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 블루 - 4/4 Sentimental Painkiller - 겨울은 봄의 심장

'미스티 블루(Misty Blue)'의 길고 길었던 1년간의 여정,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계절 연작 EP의 네 번째, '4/4 Sentimental Painkiller - 겨울은 봄의 심장'.

우선 긴 여정을 무사히 마친 미스티 블루의 두 사람 '경훈'과 '은수'에게 박수치고 싶습니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작년 초에 계획되었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1년 사계절을 관통하는 음악 작업을 무사히 끝내고 네 장의 EP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으니까요. 이 전대미문의 프로젝트와 함께한 지난 약 1년의 시간 동안 참으로 수고 많았습니다.

지난 세 장의 EP들이 약 3개월의 간격을 두고 발매했던 점을 생각한다면, '4/4 Sentimental Painkiller - 겨울은 봄의 심장(이하 겨울은 봄의 심장, 혹은 겨울 EP)'은 2월 즈음에 발매될 것으로 생각되었으니, 실제 발매된 3월은 이미 봄이어서 늦은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봄을 의식한 듯한 부제 '겨울은 봄의 심장'은 그 '늦음'에 대한 항변으로 보이네요. 사계절 연작의 마지막 EP라는 점 뿐만 아니라 이미 2006년 '4℃ 유리 호수 아래 잠든 꽃'을 통해 겨울의 느낌을 물씬 담아냈던 미스티 블루이기에, '겨울은 봄의 심장'은 더욱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긴 여정의 마지막을 시작하는 인트로 성격의 '봄의 심장'은 마치 카세트테잎을 거꾸로 감아서 재생했을 때 들었을 법한 소리들로 시작됩니다. 가사를 통해 반복되는 'how'는 토로의 어려움을 노래합니다. 곡 전반에 흐르는 무거운 공기는 미스티 블루가 음악으로 참여했던 '베스트극장'의 단막극 '동쪽 마녀의 첫번째 남자' 테마곡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 곡의 앞 부분은 거꾸로 감아서 들어보고 싶어지네요.

'망각 [Oblivate]'는 이 EP가 겨울을 표방하듯, 앞선 '봄의 심장'과 이어지는 지독한 쓸쓸함으로 시작합니다. 만물이 죽음을 맞이하는 겨울의 이미지처럼 '어둠'과 '무덤'이라는 단어는 '기억의 죽음', 즉 제목 그대로 '망각'을 그려냅니다.

보컬 없이 연주만으로 이루어진 밴드 음악들 가운데 일부를 '슈게이징(shoegazing)'이라고 부르는데, 다분히 '슈게이저'라는 제목은 이 슈게이징에서 차용한 'shoegazer'라고 생각되네요. 그렇기에 '슈게이저'는 조근조근 조용한 음악을 들려주는 이 밴드의 이미지가 담겨있는 제목이 아닐까 합니다. 역시 차분하지만 분위기는 한결 가벼워져서 미스티 블루다운 달달한 쓸쓸함을 들려줍니다.

'조와 울'은 텅빈 공간을 부유하는 먼지처럼 공허한 슬픔을 노래합니다. 겨울 EP를 만드는 동안 두 멤버가 얼마나 많은 우울을 겪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행복하니?'라고 묻는 가사와 샘플링하여 수록한 울음소리에서 그 슬픔은 극명해집니다.

'On And On'은 미스티 블루답지 않게도 대부분 영어 가사에 더구나 라킹(Rocking)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어쩌면 슬픔을 넘어선 분노가 이런 사운드로 표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낮잠'은 놀랍게도 미스티 블루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최초로 베이스 '경훈'의 보컬을 들을 수 있는 트랙입니다. 말랑말랑한 멜로디들을 잘도 만들어내는 그의 작곡 능력과는 다르게, 그의 음성은 차운하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마지막 '기억은 겨울보다 차갑다'는 겨울 EP의 타이틀 곡이라고 할 수 있는 트랙입니다. 쓸쓸히, 조근조근 읊조리다가 한 순간에 폭발하는 보컬과 사운드는 어떤 시에서 노래했던 '찬란한 슬픔의 봄'을 연상시킵니다. '너의 심장이 나의 심장에'라고 차마 끝내지 못한 여운은 어떠한 말보다도 더 깊은 슬픔을 담아냅니다. 너의 심장에서 나의 심장으로... 마음과 마음이 끈이 끊이 없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기 힘들기에 쓸쓸합니다.

사계절 연작의 마지막, 겨울 EP를 통해 약 1년에 가까운 미스티 블루의 긴 여정은 막을 내립니다. 만물이 소생하고 활기 넘치는 봄이 아닌, 겨울의 쓸쓸함을 가슴에 담은 슬픔의 봄을 위한 겨울은 역시 미스티 블루다운 해석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안타깝게도 미스티 블루의 마지막 행보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이제 미스티 블루의 음악들은 음반들로 만 들을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겨울 EP가 그렇게도 서럽게 슬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녕, 미스티 블루... 별점은 4개입니다.

