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대기(the Martian Chronicles) - 레이 브래드버리

인간의 시야가 '태양계 속 태양과 일부 행성들' 수준에만 머무르던 우주개발시대 이전에, '화성'만큼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천체가 있었을까? 화성은 오래전부터 밤하늘에 빛나는 붉은빛 때문에 '피'와 관련된 신화와 상징들을 만들어냈고, 근대에는 일반인들도 천체 망원경으로 표면을 관찰할 수 있을 정도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상상력을 더욱 자극해왔던 천체이기도 하다.

19세기 말 '허버트 조지 웰스'의 "우주전쟁(1898년)"이라는, '화성'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담은 소설로 화성을 신화 속에서 현실로 가져왔고, SF 장르의 단골 소재로 가져오게 했다. 이후 20세기에는 꽤 많은 작가들의 화성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내놓았다. 2012년에 헐리우드 영화로 국내에 알려진 "존 카터 : 바숨 전쟁의 서막"도 20세기 초에 발표된, 가상의 '화성'을 배경으로 하는 SF 소설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the Martian Chronicles)"도 제목처럼 화성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화성 연대기"는 SF 소설들과는 분명 다르다.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 등의 SF 거장들이 과학과 기술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미래를 정교하게 예측한 편이라면, 레이 브래드버리가 이 작품 속에서 그린 '미래의 모습(작품 속 설정 년도로는 21세기의 현재)'에서는 과학적 고찰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SF보다는 환상문학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일리가 있는 부분이다. '연대기'라는 제목처럼 이 소설은 기승전결로 끝나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느슨한 연관성을 갖는 단편들의 모음집이다. 그리고 '화성'이라는 배경을 지구 위에 있는 '미지의 지역'으로 슬쩍 바꾼다면, '기묘한 이야기'나 '환상특급'에 더 어울릴 만한 단편들이 많다.

사실, 작가는 과학적으로 고뇌보다는 '시대적 비난'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미지의 세계 '화성'을 배경으로 이용해서 현실을 풍자하려 했을 수도 있겠다. "무진기행" 속 가상의 도시 '무진'처럼, 그의 이야기가 펼쳐질 '환상/비현실'과 '현실'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선택된 '화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확실히 '화성 연대기' 속 배경과 이야기들은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화성'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아릅답다. 눈물 겹도록 아름다우면서도 비장한 마지막 단편 "백만 년짜리 소풍"이 가장 먼저 쓰여진, 이 연대기가 쓰여지게 한 계기라는데, '대홍수와 방주' 신화에서 모티프를 얻어으리라 생각되는 이 한 편만으로도 작가의 뛰어난 필력과 함께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경고과 풍자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레이 브래드버리가 약 반 세기 전에 예측한 화성 여행이나 지구의 상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인류는 언제나 그가 예측한 '가장 비참한 결과'에 빠질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과학적 고찰은 허술하지만, 인류와 현실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인식이 그의 작품의 걸작 반열에 올렸다고 본다. '화성 연대기'에 꽤나 연관성을 갖고 있는 그의 다른 대표적들도 궁금해지는, 책 읽기 좋은 봄의 저녁이다.
2015/03/09 18:46 2015/03/09 18:46

9와 숫자들- 보물섬

역시 예상대로 EP '유예' 이후 2년이 지나서야 '9와 숫자들'의 새 앨범이 찾아왔습니다. 2009년에 데뷔앨범이 나왔으니 약 5년만이기도 합니다. 팬으로서 너무나 긴 휴식기는 아쉽지만, 1집과 EP 사이에 복고적 취향에서 짙은 감수성으로의 음악적 변화를 경험했기에, 시간의 간격 동안 또 어떤 음악적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2집 '보물섬'은 1집의 복고풍 그룹사운드의 색채 위에 EP의 강점이었던 '취향 저격' 요소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우선 트랙 제목만 살펴보면, 1집의 재치를 이어나가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2집에서는 유년기의 향수를 일으킬 만한 단어들이 포진해있습니다. '보물섬'은 '소년중앙'과 쌍벽을 이루던 소년잡지를 떠오르게 하고, '숨바꼭질/깍쟁이/초코바/북극성'의 단어들도 그 시절의 소소한 추억들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앨범의 문을 여는 트랙 '보물섬', '실버라인'부터 마지막 '북극성'까지, 꽤 많은 달달한 사랑 노래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보물섬은, 만화 '원피스'가 생각나는 제목이지만, 감정이 절절히 넘실거리는 '2014년의 가장 인상적인 오프닝'이라고 할 만한 트랙입니다. 이어 지는 '실버라인'은 '보물섬'의 감정선을 이어가고, 눈가에 맺힌 아롱아롱 눈물 방울도 같은 아쉬움과 서글픔이 느껴집니다. 차분한 '창세기'는 제목과는 다르게 앨범을 마무리하는 느낌이 강한 잔잔한 트랙이고, 아마도 히든트랙이 되었을 수도 있는 '북극성'은 9와 숫자들다운 차분한 달달함과 여운으로 앨범을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정리해 놓으면, EP처럼 전체적으로 꽤나 서정적인 앨범으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이사이에는 '건빵 속 별사탕'같은 즐거움들이 끼어있습니다. 바로, '깍쟁이'와 '초코바'와 같은 트랙들입니다. '깍쟁이'는 이미 공연에서는 오래전부터 연주했었던 곡으로, 새침한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는 20세기 '틴에이지 로맨스 영화'를 떠오르게 합니다. '깍쟁이 2편' 혹은 '깍쟁이, 그 뒤 이야기'라고 할 만한 '초코바'는 새침함과 경쾌함에 톡톡 튀는 감정까지 더했습니다. 마치 '고고장' 분위기를 떠오르게 하는데, 이 밴드가 큰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면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곡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더불어 뮤지션 9가 이어온 현실에 대한 고찰 또한 놓치지 않고있습니다. 인생에 대해 고찰하게 하는 '높은 마음'과 중의적인 제목으로 '청년실업 문제'를 녹여낸  '잡 투 두'가 그렇습니다.

이 앨범은 유일한 단점이라면 발매까지 무려 2년이 걸렸다는 점입니다. EP 발표 직후, '근의 공식'이라는 제목으로 기획되었지만, 늦어지면서 '보물섬'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연에서 들려준 곡들과 더불어 더불어 컴필레이션 수록곡이나 디지털 싱글 등으로 몇 곡이 미리 발표되어서 이번 앨범에 대한 신선함을 조금은 떨어뜨렸습니다.

다행히도 9와 숫자들은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만회할 만한 앨범으로 찾아왔습니다. 기존 발표곡들을 앨범으로 들을 수 있는 점도 좋고, 신곡들도 뛰어난 완성도를 들려줍니다. 이제는 팬으로서 앨범 한 장으로 '업데이트된 9와 숫자들'을 즐길 수 있는 점이 행복할 따름입니다. 팬들에게는 9와 숫자들만한 '북극성'이 또 있을까요? 별점은 5개입니다.
2015/03/05 18:02 2015/03/05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