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소년 - 유년에게

감성 모던 포크 듀오 '재주소년'의 네 번째 정규앨범 '유년에게'.

사실 '파스텔뮤직' 합류 이전의 재주소년은 저에게 관심 밖이었습니다. '재주소년?, 재주를 넘는 소년?'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한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여성보컬을 편애하고 해외보다 국내 남성보컬은 더더욱 관심이 없는 제 음악적 취향에서 '소년(국내 남성보컬)'은 당연히 가까워질 수 없었죠. 하지만 '스위트피(김민규)'와 함께 파스텔뮤직으로 영입되고, 컴필레이션 앨범 '결코 끝나지 않을 우리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주소년'의 음악을 엿볼 수 있게 되었죠. 신곡 '농구공'과 요조가 다시 부른 '귤', 두 곡을 통해서 재주소년에 대한 다시 보게 되었죠. 90년대 가요에 대한 향수 느껴지는 '농구공'에서는 이승환의 '덩크슛'이 생각나기도 했고, 요조가 재주소년과 함께 다시 부른 '귤'에서도 새콤달콤한 귤처럼 상큼했습니다. 일상의 소소한 감정을 노래로 풀어나가는 재주소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정규앨범이 파스텔뮤직을 통해 발매되었습니다.

재주소년은 '박경환'과 '유상봉', 남성 이인조의 모던 포크 듀오입니다. '재주소년'이라는 이름이 독특합니다. 이 밴드가 처음 '문라이즈레코드'로 데모 테잎을 보냈을 당시 제주도에 있었는데 제주도 소년을 의미하는 '제주소년'이라고 노골적으로 이름을 짖기는 민망해서 살짝 바꾸어 '재주소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소년에서 이제는 청년이 된 재주소년이 들려주는 유년에 대한 오마쥬, '유년에게'가 시작됩니다.

첫 곡 '밤새 달리다'는 오래된 카세트 테잎을 듣는 기분이 독특한 인트로로 시작됩니다. 가사는 상당히 자전적이면서도 은유적인 느낌의 가사입니다. 두 사람이 재주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달려온 길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고 해야겠네요. '밤새 고속도로를 달린다'라고 상쾌한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조금 비틀어 보면 두 남자가 '밤새 술로 달린다'라고 생각해도 무방할까요? 술로 밤을 지새우며 지난 시간에 대한 대화가 펼쳐질 지도 모르죠. 어떻게 달리든, 밤새 달려온 그 끝에서 유년에 대한 향수가 펼쳐집니다.

'소년의 고향'은 그 유년에 대한 향수를 시작하는 트랙입니다. 제목 그대로 고향에 대해 노래하고 있고 이 밴드의 이름의 유래가 된 '제주'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경환이 시작한 제주 이야기는 시작되는 노래는 왠지 구수한 느낌의 상봉이 들려주는 부산 이야기로 잠시 눈을 돌립니다. 다분히 회상적인 앨범의 분위기에 이 곡도 일조하면서 두 멤버의 출신에 대해 엿볼 수 있죠.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들의 목소리와 함께하며 제주도의 명승지를 소개하는 가사는 마치 제주도 관광을 홍보하는 CM송처럼 들립니다. 제주도 관광 공사는 재주소년을 섭회하지 않고 뭐하고 있나요?

'미운 열두살'은 경쾌한 멜로디와 재밌는 가사가 절로 미소를 만드는 트랙입니다. 열두살 여동생의 이야기를 오빠의 입장에서 들려주는 가사는 여동생을 둔 오빠라면 한 번 즈음은 경험해 보았을 만한 에피소드를 이야기 합니다. 천방지축 여동생이지만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담아내는 가사는 평범한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내는 재주소년 음악의 매력이 담겨있습니다. 째즈풍의 분위기있는 연주와 흥겨운 가사의 묘한 어울림은 이 곡의 매력을 더합니다.