2010/06/17 13:07 2010/06/17 13:07

페퍼톤스 (Peppertones) - Sounds Good!

우여곡절의 끝에 발매된 '페퍼톤스(Peppertones)'의 세 번째 정규 앨범 'Sounds Good!'.

데뷔 EP 'A Preview(2004)'로 'the Next Big Thing'이라고 칭송받았던 남성 듀오 '페퍼톤스'는 등장 당시 인디씬에서는 '파격'이라고 할 수 있어습니다. 당시 가요계서도 흔하지 않았던 EP로 등장하였던 점, '객원보컬'을 전격 채용한 점, 뭔가 심오하거나 무게감 있는 음악을 지향하던 많은 인디밴드들과는 다르게 가볍고 말랑말랑한 음악을 들려준 점 등이 그러했죠. EP로 쌓아놓은 큰 기대 속에 발매된  1집 'Colorful Express(2005)'는 기대를 뛰어넘기보다는 '현상유지'에 가까운 앨범이었고, 2집 'New Standard(2008)'는 객원보컬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탈피하여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절반의 성공'에 가까운 앨범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신선했지만 'the Next Big Thing'라는 수식어는 어느덧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걸출한 밴드의 등장으로 페퍼톤스에게는 무색하게 된 2009년의 말미에, 이 남성 듀오는 세 번째 앨범으로 찾아왔습니다.

'Sing!'은 시원하게 질주하는 느낌으로 앨범을 엽니다. 페퍼톤스다운 시원한 상쾌함은 1집의 'Ready, Get set, Go!'를 이어가는 이 트랙에서 새로운 객원보컬 '이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Victory'는 역시 발랄함을 이어갑니다. 2집에서 객원보컬로 합류한 '현민'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곡이죠. 각종 전자음보다는 밴드 연주가 중심이된 평이한 트랙입니다.

2집에서 'Drama', 한 곡에만 객원보컬로 참여함으로서 입지가 확연하게 줄었던 'deb'은 이번 앨범에서도 'Ping-Pong', 이 한 곡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탁구를 소재로 친구들 사이에서 불붙은 '한판 승부'을 노래하는 가사는 치열한 '자전거 경주'로 얼룩진 1집의 'Bike'와도 닮아있습니다. '지금만큼만은 친구든 뭐든 아무 상관없어'라는 가사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승부욕이 느껴지지 않나요?

'공원여행'은 마치 실제로 거리를 걷는듯한 기분을 들게합니다. FPS(1인칭 슈팅 게임)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현민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친절한 안내때문일까요? 묘사적인 전달 때문에, 또 여행을 주제로 했기에, 1집의 'Fake Traveler'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Salary'는 2집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연진'을 다시 만나는 곡입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월급날'의 즐거움을 신나는 탭댄스가 떠오로는 째즈풍으로 그루비한 소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런 그루비함은 지금까지 페퍼톤스의 느낌과는 다른, 색다름으로 다가오네요.

'지금 나의 노래가 들린다면'은 이선이 보컬을 담당한 곡으로 1집의 '세계정복'을 생각나게 합니다. '새벽열차'는 deb과 더불어 EP시절부터 함께해온 정다운 목소리의 주인공 '연희(WestWind)'를 들려줍니다. 이 두 곡에서는 이전 앨범들과는 다른, 3집에서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가사'인데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분명 이전까지는 페퍼톤스에게서 들을 수 없었던 '사랑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하니까요.

이어지는 세 트랙은 페퍼톤스의 두 멤버, '사요'와 '노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트랙들입니다. 2집에서 두 사람을 목소리를 상당히 많이 들을 수 있었지만, 이번 앨범에서 다시 객원보컬들의 비중이 많이 늘어났지만, 두 사람의 보컬에 대한 욕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나봅니다. 사요가 부르는 '작별은 고하며'는 왠지 마지막 트랙이어야할 법한 제목입니다. 노쉘이 부르는 'Knock' 역시 앞선 트랙과 마찬가지로 무난하지만, 평화로운 서정성이 매력적입니다.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 '겨울의 사업가'는 본인들의 꿈을 노래하는 트랙이 아닌가 합니다. 12월에 이 앨범을 발매한 두 사람이 바로 음반구입자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 앞으로도 겨울마다 음반을 내려나요? 하지만 사실 '겨울의 사업가'는 여러모로 Wham의 명곡 'Last Christmas'를 떠오르게 합니다. 남성 2인조라는 점과 겨울 노래라는 점 뿐만 아니라, 곡의 분위기나 사운드, 그리고 튠을 적절히 사용한 보컬까지도 말이죠. 그런 점에서 겨울의 사업가라는 제목은 이 곡이 겨울마다 두 사람에게 돈을 벌어다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제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세 번째 정규앨범인만큼, 사운드의 양적인 면에서는 1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농밀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들이 EP에서 들려주었던 그 재기발랄함에 걸었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페퍼톤스가 걸어온 모습은 조금 아쉽습니다. 사운드의 질적인 면에서는 그 기대를 채워주고 있지 못하니까요. 별점은 3개입니다.

2010/02/20 01:23 2010/02/20 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