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폰부스와 한음파 공연에 이어서 8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5시 공연과 마찬가지로, 바로 하루 앞서 있었던, 인디씬의 최대 축제 가운데 하나인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의 여파인지 예약이 매진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자리는 거의 차더군요.

민홍형과 은지누나 두 사람만의 공연이고 더구나 '단독공연'에 가까웠기에, 더욱 기대될 수 밖에 없는 공연이었죠. 소규모의 1집 시절부터 지켜본 한 사람으로 그 시절에 대한 향수라고 할까요? 약 1시간 30분 정도로 예정되어있던 넉넉한 공연 시간을 어떻게 꾸려갈 지도 궁금했습니다. 한 곡 한 곡이 긴 편은 아니고, 만담이 폭발하는 두 사람이 아니기에 많은 곡들이 기대되었죠.

공연의 시작은 바로바로 'Hello'였습니다. 바로 1집의 첫 곡이기도 하죠. 너무나 너무나 오랜만에 듣게되는 곡이기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아마도 오랫동안 소규모를 지켜봐온 관객들이라면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영향인지 벨로주는 침 삼키는 소리조차 들릴 만큼의 고요 속으로 빠져들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곡은 1집의 히트곡 'So Good-bye'였습니다. 담담히 이별을 노래하는 가사, 이 세상에서 마지막 인사가 될 법한 말을 전하는 가사는 오랜만에 라이브로 들으니 더욱 아리게 다가왔습니다.

이어서 특별한 무대가 준비되었습니다. 바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낭독의 발견' 순서. 얼마전에 모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경험을 살려 두 사람이 준비한 특별한 순서였죠. 첫 번째로 낭독한 책은 바로 '대성당'이었습니다. '레이먼드 카버'라는 작가의 소설로 얼마전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발표한 '김연수' 작가가 번역을 담당한 소설입니다. 자칭 '연빠' 은지누나의 입김으로 낭독하게 되었죠. 낭독 순서는 총 세 번있었는데, 아마도 모두 은지누나의 책들이었을겁니다.

이어서 어떤 앨범들에도 수록되지 않은 '신곡'들이 이어졌습니다. 1집과 2집 사이 즈음의 감수성들이 담겨있는 '별'과 '바다와 국화'는 모두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담긴 곡들로 'So Good-bye'를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분명히 빠져들 곡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독특한 제목과 소규모다운 흥겨움이 느껴지는 '안녕 슈퍼맨'이 이어졌죠. 두 번째 낭독은 '정한아' 작가의 단편집 '나를 위해 웃다' 가운데 '휴일의 음악'이었습니다.

이어서 '2집 퍼레이드'로 세 곡이 이어졌습니다. 2집 수록곡 가운데 신파적 요소가 돋보이는 '고양이 소야곡', 너무나 단순한 가사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사랑' 그리고 '고양이 소야곡'과 더불어 '동물 시리즈'이지만 분위기는 180도 달라서 너무 신나는 '두꺼비'였습니다. 보통 '두꺼비'에서는 후렴구를 따라하게 마련인데, 이날의 무서운(?) 관객들은 공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무소음 모드에 너무도 충실했습니다. 두 사람의 한 음절 한 음절, 한 음 한음에 놀랍도록 집중했다고 할까요? 1부의 마지막은 새로운 '동물 시리즈'인 'Bugs fly again'이었습니다. 영어 가사지만 단순한 가사가 웃음짓게 만드는 곡이죠.

약 10분의 휴식이 있은 후 2부가 시작되었습니다. 2부는 시작은 신곡의 연속으로 시작되었고 첫 곡은 '던져지는 돌'이라는 제목의 곡이었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던져지는 돌같아서 그런 제목이 붙었다나요? 이어 '이런 찰나'와 '착각'이 이어졌습니다. '착각'은 지난 공연에서 들었던 노래로, 소규모의 색깔보다는 민홍형의 솔로 프로젝트 '민홍'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객과 함께 즉흥적으로 라임(?)을 주고 받으면 더 재밌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지막 낭독은 '김중혁' 작가의 단편 소설집 '펭퀸 뉴스' 가운데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아'였습니다. 앞선 두 낭독과는 다르게, 두 사람이 역할 분담을 하여 삼촌과 조카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독특했습니다. 민홍형은 바리톤은 삼촌으로서 괜찮았고, 은지누나는 어린 소년의 목소리로 좋았죠.

역시 지난 공연들에서 들었던 신곡 'TV에 나온 사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TV에 나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종종 그리고 최근 TV를 통해 얼굴을 보여준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네요. 이어 3집 수록곡으로 상당한 사랑을 받고 있는 '나무'가 이어졌습니다. 점점 작사에서 민홍형을 압도(?)하는 은지누나의 탁월한 가사가 좋은 곡이죠.

공연의 마지막은 신곡 두 곡, '개나리 본부'와 'Diamond Book'이었습니다. '개나리 본부'는 단순하고 천진한 가사가 재밌는 곡으로, 선정성으로 찌든 요즘 노래들에 개탄하여 만든 곡으로 무료 배포할 계획도 있다고 하네요. 마지막 'Diamond Book'은 금강경에서 얻어온 제목으로 영어 가사이지만 '너는 새이고, 나는 바람이다'하는 명상적인 가사가 인상적인 곡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사는 '노장사상'이나 '도교'의 느낌도 나더군요.

당연히 앵콜요청이 있었고, 2집의 인기곡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총 1시간 30분이 넘는 짧지 않은 공연이었지만, 숨막힐 듯한 몰입 때문이었는지 여전히 아쉬웠습니다. 충분한 곡 수와 많은 신곡들, 그리고 새로운 형식의 진행으로, 이날 벨로주를 찾은 팬들의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겠죠.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4집을 빨리 만나봤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런 좋은 공연들로도 자주 봤으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1집 시절의 느낌도 참 좋았구요.

일부 동영상은 역시 http://loveholic.net 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