앨범 제목과 동일한 '유년에게'는 유년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담겨있는 트랙입니다. '밤새 달리다'에서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진취적인 기상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지만, 이 곡에서는 안개가 자욱한 길을 걸으며 지나온 길을 뒤돌아봐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유년에 대한 그리움이 평온한 수면 위의 물결처럼 잔잔하게 퍼져갑니다.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미리 공개되었던 '농구공'은 90년 대에 대한 향수가 가득히 담겨있는 트랙입니다. 필자나 재주소년의 두 멤버와 같이 20대 후반의 남자라면 겪였을 이야기들이 담겨있죠. '패닉'의 '달팽이'를 언급하면서 시작하는 이 곡은 '농구'라는 소재난 슬픈 사랑 이야기를 주로 이야기하는 가요와는 다르게 밝은 가사는 '이승환'의 '덩크슛'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농구라는 소재는 90년대를 한국 소년 만화계를 휩쓸었던 '슬램덩크'의 향기도 담겨있습니다. 가수와 만화가가 되겠다는 두 친구도 바로 90년 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만화'와 '가요'에 대한 그리움을 슬며시 드러내구요. 간결한 기타리프는 코트 위를 가르는 드리블 소리와 겹쳐집니다. 바로 '이것이 웰메이드 가요'라고 불러도 될 만큼 짜임새를 갖추고 있습니다.

'봄이 오는 동안'은 성장기의 마지막을 노래하는 트랙입니다. 출생(소년의 고향)을 시작으로 유년기(유년에게)와 소년기(미운 열두살)를 지나 청소년기(농구공)를 거친 화자는 사춘기의 마지막을 지납니다. 잔잔한 기타 연주와 함께 가슴아픈 풋사랑을 노래하는 목소리는 아려한 그리움과 함께 울려 퍼집니다. 남성 듀오가 들려줄 수 있는 최고의 서정성을 바로 재주소년에서 찾을 수 있겠네요.

파스텔뮤직에서는 남성 뮤지션과 여성 뮤지션의 코라보레이션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데, '손잡고 허밍'도 그런 정책(?)에 따라 '요조'와 함께하는 트랙입니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사랑노래이기에 풋풋한 연애감정에 슬며시 미소짓게 만듭니다. '봄이 오는 동안' 차가운 겨울이 지나가고, 드디어 봄이 와서 '혼잡고 허밍'을 하나봅니다. 따뜻한 봄날의 밤에 반짝이는 별빛 아래서 연인과 함께라면 꼭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네요.

'Beck'은 '포크 듀오' 재주소년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독특한 믹싱의 연주곡입니다. 제목처럼 뮤지션 'Beck'에 대한 오마쥬가 아닐까 하네요.

'비밀의 방'은 몽환적인 소리로 가득한 트랙입니다. 꿈 속에서 들여오는 듯한 목소리와 기타 연주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듭니다. 그리고 '비밀의 방'이라는 다분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느낌의 제목과 의미심장한 가사는 11월 27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를 하는 밴드의 미래와 맞물려서 곱씹어 보게 합니다. '처음 만났던 그 시절'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숨겨진 바다', '머나먼 바다'는 이 밴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를 연상시킵니다. '지쳐있는 내가'는 재주소년으로 서 지금까지 온 두 멤버가, '잠시 지켜만 볼게'는 재주소년의 기약 없는 휴식이 대응됩니다. '비밀의 방', 그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는, 두 사람이 지금껏 미뤄온 각자의 길에 대한 이야기겠죠. 의미를 생각하면 다분히 쓸쓸합니다. 하지만 이 곡에서 그런 쓸쓸함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재주소년의 끝을 안타까워하는 청자의 마음이 그런 쓸쓸함으로 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쓸쓸함보다는 희망이 담겨있는 목소리의 '비밀의 방', 이 앨범 최고의 트랙으로 꼽고 싶습니다.

'머물러줘'와 '솔직, 담백'은 모던 포크 듀오답게 포크에 충실한 트랙들입니다. 연인에게 속삭이듯 수줍게 고백하는 모습들이 떠오르네요. 마지막 '춤추는 대구에서'는 앨범에서 가장 락킹한 트랙입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인 대구에서, 뜨거운 여름처럼 뜨거운 사랑이 지나가는 뜨거웠던 시절에 대한 노래이구요.

