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모던 포크 듀오 '재주소년'의 네 번째 정규앨범 '유년에게'.
사실 '파스텔뮤직' 합류 이전의 재주소년은 저에게 관심 밖이었습니다. '재주소년?, 재주를 넘는 소년?'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한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여성보컬을 편애하고 해외보다 국내 남성보컬은 더더욱 관심이 없는 제 음악적 취향에서 '소년(국내 남성보컬)'은 당연히 가까워질 수 없었죠. 하지만 '스위트피(김민규)'와 함께 파스텔뮤직으로 영입되고, 컴필레이션 앨범 '결코 끝나지 않을 우리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주소년'의 음악을 엿볼 수 있게 되었죠. 신곡 '농구공'과 요조가 다시 부른 '귤', 두 곡을 통해서 재주소년에 대한 다시 보게 되었죠. 90년대 가요에 대한 향수 느껴지는 '농구공'에서는 이승환의 '덩크슛'이 생각나기도 했고, 요조가 재주소년과 함께 다시 부른 '귤'에서도 새콤달콤한 귤처럼 상큼했습니다. 일상의 소소한 감정을 노래로 풀어나가는 재주소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정규앨범이 파스텔뮤직을 통해 발매되었습니다.
재주소년은 '박경환'과 '유상봉', 남성 이인조의 모던 포크 듀오입니다. '재주소년'이라는 이름이 독특합니다. 이 밴드가 처음 '문라이즈레코드'로 데모 테잎을 보냈을 당시 제주도에 있었는데 제주도 소년을 의미하는 '제주소년'이라고 노골적으로 이름을 짖기는 민망해서 살짝 바꾸어 '재주소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소년에서 이제는 청년이 된 재주소년이 들려주는 유년에 대한 오마쥬, '유년에게'가 시작됩니다.
첫 곡 '밤새 달리다'는 오래된 카세트 테잎을 듣는 기분이 독특한 인트로로 시작됩니다. 가사는 상당히 자전적이면서도 은유적인 느낌의 가사입니다. 두 사람이 재주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달려온 길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고 해야겠네요. '밤새 고속도로를 달린다'라고 상쾌한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조금 비틀어 보면 두 남자가 '밤새 술로 달린다'라고 생각해도 무방할까요? 술로 밤을 지새우며 지난 시간에 대한 대화가 펼쳐질 지도 모르죠. 어떻게 달리든, 밤새 달려온 그 끝에서 유년에 대한 향수가 펼쳐집니다.
'소년의 고향'은 그 유년에 대한 향수를 시작하는 트랙입니다. 제목 그대로 고향에 대해 노래하고 있고 이 밴드의 이름의 유래가 된 '제주'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경환이 시작한 제주 이야기는 시작되는 노래는 왠지 구수한 느낌의 상봉이 들려주는 부산 이야기로 잠시 눈을 돌립니다. 다분히 회상적인 앨범의 분위기에 이 곡도 일조하면서 두 멤버의 출신에 대해 엿볼 수 있죠.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들의 목소리와 함께하며 제주도의 명승지를 소개하는 가사는 마치 제주도 관광을 홍보하는 CM송처럼 들립니다. 제주도 관광 공사는 재주소년을 섭회하지 않고 뭐하고 있나요?
'미운 열두살'은 경쾌한 멜로디와 재밌는 가사가 절로 미소를 만드는 트랙입니다. 열두살 여동생의 이야기를 오빠의 입장에서 들려주는 가사는 여동생을 둔 오빠라면 한 번 즈음은 경험해 보았을 만한 에피소드를 이야기 합니다. 천방지축 여동생이지만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담아내는 가사는 평범한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내는 재주소년 음악의 매력이 담겨있습니다. 째즈풍의 분위기있는 연주와 흥겨운 가사의 묘한 어울림은 이 곡의 매력을 더합니다.
