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일 다른 곳에 작성했던 글>

내가 생각하는, 사랑하게 된다면 생겨날 '(아마도) 행복의 우선 순위'.

1. 우리의 행복
2. 너(그대)의 행복
3. 나의 행복


'사랑'이라는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1번 행복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1번이 만족된다면, 2번과 3번은 당연히 만족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1번이 만족되지 않을 경우,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이별이라는 문제말이다.

두 사람 중 누군가는 먼저 이야기할 것이다. 1번이 성립되면 좋겠지만 슬프게도 그렇지 않아, 함께 하면 2번도 성립되지 않아 3번을 희생해서라도 보내주겠노라고.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이것은 배려일까? 아니만 기만일까?

첫 번째, 정말 1번이 성립될 수 없는 상황이고 그대에게는 함께하는 것이 2번의 성립의 장애 요인 반면, 1번이 성립되지 않아도 나에게는 3번의 성립된다면 먼저 이별을 말하는 것은 '배려'라고 하자.



두 번째, 1번이 성립될 수 없는 상황이지만,2번만 성립되고 이고, 이 상황에서 지금 성립되지 않는 3번을 위해, 2번의 성립을 위해 이별해야 한다고 가장하여 말한다면 이것을 '기만'이라고 하자.

하지만 첫 번째 경우 이별을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2번이 성립되지 않는 상황에서 3번이 성립되면, 분명 그 3번은 '바람 앞의 등불'같은 것일테고, 결국 서로에게 상처가 될 것이다. 3번 만을 위해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기만'이다. 두 번째의 경우 먼저 이별을 하지 않고 관계를 유지한다면 '배려'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리 없다.

결국 두  사람 중 어느 사람이 먼저 나쁜 사람이 되더라도 이별은 찾아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서로 남이었던 두 사람이 사랑이라는 끈에 묶에 있다가 어느 한 쪽의 그 끈이 느슨해지면 결국은 놓아주어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먼저 놓음으로서 받는 상처보다, 억지로 붙잡으려하다 받게될 상처가 더욱 클 테니까. 그대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누군가는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만'과 '배려'는 결국 상대적인 것이다. 아마도 사랑이 지속될 수 없다면 '쿨하게' 이별하는 것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아름다운 배려'가 아닐까? 이별을 통고하는 쪽이든, 아니면 그 반대든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사랑했던 시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주고 받으며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번이 성립되어야만 진정한 사랑이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1번이 성립되지 않는 상황에서, 2번 혹은 3번만 성립되는 것은 아마도 진정한 사랑이 아닐 것이다. 물론 1번이 성립되지 않고도 2번과 3번이 동시에 성립되는 '동상이몽'의 기묘한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