'유년에게', 유년에게 보내는 편지들은 여기서 끝이 납니다. 2002년에 시작된 '재주소년'의 긴 여정, 두 사람이 만들어낸 '소년적 감수성'의 기록도 여기까지이구요. 각자의 길을 가는 두 사람에게 건투를 빕니다. 앞으로 각자 소년적 감수성을 들려주기를, 그리고 잊을 만하면 가끔 다시 재주소년으로 찾아와 주기를 바랍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2010/11/19 00:29 2010/11/19 00:29

Mint Breeze Stage in 10월 24일~25일 GMF 2009

이동하면서 잠깐 본 밴드들 빼고, 전곡을 감상한 밴드들은 이 틀 동안 모두 5팀이었습니다. 24일 '오지은', '스위트피'였고 25일 '짙은', '장기하와 얼굴들', 'Maximilian Hecker'였죠.

'Loving Forest Garden'에서 'Alice in Neverland'의 공연을 마치고 찾아온 'Mint Breeze Stage'에서는 '홍대 마녀' '오지은'의 순서가 예정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연 전부터 우려되었던 점은 그녀의 음악이 이렇게나 큰 무대에 어울리냐였습니다. 오히려 방금 있었던 Loving Forest Garden이 그녀의 음악에는 더 어울릴 법했으니까요. '그대'를 시작으로 '익숙한 새벽 3시', '요즘 가끔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 등 잔잔한 곡들로 채워나간 그녀의 공연은 나쁘지 않았지만 밝은 대낮의 넓은 무대 위에서는 뭔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일행 중 한 사람은 '오후 3시를 오전 3시의 분위기로 만들어버린다'라고 불평을 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후반부에 배치된 곡들이 다행히 분위기를 살렸습니다. '진공의 밤'을 시작으로 그녀를 마녀로 만드는 곡들인 '화'와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는 그런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죠. 다음날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이 명약관화했던, 인디씬의 원로밴드 '언니네 이발관'이나 신인밴드들 가운데서 상당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노리플라이' 공연에 자리가 부족했던 점을 생각했다면 역시 무대 배치는 아쉬웠습니다. 그녀의 소속사와 GMF의 기획사가 같은 계열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다분히 '오지은 밀어주기'처럼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언니네 이발관'같이 더 인지도있고 연륜있는 밴드가 더 작은 무대에 서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런 의혹은 더 클 수 밖에 없었죠.

이어 델리스파이스의 리더이자, 인디씬의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할 수 있을 '스위트피(김민규)'의 무대였습니다. 세션들과 함께 등장했는데 그 세션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문라이즈 연합군'혹은 '문라이즈 잔당'이라고 해야할까요? '문라이즈'의 대표이자 뮤지션인 '스위트피'를 제외하면 남아있는 유일한 소속 뮤지션인 남성 듀오 '재주소년'의 두 사람이 기타와 코러스로 등장했고, 다른 한 명의 기타 세션은 바로 '슬로우 쥰'이었습니다. 스위트피와 재주소년같이 말랑말랑한 남성보컬의 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죠. 또 독특한 점이 '스위트피'의 순서였지만 '문라이즈 연합군'이라고 언급했듯이 새로운 컨셉으로 공연을 진행했다는 점입니다.

스위트피는 자신의 곡들 '섬', '오! 나의 공주님' 등을 들려주었는데 비단 스위트피의 곡들 뿐만 아니라 재주소년의 곡들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위트피가 부르는 재주소년의 곡이 아니라, 바로 재주소년의 목소리로요. 두 멤버가 각각 부른 '미워요', '귤'이 기억에 남네요. '스위트피'에게 배정된 시간을 문라이즈 연합군이 공연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방식은 바로 25일에 예정되어있는 '재주소년'의 순서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역시 문라이즈 연합군의 공연이 될 것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깐 이틀 동안 1부와 2부로 나누어진 '문라이즈 연합군 공연'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재주소년의 입장에서는 다음날은 또 어떻게 꾸려나갈지 살짝 걱정이되기도 하더군요. '재주는 소년이 부리고 돈은 사장님이 번다'고 사장님(스위트피)의 횡포가 아니었을지요? 물론 그럴리 없겠지만요. 마지막 곡은 주옥같은 스위트피의(스위트피도 카피한 곡이기는 하지만) 'Kiss Kiss'였습니다. 화창한 가을날, 재주소년과 스위트피, '어린왕자 연합군'의 소소하고 수줍은 공연이었죠.