앨범 제목과 동일한 '유년에게'는 유년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담겨있는 트랙입니다. '밤새 달리다'에서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진취적인 기상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지만, 이 곡에서는 안개가 자욱한 길을 걸으며 지나온 길을 뒤돌아봐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유년에 대한 그리움이 평온한 수면 위의 물결처럼 잔잔하게 퍼져갑니다.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미리 공개되었던 '농구공'은 90년 대에 대한 향수가 가득히 담겨있는 트랙입니다. 필자나 재주소년의 두 멤버와 같이 20대 후반의 남자라면 겪였을 이야기들이 담겨있죠. '패닉'의 '달팽이'를 언급하면서 시작하는 이 곡은 '농구'라는 소재난 슬픈 사랑 이야기를 주로 이야기하는 가요와는 다르게 밝은 가사는 '이승환'의 '덩크슛'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농구라는 소재는 90년대를 한국 소년 만화계를 휩쓸었던 '슬램덩크'의 향기도 담겨있습니다. 가수와 만화가가 되겠다는 두 친구도 바로 90년 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만화'와 '가요'에 대한 그리움을 슬며시 드러내구요. 간결한 기타리프는 코트 위를 가르는 드리블 소리와 겹쳐집니다. 바로 '이것이 웰메이드 가요'라고 불러도 될 만큼 짜임새를 갖추고 있습니다.
'봄이 오는 동안'은 성장기의 마지막을 노래하는 트랙입니다. 출생(소년의 고향)을 시작으로 유년기(유년에게)와 소년기(미운 열두살)를 지나 청소년기(농구공)를 거친 화자는 사춘기의 마지막을 지납니다. 잔잔한 기타 연주와 함께 가슴아픈 풋사랑을 노래하는 목소리는 아려한 그리움과 함께 울려 퍼집니다. 남성 듀오가 들려줄 수 있는 최고의 서정성을 바로 재주소년에서 찾을 수 있겠네요.
파스텔뮤직에서는 남성 뮤지션과 여성 뮤지션의 코라보레이션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데, '손잡고 허밍'도 그런 정책(?)에 따라 '요조'와 함께하는 트랙입니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사랑노래이기에 풋풋한 연애감정에 슬며시 미소짓게 만듭니다. '봄이 오는 동안' 차가운 겨울이 지나가고, 드디어 봄이 와서 '혼잡고 허밍'을 하나봅니다. 따뜻한 봄날의 밤에 반짝이는 별빛 아래서 연인과 함께라면 꼭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네요.
'Beck'은 '포크 듀오' 재주소년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독특한 믹싱의 연주곡입니다. 제목처럼 뮤지션 'Beck'에 대한 오마쥬가 아닐까 하네요.
'비밀의 방'은 몽환적인 소리로 가득한 트랙입니다. 꿈 속에서 들여오는 듯한 목소리와 기타 연주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듭니다. 그리고 '비밀의 방'이라는 다분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느낌의 제목과 의미심장한 가사는 11월 27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를 하는 밴드의 미래와 맞물려서 곱씹어 보게 합니다. '처음 만났던 그 시절'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숨겨진 바다', '머나먼 바다'는 이 밴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를 연상시킵니다. '지쳐있는 내가'는 재주소년으로 서 지금까지 온 두 멤버가, '잠시 지켜만 볼게'는 재주소년의 기약 없는 휴식이 대응됩니다. '비밀의 방', 그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는, 두 사람이 지금껏 미뤄온 각자의 길에 대한 이야기겠죠. 의미를 생각하면 다분히 쓸쓸합니다. 하지만 이 곡에서 그런 쓸쓸함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재주소년의 끝을 안타까워하는 청자의 마음이 그런 쓸쓸함으로 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쓸쓸함보다는 희망이 담겨있는 목소리의 '비밀의 방', 이 앨범 최고의 트랙으로 꼽고 싶습니다.
'머물러줘'와 '솔직, 담백'은 모던 포크 듀오답게 포크에 충실한 트랙들입니다. 연인에게 속삭이듯 수줍게 고백하는 모습들이 떠오르네요. 마지막 '춤추는 대구에서'는 앨범에서 가장 락킹한 트랙입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인 대구에서, 뜨거운 여름처럼 뜨거운 사랑이 지나가는 뜨거웠던 시절에 대한 노래이구요.
'유년에게', 유년에게 보내는 편지들은 여기서 끝이 납니다. 2002년에 시작된 '재주소년'의 긴 여정, 두 사람이 만들어낸 '소년적 감수성'의 기록도 여기까지이구요. 각자의 길을 가는 두 사람에게 건투를 빕니다. 앞으로 각자 소년적 감수성을 들려주기를, 그리고 잊을 만하면 가끔 다시 재주소년으로 찾아와 주기를 바랍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재주소년 - 유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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