? '아버지의 아버지들'에서 보여준 인간의 근원에 대한 탐구나, '타나토노트'의 사후 세계에 대한 고찰, '뇌'의 인체에 대한 시각에 이어 이번에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상상을 담고 있다.
'마지막 희망'이라는 프로젝트가 조직되고 초거대 우주비행선 '파피용'을 만들어 지구를 탈출하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인 첫번째 장은 정말 TV 시리즈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두번째 장에서, 지구를 탈출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만 결국 그 목적을 망각하고 인류의 역사를 우주비행선 '파피용' 안에서 되풀이 하는 모습은 '결국 인간은 인간성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체념과 절망을 느끼게까지 한다.
새로운 지구를 찾아 새로운 인류의 시작을 알리는 마지막 장은, 창조론과 진화론의 적당한 타협점으로 나같은 공상하기 좋아하는 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보았을 '현생인류의 조상이 또 다른 지구에서 왔다.'는 상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새로운 지구의 최초의 인간인 '에야'가 이야기하는 환생이론과 우주여행의 결합은 너무나 익숙한 소재다. 바로 우리나라의 PC게임 '창세기전' 시리즈를 관통하는 이야기들, 특히 '창세기전3'와 '창세기전3 파트2'를 통해 밝혀지는 '아르케'와 '안타리아'의 관계나 영혼 전이를 통한 모든 생명체의 환생이라는 소재와 너무나 유사하다. 혹시 베르나르가 이 게임을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소설은 재밌는 편이었지만, 사실 '뫼비우스'라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삽화가 더 좋았다. 그런데 '뫼비우스'라는 이름도 창세기전과 관련이 깊다. 창세기전 속의 우주는 바로 환생과 맞물려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우주'이다.
'뇌'에서도 그랬고, '인간'도 그렇고 베르나르표 과학소설은 몇 년전에 밑천을 다했다고 봐야겠다. 그래도 재밌는 편이지만 베스트셀러에 오래 머무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오래 머물고 있으니 조금은 아이러니하다.
뒷표지에 보니 신작 '신'이 번역중인가보다. 당연히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의 후속편이겠고 무려 3부작이라니 기대가 크다. 제발 실망시키지 말아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