그렇게 24일은 'Loving Forest Garden'과 'Mint Breeze Stage'를 돌아다니다가 끝이났습니다. 25일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조금 늦게 올림픽공원에 도착했습니다. 3시에 예정되어있는 '짙은'은 순서를 맞춰 Mint Breeze Stage에 입장해서 스탠딩 존에 들어갔지요. 이 날 짙은의 무대는 아주 특별했는데, 바로 짙은의 파스텔뮤직 입사 즈음에 군입대를 한 다른 멤버 '윤형로'가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짙은'을 보컬 '성용욱'의 원맨 밴드로 알고 있지만, 보컬 성용욱과 기타리스트 윤형로의 듀오랍니다. 세션으로는 계속 공연을 도와주고 있는 첼로리스트 '성지송'과 '타루'의 '음악적 짝'이라고 할 수 있는 '오박사(오수경)'가 눈에 띄었습니다.

'Secret', 'December', 'Feel alright' 등 지난 단독 공연에서 들었던 곡들을 좀 더 꽉찬 소리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2005년에 발매된 EP 수록곡 'Rock Doves'는 두 멤버가 함께 무대에 선 모습을 보며 들으니 또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 곡은 짙은의 주목같은 히트곡(?) '곁에'였습니다. 두 멤버가 함께 선 모습은 팬들에게는 아마도 큰 선물이었을 듯합니다. 이제 두 사람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겠군요.

이어 '대한민국 최고의 힙합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순서였습니다. 올해 어떤 페스티벌이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섭외 1순위 인디밴드답게, 세팅시간동안 사람들은 속속 모여들어서 스탠딩 존은 거의 가득 찼고, 이 밴드의 인기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잖어', '정말 없었는지'같은, 장기하의 표현에 의하면 축축 처지는 노래들로 시작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미미 시스터즈'가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는데, 페스티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이벤트가 있었나 봅니다. 결국 미미 시스터즈도 합류했고, '달이 차오른다, 가자', '별일 없이 산다' 등을 들려준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저는 이때 돗자리에 누워 가을날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Maximilian Hecker'의 순서가 찾아왔습니다. 최근 일 년에 한 번 씩은 꾸준히 방문하는 그는 올해는 GMF에서 볼 수 있게되었죠. 밴드와 함께했는데, 아시안 투어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에서는 GMF 공연을 갖게된 것이더군요. 우리나라를 경유해서 중국에 갈 예정으로 그곳에서는 수 차례 공연이 예정되어 있더군요.

이제는 나이를 속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리고 감성적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한 그와 그의 밴드는, 다섯 번 째 앨범이 발매된 만큼, 그 앨범의 수록곡들("The space that you're in", "Misery", "Miss underwater", 'Snow white" 등) 위주로 공연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3집의 수록곡들도 몇 곡 들을 수 있었습니다. 'Summer days in bloom', 'Anaesthesia' 등이었고 저는 나즈막히 싱얼롱할 수 있었습니다. anaethesia의 허밍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아쉬울 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거의 서정적이고 조용한 음악들을 들려주는 그이기에 스탠딩 존에 서서 즐기는 사람들보다, 잔디에 앉아 즐기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페퍼톤스'를 보고 싶었지만 한참을 기다려야하고, 더구나 다음날 출근해야한다는 '직장인의 비애'를 안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Mint Breeze Stage 사이에 본 'Cafe Blossom House'의 두 뮤지션은 마지막 포스팅으로 하도록 하죠. 그러고보니 'Club Midnight Sunset'을 결국 25일에 잠깐 드른 것 외에는 제대로 본 뮤지션이 없네요.

