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tango)'를 생각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고혹적인 아름다움'과 '열정적인 사랑'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연상의 이유가 '왜?'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은 '탱고'라는 단어가 열정적인 '춤'을 의미하는 동시에 비극이 공존하는 '춤곡'도 의미하는 점에서 왔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 많은 영화들 속에서 탱고가 그런 장면들에 삽입되었기에 발생하는 일종의 '조건 반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역사적으로 여러 민족의 침략과 이주가 이어진 아르헨티나의 '역사적 굴곡'으로부터 탱고 속에 스며든 '희노애락'이 듣는이에게 전달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희노애락은 역사를 통틀어 꽤 많은 외세의 침략을 겪은 우리민족의 감정과도 닿아있는 부분입니다. 어찌 되었든, '탱고'는 우리에게 역사적/지리적으로는 꽤 멀지만, 감정적/감상적으로는 또 그다지 멀지만은 않게 느껴집니다.

홍대 인디밴드들의 키보드 세션으로 더욱 유명한 '오수경'의 2012년 9월 발표한 개인 소품집 "시계태엽 오르골"은 '키보드 세션'이 아닌 '솔로 뮤지션'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앨범이었습니다. 여섯 트랙의 EP "시계태엽 오르골"은 연주곡만을 수록하고 있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독특한 그녀의 음악 세계를 들려주는데 부족함이 없었고 당연히도 그녀의 다음 앨범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렇게 약 1년이 지난 2013년 10월 그녀는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저는 2014년 3월에 앨범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앨범은 '오수경'이라는 이름의 솔로 앨범이 아닌 '살롱 드 오수경'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밴드의 앨범이었습니다.

"살롱 드 오수경"은 전곡을 작곡한 피아니스트 '오수경'을 중심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장수현', 첼리스트 '박지영', 그리고 청일점 베이시스트 '고종성'으로 구성된  4중주(quartet) 밴드입니다. 우리말로 '오수경(의) 살롱' 정도가 될 밴드 이름에서부터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앨범 제목도 밴드 이름과 비슷한 "Salon de Tango", 즉 '탱고 살롱'으로 '장르는 탱고'라고 분명하게 표현합니다. 여성의 목덜미를 보여주는 사진도 흥미롭습니다. 목걸이를 하는 거친 손이 연주자라고 짐작되는데,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는 그 마지막 순간의 뒷모습에서 '비장함' 혹은 '비장한 결의'가 느껴집니다. 

첫 트랙 'The Salon is open'은 제목 그대로 앨범 "Salon de Tango"를 시작하는 곡입니다. 앞으로 이 salon에서 펼쳐질 이야기를 전혀 예측할 수 없게 하려는지, 피아노 연주는 '영화 상영에 앞선 예고편'처럼 경쾌하며서도 간결합니다. 곳곳에 사용된 꾸밈음은 간결하지만 투박하지 않은, 섬세함을 더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는 '만남'은 필연적으로 '사랑 그리고 이별'을 예감하게 합니다. 전체적으로 연애세포을 간지럽히는 봄 바람처럼, 혹은, 그 봄 바람에 살랑이는 꽃잎처럼 나긋나긋합니다. 그 나긋나긋한 멜로디 속에서도, 불협화음처럼 어긋난 끝음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합니다. 그리고 도입부의 삐걱거리고, 두드리고, 끍는 소리들도 주목할 만한 장치입니다. 그 효과들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시작처럼 작은 소동이라면 '인연의 발단'일 수도, 혹은 '필연적인 이별의 복선'일 수도 있습니다. '관음증'이라는 제목은 탱고의 이미지 가운데 하나인 농밀한 '에로티시즘(eroticism)'을 상기시킵니다. 영화 "그녀에게"에서 훔쳐보는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 '훔쳐보기'는 '색정적'인 느낌보다는 서글픈 구석이 있습니다. 닿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슬픔과 닿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고독이 그 서글픔의 발로가 아닐까요?

'서로에게 길들여지기'의 도입부에서 피아노에서 바이올린으로 이어지는 돌림노래같은 반복은, 두 사람의 '동화(同化)'가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 길들여짐은 평탄하지 않습니다. 완급의 변화는 그 과정에서 반목과 화해가 반복되는 상황를 암시하는 듯합니다. '사랑의 인벤션'은 다음 트랙의 전주라고 할 수 있는 짤막한 피아노 연주입니다. 사랑의 설렘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찬란하게 타오르기 위한 잔잔한 예열' 혹은 '폭풍전야의 고요한 평온함'일 수도 있습니다. '열정적인 사랑'은 제목과는 다르게 활활 타오르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그 안에는 우아함과 고혹, 비애와 격정까지 모두 녹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찬란하게 타오르는 열정적인 사랑으로 결실을 맺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뜨거웠던 만큼, '이별'은 차갑습니다. 하지만 그 이별의 모습을 '과장된 비극'으로 포장하기 보다는, 담담하고 쓸쓸하면서도 우아한 기품과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점은 이 곡의 미덕입니다.

'뫼비우스'는 '만남과 이별', '열정과 냉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랑의 역사'를 의미하리라 생각됩니다. 긴장감있게 몰아치는 연주와 느릿한 연주가 교차되는 구성은 그런 '순환'을 표현합니다. 시작과 끝이 연결되고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끈'처럼, 이별이 남기는 허무함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사랑이라는 불빛을 좇는 모습은 인간의 어리석은 본성일까요? '만남'의 철자를 풀어보면 'ㅁㅏㄴㄴㅏㅁ'으로 마지막 철자부터 거꾸로 써도 같은 '만남'이 되는 회문(palindrome)이라는 점이 재밌습니다. 시작과 끝이 같으니, 남이었던 두 사람의 인연이 닿는 만남에 있어서 다시 남이 되어야 하는 이별은 피할 수 없는 종착역일 수도 있겠습니다. 'Goodbye'는 마지막 쓸쓸한 미소와 같은 결말이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불 속에 파묻혀서 울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지막 여운을 남기는 piano solo 버전의 '관음증'은 혹시 오수경의 솔로 욕심이 담긴 트랙일까요?

밴드의 리더로 이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을 작곡한 오수경 그녀이지만, 연주에 있어서는 과욕을 부리지 않은 점은 이 밴드가 만들어지고 이 앨범이 나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보입니다. '탱고'의 대표적인 악기로 '반도네온'이 떠오르는데, 반도네온이 없는 '피아노 4중주' 밴드에서 소리의 중심은 '바이올린'같이 날렵한 음색의 악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녀도 그런 점을 받아들이고 소리의 중심에서 물러나 조율의 역할을 한 점은, 그녀의 탁월한 작곡 능력 그리고 멤버들의 탄탄한 연주 실력과 함께, 이 앨범이 연주 앨범으로는 기대 이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소입니다. 이런 그녀의 현명한 선택은 오랜 시간동안 다른 뮤지션들의 키보드 세션을 했던 경험이 묻어나온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 '살롱 드 오수경'의 리더이자 작곡자로서 그녀를 또렷하게 기억해야 겠습니다. '살롱 드 오수경'의 행보가 이 앨범 한 장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