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강변북로 가요제'를 시작으로 2년마다 홀수년에 열리는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가요제는 올해로서 3회째를 맞았습니다. 2007년과 2009년에는 각각 '강변북로 가요제'와 '올림픽대로 듀엣 가요제'로 서울을 상징하는 한강의 북단과 남단을 따라 달리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로 서울을 포함안 수도권을 무대로 했다면, 올해는 전국으로 무대를 넓혀서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긴 고속도로인 '서해안고속도로'(342km)에서 열렸습니다. (참고로 가장 긴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로 426km입니다. 2013년에도 열린다면 '여름의 휴가'라는 상징에 맞게 234km의 영동고속도로에서 열리지 않을까 하네요.) 2009년의 듀엣 가요제와 비슷하게 기존의 가수들을 섭외하여 팀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음원이 공개되면서 모든 곡들이 음원차트의 상위권을 장식하는 '무한도전의 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009년에는 어떤 곡들보다도 '박명수'와 '소녀시대'의 '제시카'가 함께한 '냉면'이 거의 압도적인 인기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에서는 모든 곡들이 사랑을 받았는데, 개인적으로 눈에 띄었고 최근에 많이 듣는 곡은 바로 '정재형'과 '정형돈'이 함께한 '파리돼지앵'의 '순정마초'입니다. 누구라도 의미를 알아챌 수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중인 정재형의 별명 파리지앵과 정형돈의 별명 돼지를 결합한, 팀이름은 조금 우습지만 이 팀이 들려주는 노래은 어떤 팀들보다도 진지합니다. 대한민국 간판 예능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무한도전'의 이벤트답게 적당히 가볍고 신나는 가요제를 만드는 것이 격년으로 열리는 가요제의 목표가 아닐까 하는데, '파리돼지앵'이 들려주는 '순정마초'는 도입부부터 상당히 진지합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시작하는 웅장한 연주는 가요제에 참가한 다른 곡들과는 다른 스케일이고 청자를 압도할 만한 위력입니다. 처음 '순정마초'의 연주를 들었을 때, '역시 클래식을 전공하는 정재형다운 스케일이구나'라는 생각과 '가요계에서 정재형이 아니면 할 수 없을 스케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애절한 탱고의 선율을 연주하는 '반도네온'이라는 생소한 악기까지 동원하여 오페라의 한 소절을 보는 듯한 웅장함을 들려주는 '순정마초'의 연주는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격'이라고 할 만하겠습니다.

하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달라집니다. '순정마초'라는 '순정'과 '마초'가 합펴진 제목 자체부터 어쩐지 우스운데 '달밤의 미스터 리옴므파탈'이라던지 '사랑의 파괴자'라는 단어는 그럴싸하게 진지하면서도 우습습니다. 그리고 '레베카'를 '내 백합'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그 절정을 달립니다. 병맛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순정마초가 들려주는 웅장함 때문에 '병신같지만 어쩐지 멋있어'라는 기분입니다.

최근 예능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윤종신'에 이어 가수출신의 '예능늦둥이'의 기질이 보이는 정재형은 '베이시스' 시절부터 좋아하는 곡들이 많았고 솔로 앨범을 통해 저는 확실하게' 꼭 앨범을 사야하는 뮤지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8년 (가수로서) 세 번째 정규앨범 '에 이어 2009년의 소품집 '정재형의 Promenade, 느리게 걷다'를 발표하였고 2010년에는 첫 피아노 연주 앨범 Le Petit Piano'를 발표하였습니다. 2011년이 다 가기전에 새로운 정규앨범을 기대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