2009/10/28 16:05 2009/10/28 16:05

'결코 끝나지 않을 우리들의 이야기' 발매 기념 공연 @ 상상마당

'파스텔뮤직'은 창사 7주년을 기념하여 9월부터 올해 말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공연 시리즈를 준비하였습니다. 총 4개의 'Stage'로 구성되었고 첫 번째 Stage가 9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상상마당'에서 열렸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역시 7주년을 기념하여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결코 끝나지 않을 우리들의 이야기'의 발매기념 공연이었습니다. 이 컴필레이션의 부제는 'Hommage to Moonrise'로 이 부제처럼, 바로 '문라이즈 레코드'에서 발매되었고, 얼마전 파스텔뮤직을 통해 재발매된 '스위트피(김민규)'의 첫 번째 앨범 'Neverendingstories(결코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에 오마쥬가 담긴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전 컴필레이션 앨범 '크래커'나 '12 songs about you'의 발매기념 공연에서 앨범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공연에 참여했던 것처럼, '발매 기념 공연'이라고 하여 모든 뮤지션들이 등장한 것을 기대한다면 큰 오해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번 '발매 기념 공연'에는 참여 뮤지션 중 상대적으로 최근 공연이 없거나 좀 한가한(?) 뮤지션 세 팀이 참여했습니다. 바로 순서대로 '루싸이트 토끼', '재주소년', '짙은'이었습니다.

3일 연속 공연의 시작, 1막 1장의 오프닝을 담당한 '루싸이트 토끼'는 꿈같은 공연으로 초대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는지, '꿈에선 놀아줘'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소박한 연애감정을 노래하는 '비오는 날'이 이어졌죠. 두 멤버와 키보드의 세션의 소개도 있었는데, '뭐뭐를 담당한 누구'로 소개하는데 그 담당 영역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요리나 멘트 담당이 있었던거 같은데 이번 소개에서는 빠졌더군요. 그리고 카피곡으로 'Joni Michell'의 'Big Yellow Taxi'가 이어졌습니다. FPM이나 Mondo Grosso의 노래를 카피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이 곡은 처음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보컬 조예진의 음역 변화로 깜짝 놀랐습니다.

모 건전지의 광고에 등장하는 북치는 토끼에서 영감을 얻어, 토끼의 애환을 담은 '북 치는 토끼'와 '12월'이 이어졌습니다. 1집의 타이틀 곡이었던 12월에 대한 일화로, 2007년 12월 즈음에 라디오 방송에 나간적이 있는데 PD가 12월이 다갔다고 타박을 주었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앨범 발매가 2007년 12월 초여서 충분히 홍보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 그래서 '루싸이트 토끼'는 '뒷 북 치는 토끼'가 되어버린거죠.

역시 '12월'처럼 9월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른한 봄을 노래하는 '봄봄봄'과 마지막 곡이자 2집에 수록될 '손 꼭 잡고'로 순서는 끝났습니다. 10월 경에 앨범 발매와 쇼케이스가 예정되어있는 '루싸이트 토끼'로서는 1집을 정리하는 의미의 공연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다음 공연부터는 2집의 신곡 위주로 꾸려나갈테니 1집의 수록곡은 몇몇만 들을 수 있겠죠.

두 번째는 '재주소년'이었습니다. 문라이즈 레코드에 소속되어 세 장의 앨범을 발매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고, 파스텔뮤직 소속으로 발매한 EP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도 갖고 있지만 공연은 처음이었습니다. 두 명의 남자로 이루어진 팀으로 이미지는 그들이 들려주었던 노래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스크린이 오르고 세 곡 '오사카', 'Heart', '마르세유'을 연속으로 들려주었습니다. 그 중에 '마르세유'의 프랑스의 도시 마르세유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사실인지 정말 궁금해지더군요.

조용조용한 곡들을 들려주는 두 사람은, 2003년부터 활동하였으니 약 6~7년 정도의 짧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멘트에서는 수줍은 모습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더구나 두 사람이 서로의 멘트를 중간에 잘라서, 마치 달리기를 하는데 왼발이 오른발에 걸려, 오른발이 왼발에 걸려 자꾸 넘어지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물론 재밌었지만요. 이른의 아침의 조깅같은 '간만의 외출'과 너무나 멋들어진 제목의 '그래서 그런지 현실이 낯설었어'을 들려주었습니다. 재밌는 듀오였지만, '그래서 그런지...'에서 은근히 진지한 목소리도 좋았습니다.

