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Origins) - 닐 디그래스 타이슨/도널드 골드스미스

'교양과학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리진(Origins)'은 약 10년 전에 한국어판 발매와 직후 사두었는데, 이제서야 제대로 한 번 읽어보았다. 사실 오래전에 도전했다가, 지루함 때문에 책장에 묵혀두었던 책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작년에 NGC 다큐멘터리 '코스모스(Cosmos)'를 본 기억이 나서, 다시 도전해 봤다. 두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바로 '코스모스'의 안내자였기 때문이다.

약 10년이라는 시간만큼 내 독서 스펙트럼도 달라졌을까? 좀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꽤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어린 시절부터 천문학이나 천체물리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사실 그 쪽으로는 '별자리 이야기'나 '그리스/로마 신화' 정도를 빼면 아는 지식이 없었는데, NGC 코스모스와 더불어서 우주에 대한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책이었다. '천체물리학'과 '양자물리학'에 대한, 기초적이고 비교적 최근의 지식들을 접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하지만, 확실히 TV 다큐멘터리보다는 깊이가 있는 책이어서, 인력이나 중력 그리고 원자와 분자 등 기본적인 물리화확적 지식이 없으면 쉽지만은 않은 책이다. 고등학교 때 이과였고, 그리도 물리/화학/지구과학을 열심히 공부했던 '과거의 나'에게 고맙고 뿌듯해지는 경험이었다.

10년 전에 끝까지 읽고 더 나아간 책들을 읽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칼 세이건'의 시대보다 더 나아간 지식을 담은 책이지만, 이 책도 지금으로부터는 '10년이나 지난' 지식들이다. 그 10년 동안 얼마나 더 많은 발견과 지식의 발전이 있었을까? 인간에게 아직도 우주는 무한하고 신비롭고 경외롭다. 아주 작은 지구 위에 사는 아주 작은 인간에는 낯선 세계이지만, '신성'과 '초신성'의 폭발이나 '퀘이사' 같은 천체 현상들이 인간 사회의 현상과 닮아있다는 점이 재밌다.

'기원'을 의미하는 '오리진'이라는 제목처럼, 이미 '빅뱅'으로 잘 알려진 우리 우주의 탄생 과정은 꽤 자세히 알 수 있다. 인류의 기원은 무엇인가? 우주에서 인류와 같은 지적 생명체를 찾을 수 있을까? 이런 근본적이고 영원한 질문들의 해답을 위한 작은 실마리들도 담겨 있다. 하지만 그 답을 찾기까지, 인류에게는 갈 길이 아직도 멀다.

많이 읽을 수록 더 많이 알게 되지만, 그만큼 더 모르는 것과 궁금한 것들이 많아진다. 바로 그 점이 독서에 빠져드는 이유가 아닐까?
2015/02/10 15:22 2015/02/10 15:22

미식과 자본주의

요즘 이 블로그에는 소홀한 편이다. 사실 최근의 관심사는 음악이나 영화가 아니라 바로 '미식'이다. 맛있는 요리를 탐하는 그 '미식'이 맞다. 이 블로그와는 전혀 다른 '미식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어서, 더 그 쪽에 관심이 커졌을 수도 있겠다. '미식'에 관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내 직업도 '지식 노동'이 많은 부분을 포함하는 직업이기 때문일까? 음식의 맛에 눈을 뜨면서, '지식 노동'을 포함해서 '타인의 보이지 않는 노동'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음식점에서 '원가 타령'을 하는 건, 누리고 있는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미식'은 확실히 '자본주의의 꽃'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북(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맛의 사치를 누릴 수 있었을까? 나 역시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은 한정되어 있기에, 가격 대비 성능(맛)을 따진다. 하지만 '미식'에 조금 눈을 뜨면서 무턱대고 '저렴함'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비싼 음식에도 분명 그만한 '이유와 가치'가 있다. 그런 태도를 갖고 나서, 요리를 즐길 줄 아는 심리적 여유가 생겼다.

'미식'이란 단순히 '음식의 맛'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맛 뿐만 아니라, 음식점의 분위기부터 서비스까지 여러 가치들이 '미식'에 포함될 수 있다. 유명한, 그리고 그만큼 가격 수준이 있는 레스토랑들은 확실히 인테리어(실내 장식)에도 꽤 신경을 쓴다. 또, 식기의 선택에서도 특별 제작하거나 유명 작가의 작품을 사용할 정도로 세세하게 신경쓰는 셰프들도 있다. 좋은 식기를 사용할 수록 요리의 꾸밈(데코)에도 공을 들이기에, 그런 셰프의 요리들은 '멋'스럽다. 미식은 비단 '맛' 뿐만 아니라, '멋'도 함께 즐기고 평가하는 행위가 아닐까?

'인테리어'부터 '식기의 선택' 그리고 '조리에 들어가는 정성'까지, '요리'라는 행위에는 '식자재 원가' 외에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들'이 더해진다. 같은 식재료로 만든 요리들도 들어간 정성에 따라 셰프 각자가 가치를 부여하고, 소비자가 선택하는 일은 다분히 '자본주의'적이다. 음식이 원가보다 터무니 없이 비싸고 맛이 없다? 그럼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그 음식점을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정말 그 가치에 비해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면, 결국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도태될 것이다. 비싸지만 인기가 좋은 음식점에는 분명 그 가격에 걸맞는 가치인 '맛과 멋'이라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원가 타령에 물든 사람들에게는 그 가치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유명인이 차린 음식점이 비싸다고 비난할 필요도 없다. 맛이 없고,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면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우리가 정말 비난해야할 점은 공중파를 비롯한 '대중매체'가 음식점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노이즈마케팅에 이용되는 상황이다. '맛'은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이다. '맛의 잣대'에까지 대중매체가 낭비될 필요는 없다. 그런 낭비는 '자본주의의 순수함'을 천박하게 오염시킬 뿐이다.
2015/01/23 16:14 2015/01/23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