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Blu'가 준세이의 10년 전 약속에 대한 기다림이었다면,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준고의 기약 없는 7년의 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좀 딴 소리 하자면, 왠지 두 작가가 써 내려간 이 소설이 '냉정과 열정사이'의 인기에 편승한 아류이자 이벤트성이 짙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운 사람은 나 뿐일까? 조만간 두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와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의 한국어판 출판을 담당하는 소담출판사에서 '에쿠니 가오리'와 한국 남성 작가의 공동 집필 작품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그런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겠지만...

헤어짐 후에 홍이 좋아하던 '윤동주'의 시를 이해해가는 준고의 모습은 왠지 약간은 억지스럽다고 할까? 바로 내가 이 책이 '이벤트성'이라고 느끼는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시'란 감정의 약속이자 언어의 마술같은 것이어서, 같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국어로 쓰인 시를 접하는 것이 아닌 외국어로 접하면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 것이고 다른 문화의 외국인이 그 외국어로 번역된 시를 읽는 다면 변역 과정에서 의미의 왜곡이나 어감의 변질이 거의 반드시 동반될 수 밖에 없기에 이해란 더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왠지 이 소설에 대한 딴지글이 되어 버렸는데, 그럼에도 읽을 만하다. 준고의 우유부단한 모습은 준세이의 그것과 닮아있고 그래서 결국 두 사람사이의 끊어진 시간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그것을 이어내고 만다.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들에서 보여지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또 다른 전형이라고 할까?

홍이 좋아했던 것들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이해해가는 과정들에서 끊어진 시간의 연결고리 '한국의 친구, 일본의 친구'. 준세이가 명화 복원이라는 작업을 통해 시간을 되살리며 했다면, 준고는 이 작품을 통해 그것을 해냈다. 준고와 홍의 단절, 그보다 더 골이 깊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앙금은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모든 것이 한순간의 일이었다. 그 순간의 연속 속에 모든 것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있다고 때닫기도 전에 한순간은 사라지고 말았다.
순간은 영원이다. 영원이 순간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