7주년 컴필레이션에서 '요조'가 리메이크했던 '귤'도 들을 수 있었는데, 요조 버전과 비슷한 감성이었죠. 컴필레이션에 수록된 신곡 '농구공'과 '이분단 셋째줄'을 들려주고 스크린은 내려왔습니다. '재주소년'이라는 이름은 바로 문라이즈 레코드의 사장이었던 '김민규'가 붙여준 이름이랍니다. 처음 문라이즈 레코드로 데모 테잎을 보냈을 때, 겉에 써있던 '제주대 1학년...'을 보고 '재주소년'이라도 지어주었다네요 '제주'가 '재주'가 된 것은 '지역색'을 지우기 위해서라네요. 저도 '재주소년'이 '제주도'에서 유래되었다고 읽은 기억이 있네요. 그런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X놈이 번다'에 빗대어 '재주는 소년이 부리고 돈은 사장이 번다'는 실없는 농담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재주소년의 음악에서는 야구만화라기보다 야구를 차용한 성장만화였던 'H2'의 작가 '마다치 미츠루'의 작품들처럼 여백의 미가 있으면서도 진중하게 '성장'에 대해 고민하는 흔적이 느껴집니다. 언제쯤 '재주소년'은 '재주청년'이 되어있을까요? 갑자기 '재주중년'이 되어버리지는 않겠죠?

마지막은 '짙은'으로 미모의 첼리스트와 함께 등장하였습니다. 세 팀다 조용한 음악이고 뭔가 '매니악'한 구석도 있어 보이는데 '루싸이트 토끼'가 세 명의 '동인녀'같았고, 재주소년이 그야말로 건프라와 비디오 게임의 '오덕후'같았다고 한다면, 짙은은 'AV 매니아' 정도는 붙여줘야할 법했습니다.(물론 농담입니다.) 개인적으로 짙은의 EP 'Rock Doves'를 발매한 날 클럽 '롤링스톤스2'에서 공연을 보고 EP를 구입했던 기억이 있는데,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그의 보컬에서는 어떤 '과잉'이 있었습니다. 지금과는 다르게 공연에서 과도하게 사용한 '바이브레이션'이 그 과잉이었죠. 그렇게 좋지 않은 첫인상 때문인지, 이후로 그의 공연은 찾아가지 않게 되었죠.

첫 곡으로 '나비섬'을 들려주었습니다. 이어 들려준 '동물원'은 바로 7주년 컴필레이션에 수록된, '토마스 쿡(정순용)'의 곡을 리메이크한 곡으로, 어쩌면 슬프게도, 이번 공연에서 그가 들려준 어떤 곡들보다도 좋았습니다. 밴드 '동물원'의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모습'을 이야기하기에 '혹시 밴드 이름처럼 술을 마시면 짐승으로 변하기라도 하나' 이런 망상을 했지만, 역시 어림없었습니다. 미모의 첼리스트는 얼마전에 솔로 앨범을 발표한 'Eterno 지송'이라고 합니다. 첼로의 고수라고 하는데, 역시 대단한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싱글로 발표된 'December'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December는 바로 12월로 어찌보면 루싸이트 토끼와 같은 제목이 되네요. 드라마 '트리플' OST에 수록된 'Feel Alright'과 1집의 타이틀 곡 '곁에'가 이어졌습니다. 그가 아끼는 EP 수록곡 'Wonderland'도 들을 수 있었고, '괜찮아'로 첫 째날의 공연이 끝났습니다.

제가 그에게 느꼈던 '과잉의 첫 인상'은 이제 지워야겠습니다. 왠지 클라이막스가 나와야할 법한 곡에서 그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는 점은 조금 아쉽지만, 그 나름대로의 '절제의 미덕'을 갖춘 지금의 모습에서 그의 다음 공연이 조금은 기대가 되더군요. 짙은은 'Stage 2'에서 단독 공연이 9월 26일에 예정되어있습니다. 관객들이 퇴장이 끝나고 바로 다음날 공연이 있는 'Swinging Popsicle'이 공연을 위해 상상마당을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만나죠.

2009/09/07 03:31 2009/09/07 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