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잔혹한 희정씨' in 11월 19일 V-hall

11월 11일에 있었던 팬미팅에 이어서 1주간격으로 다시 '한희정'을 단독공연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공연의 제목은 이름하여 '잔혹한 희정씨'였는데, EP '잔혹한 여행'에서 착안한 제목이었습니다. '허니정'이라고 그녀의 애칭을 대놓고 이용한 포스터에서는 밴드 '불싸조'의 냄새가 풀풀 느껴졌어요.  오랜만에 방문한 V-hall 입구에서 티켓을 받았고 42번이었습니다. 입장시작 약 30분 즈음 전에 도착했는데도, 줄을 서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서 의아했지만, 역시 그녀의 공연인지라 입장시작이 가까워지니 긴 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빠른 입장 순서는 아니었지만 운좋게도 세 번째 쭐, 사진을 찍기에 마음이 편한 맨 가장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었고,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 '잔혹한 희정씨'를 위해 준비된 영상이 스크린에 나타났습니다. 얼굴이 부분부분이라 알아보기 쉽지 않았지만 '줄리아 로버츠', '스칼렛 요한슨', '나탈리 포트만', '주이 디샤넬' 등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무대에 등장한 그녀는, 반짝이는 은색의 가발과 얼룩말 무늬의 레깅스 차림으로 마치 10대 아이돌같은 느낌으로 등장했습니다. 첫 곡은 끈이 었습니다. 사랑과 이별을 컨셉으로 했고 '잔혹함'을 표방하고 있기에 우선 '사랑의 시작'이 있어야하겠지요. 아련한 사랑으로 가득했던 지난 EP '끈' 수록곡 '끈'에 이어 역시 같은 EP에 수록되었고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곡인 '러브레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산책', '솜사탕 손에 핀 아이'로 이어지는 흐름는 그녀의 지난 공연들과 비슷하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잔혹한 희정씨'는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 첫 번째는 멘트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지난주 팬미팅에서 너무 위험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어서 자제하는지, 아니면 아이돌같은 옷차림처럼 조신한 척하는지, 또 아니면 '소통의 부재'라는 잔혹함을 선사하려는지 모르겠지만요. 새 EP의 수록곡을 드디어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는데 바로 '입맞춤, 입술의 춤'이었습니다. 아슬아슬한 분위기의 이 곡은 '사랑의 위기'를 감지하게 했습니다. 이어지는 '우리 처음 만난 날'은 처음 만난 날에 대한 그리움에 빗대어 현재의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었죠. 그리고 드디어 '잔혹한 여행'이 들려왔습니다. '사랑의 종말'을 고하는 노래로서 본격적으로 '잔혹한 희정씨'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죠.

주구장창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 이번 공연의 컨셉이었는지 중간중간 어떤 남자(아마도 '잔혹한 희정씨'의 컨셉 속에서 남자 주인공)의 나레이션이 멘트를 대신하고 공연 중간에 스크린이 내려와 또 영상들을 보여주었는데, 제가 오프닝에 예상했던 얼굴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줄리아 로버츠'와 '나탈리 포트만'은 바로 영화 '클로저', '스칼렛 요한슨'과 '페넬로페 크루즈'는 영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한국 개봉 제목 :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주이 디샤넬'은 영화 '500일의 썸머'로 모두 제가 알고 있던 영화들이었죠. 고전영화로 생각되는 영화도 있었는데 '러브 스토리'가 아니었나 합니다.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 그녀가 보여준 독특한 의상 컨셉은 아마 영화 '클로저'에 등장한 '나탈리 포트만'의 컨셉이 아니었을까요?

