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후반부터 미국에서 도서/영화/TV시리즈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현상 가운데 하나는 바로 '포스트묵시록(postapocalypse)'이다. 대표적인 현상이 '좀비물'의 인기인데, 1950년대 소설을 영화 '나는 전설이다'를 비롯한 '좀비 영화'는 역시 최근 소설을 각색한 영화 '월드워Z'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TV시리즈로는 '워킹 데드'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2007년 미국에서 출간되고, 2008년에 국내에도 소개된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the World without Us"도 일면에서는 그런 '종말적 재앙 뒤의 세상'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과 대중문화적 현상에 궤를 같이하는 책이라고 할 수있겠다. 하지만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흥미 위주로 쓰여진 소설이나 영화들과는 다르게,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정교한 과학적 예측이 첨가된 논픽션이다. 작가는 고고학, 생물학, 화학, 해양학, 토목건축학 등 과학의 각 분야들(그리고 그 세부 분야들)의 전문가들과의 협조로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등지를 돌며 인간이 없었던 과거와 인간의 등장 이후, 그리고 인간이 사라진 후의 세상까지 다각도로 조명한다.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에서 '스미스 요원'은 '네오'에게 '인간은 바이러스와 같다'고 말한다. 지구와 대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숙주에 침투하여 숙주를 이용하고 결국에는 파멸로 몰아가는 지독한 '바이러스'처럼, 인류도 '지구'와 '대자연'이라는 숙주에 기생하면서 그 혜택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구와 대자연을 파괴하고 결국에는 인류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인류가 유인원에서 벗어나 도구를 사용하고 문명을 개척해나간 역사는 '파괴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 속에서도 '수렵 생활 동안 자행된 인류의 (전격전에 비유되는) 대학살과 그로 인한 대형 포유류의 멸종 가능성'과 '농경 생활에 따라 자행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숲과 목초지의 대파괴'를 언급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화석 연료를 사용하기 시작한 최근 2세기 동안에는 그 파괴가 더욱 가속되었고, 인류 등장 이후 어느 순간보다 더 많은 생물종이 멸종되고 있다.

결국에는 '자연과의 조화와 자연 보호'의 메시지를 던질 수 밖에 없는 책이지만, 그 이상의 지식을 전달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아직도 코끼리나 코풀소, 하마와 같은 대형 포유류들이 건재하는 아프리카 대륙과는 다르게, 현재 아메리카 대륙에서 대형 포유류가 서식하지 않는 이유는 꽤나 충격적이다. 상당히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아메리카로 건너간 인류의 '전격전에 가까운 대량 학살'로 설명하는 부분에서 인간의 본성은 본래 (역시 다분히 인간 중심의 가치 판단이기는 하지만) 바이러스처럼 '악하고 파괴적'이라는 생각을 들게한다. 그리고 흔히 우리가 '친환경 플라스틱' 혹은 '광분해 플라스틱'이라고 알고 있는 플라스틱들도 자연에서 완전히 분자 수준까지 분해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게 분해되지만, 현미경으로는 보이는 수준이어서 결국 바다의 미생물들이나 작은 생물들에게 먹이로 오인되어 흡수되고 먹이 사슬을 따라 상위 포식자로 갈 수록 농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상당히 께름칙할 따름이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와 희망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비교적 중립적이다. 우리 인간이 없어지면, 인류가 길들였던 몇 종의 동물과 식물들을 제외하면, 아프리카 세렝게티를 비롯해 여러 대륙 곳곳에 아직 상처 없이 남아있는 산과 숲과 들에서 동식물들이 처져서 대부분은 (감정이 있다면 아마도 기쁘게) 다시 번성하리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인류에게는 '미지의 세계'에 가까운 바다에도 회복의 희망은 남아있다고 한다. 작가는 직접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지만, 분명 '세상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성경을 기초으로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비꼬는 의도도 엿보인다. 하루 아침에 인간이 모두 사라지거나 갑자기 대부분의 생물종들이 멸종하지는 않겠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멸종을 늦추고 조화로 나아가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은 역시 기독교적 세계관 만큼이나 극단적이다. 결국 지구를 소모하는 인간의 수를 줄여야하고, 그 수를 줄여나가는 현실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은 '출산 제한'이다. 한국의 성공적인 '산아 제한 정책'이 떠오르는 부분이기도 한데, 엄마 한 명에 아이 하나로 제한한다면 21세기의 끝자락에는 현재 60억이 넘는 인류를 그 절반 정도까지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확실하지만 쉽지 않은 방법이다. 다행히도 산업화된 많은 나라들에서 출산율이 과거에 비해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는 점은 희망적이다. 하지만 역시 아직도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과연 그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인간'이라는 부하를 지구와 대자연이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인류가 22세기와 23세기, 그리고 더 먼 미래의 시간들을 지구에서 보낼 수 있을까? 결국 화석으로만 기억되는 공룡처럼 되지는 않을까? 인류도 아직까지는 '지구'라는 단 하나의 행성에 의존하는 종족이기에, 소행성 충돌이나 빙하기 같은 자연 재해에는 당해낼 수 없겠지만, 인류의 '멸종 원인'이 어리석게도 '우리 자신'이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바로 지금이 지구와 지구 위의 모든 생명을 위한 작은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전문적으로 공부하거나 전문 서적을 읽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고고학/인류학적 사실과 미국과 미국의 대도시들의 자연사, 그리고 최근 인류가 이뤄낸 다방면에서의 과학적 성취까지 전달해주는 점은 흥미롭다. 다만, 꽤 길게 늘어지는 문장들에서 부자연스럽고 매끄럽지 못한 번역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