'오늘만'와 '어느 가을'은 처량한 쓸쓸함으로 이별을 상기시켰고, '브로콜리의 위한 고백'과 '우습지만 믿어야 할'은 시련을 당한 자신에 대한 조소처럼 들려씁니다. '잔혹한 희정씨'로 멘트도 게스트 공연도 없었지만 다행히도 팬서비스는 있었습니다. 바로 그녀의 공연이라면 언제나 기대하게 되는 커버곡이었는데 의외의 커버곡들로 즐겁게 했습니다. 첫 곡은 바로 '2NE1'의 '아파'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의상읜 '2NE1'과도 닮아있었죠. 아이돌의 곡이지만 '잔혹한 희정씨'에서 시련의 당한 여자 주인공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곡이었죠. 두 번째 곡은 무려 'UV'의 '쿨하지 못해 미안해'였습니다. 그녀가 부르니 재밌고 우스웠지만, 진지하 가사를 들여다보면 역시 이별 후의  아쉽고 아픈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커버곡 시간이 끝나고 다시 '잔혹한 희정씨'는 '드라마'로 이어졌습니다.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혹여나 '잔혹한 희정씨'의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의혹이 들었죠. 이어진 곡은 '멜로디로 남아'였습니다. 역시 이별 후의 빈 옆자리에 대한 쓸쓸함을 그려내고 있죠. '잃어버린 날들'은 컨셉에 비추어 볼 때 여자 주인공이 연애 시간을 '잃어버린 날들'로 규정하고, 잔혹하게 변신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녀의 곡들 가운데서도 매서운 쓸쓸함이 느껴지는 '반추'와 '나무'가 이어져서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잔혹한 그녀가 느끼는 통쾌한 복수 후에 찾아오는 허망함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분위기가 반전하여 'Acoustic Breath'가 이어졌죠. 복수 후 역설적으로 목소리를 언제나 들려주겠다고 노래는 그녀는 바로 '넌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마지막 노래는 마지막에 걸맞게 '끝'이었습니다. 비장하고 잔혹한 암시를 내포하는 남자 주인공의 나레이션과 함께 공연의 막은 내렸고, 그녀의 아름다운 연주곡 '연착'은 이번 공연의 엔딩크레딧 곡이었습니다.

스크린이 내린 후 팬들은 응당 '앵콜'을 외쳤지만, 그녀는 '잔혹한 희정씨'라는 이번 공연의 컨셉처럼 팬들의 바람을 잔혹하게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곡을 들려준 공연이었기에 아쉬움은 크지 않았습니다. 잔혹한 희정씨는 남자 주인공을 묻어버리지 않았을까요? 공연 포스터에서 희정씨나 내리치고 있는 기타가 삽이나 곡괭이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너무나 잔혹하지 않나요? 다음에는 잔혹하지 않은, 친절한 희정씨를 만났으면 더욱 좋겠죠?

2010/12/15 02:57 2010/12/15 02:57

Clazziquai project - Pinch Your Soul

2집 'Color Your Soul'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클래지콰이(Clazziquai Project)'의 두 번째 리믹스 앨범 'Pinch Your Soul'.

1집 'Instant Pig'의 리믹스 앨범인 'Zbam'이 팬들을 위한 깜짝 선물같은 느낌이었다면, 2집 'Color Your Soul'에 이어 발매된 'Pinch Your Soul'은 클래지콰이에게 리믹스 앨범이 단순히 정규앨범에 힘입어(묻어가는 성격의) '이벤트성 음반'이 아님을 알리는 동시에 '1 정규앨범 + 1 리믹스 앨범'의 공식을 확립하는 앨범이라고 하겠습니다. 앨범 제목부터가 재밌습니다. 2집 'Color Your Soul'이 우리말로 '너의 영혼을 채색하라' 정도가 된다면, 'Pinch Your Soul'은 '너의 영혼을 꼬집어라'로 익살스러운 느낌을 갖게하면서, 동시에 리믹스 앨범다운 느낌으로 앨범의 성격을 알리고 있습니다.

첫 트랙 "Color Your Soul (Pinch Your Mix)"는 이 앨범의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는 트랙입니다. 시크한 느낌이 강했던 원곡을 '꼬집는' 리믹스를 통해 좀 더 경쾌하고 댄서블하게 바꾸어놨습니다. 불필요한 어깨의 힘을 빼고, 좀 더 즐기도록 말이죠. 이어지는 "Love Mode"는 당시부터 한국 최고의 힙합 그룹으로 떠오른 '에픽하이(Epik High)'의 리더 '타블로'가 참여하여 더 눈길이 가는 트랙입니다. 이 리믹스 앨범을 팔기위한 '상술의 눈초리'는 지울 수 없지만, 분명 팬들에게는 이 앨범을 구입하게 만드는 '킬링트랙'이라고 할 만합니다. 타이틀 곡으로서는 2집보다 나아서, 이 곡을 2집에 수록하여 정규앨범에 더 힘을 실어주어야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Date Line(bon voyage remix)'는 리믹스 앞에 붙은 'bon voyage'의 의미를 알아야 이해할 만한 트랙입니다. 'voyage'는 영어로 '항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bon voyage'는 프랑스어로 '좋은 여행 되세요(Good Journey)'를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원곡이 화창한 날 넓지 않지만 잘 정리된 도로변의 거리를 산보하는 느낌이라면, 리믹스 버전은 voyage가 의미하는 '항해'처럼 뱃놀이하면서 즐거운 여행을 보내는 느낌입니다. 곡 가운데 들리는 프랑스어는 뱃놀이에 '프랑스 어딘가'라는 낭만을 더해줍니다.

이어지는 두 트랙,  "Fill This Night (paradox remix)"와 "Come Alive (distort remix)"는 전자음의 강화가 두드러지지만, 사운드의 밀도와 비트는 '댄서블'하기에는 부족합니다. "I'll give you everything (buoyant remix)"는 '부력이 있는, 경쾌한'을 의미하는 buoyant처럼 반짝반짝한 사운드 때문에 떠오르는 분위기와 켱쾌한 사운드가 매력적인 트랙입니다. 하지만 이 트랙이 더 눈에 띄는 것은 바로,원곡의 보컬과는 다르게 'J(제이)'와 'Booby Kim(바비킴)'이 다시 부르고 있기때문입니다. 여성 보컬리스트로서 가녀린 음색로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는 'J'와, 역시 한국인으로서는 독특한(소울풀한) 음색의 '바비킴', 두 사람의 확연한 음색 대비는 귀를 즐겁게 합니다.

"Speechless (Vanilla soul remix)"는 말랑말랑 전자음들을 통해 '바닐라'처럼 달콤해진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Cry Out Loud (black sunshine remix)"는 노래 속 화자의 기분을 대변하는 듯한 'black sunshine'이라고 명명된 리믹스가 재밌습니다. 강렬한 명암대비가 느껴지는 리믹스 제목처럼, 리믹스로는 특이하게도 원곡보다 전자음을 배제하여 보컬을 더욱 두드러지게 합니다. 음각과 양각으로 흑백의 명암 대비를 통해 표현하는 '판화' 같다고 할까요?  "Chi Chi (original remix)"는 이 앨범까지 클래지콰이의 음악들을 따라왔다면 한 번 즈음은 들었을 법한 멜로디와 전자음들을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마지막 트랙 "이별"은 국악의 연주에 시조같은 가사를 입힌, 이번 앨범의 성격에는 벗어나는 다분히 '보너스 트랙'이라고 생각됩니다.

1집을 생각한다면 무척이나 아쉬운 2집의 리믹스 앨범이기에, 역시 아쉬움은 큽니다. Love Mode나 "I'll give you everything'의 리믹스 트랙이 이 앨범을 지지하고 있지만, 오히려 2집에 실려 정규앨범에 힘을 실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결국 판매량으로 보면 2집이나 이 앨범이나 '공멸'하게 되지 않았나 하네요. 하지만 'Zbam'과 더불어 단지 '보너스 CD'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리믹스 앨범의 위상을 개별적인 앨범으로 높인 점은 높이 살만 합니다.

2010/12/14 02:36 2010/12/14 0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