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a(심규선) - décalcomanie (2012)

사용자 삽입 이미지

artist : Lucia (심규선)

album : décalcomanie (EP)

disc : 1CD

year : 2012

full-length album 수준의 quality와 quantity를 들려주는 Lucia(심규선)의 첫 EP "décalcomanie".

2011년 debut album부터 매년 착실하게 쌓여가는 'Lucia(심규선)'의 discography를 살펴보면, 2013년으로 이제 11년차에 접어든 indie label 'Pastel Music'의 managemnet system도 확실한 성숙기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singer-songwriter의 역량에 노래/연주/작사/작곡 등 대부분을 의존하는 기존 indie label들의 album production 방식과는 다르게, label의 주도로 유능한 songwriter-producer와 유망한 vocalist의 collaboration으로 시작하여 자연스레 singer-songwriter의 가능성까지 이끌어내는 일련의 방식은, (물론 indie label의 방식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더 오랜 역사의 music business와 더 방대한 market을 대상으로하는 영미권 label에서는 낯선 방법이 아니다. 아마도 국내 indie label 최초의(혹은 아직까지도 유일한) Pastel Music의 시도는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Lucia'를 통해 완성해가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Epitone Project의 2010년 album "유실보관소"에 guest vocal로 참여하여 목소리를 알린 Lucia는, 이듬해인 2011년 Epitone Project가 작/작곡가 겸 producer로 참여하여 두 사람의 chemistry가 돋보인 debut album "자기만의 방"에서 vocalist의 역량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그녀는 vocalist에만 머물지 않고 몇몇 곡의 작사/작곡자에 그녀의 이름을 올리면서 singer-songwriter로서의 가능성도 보였다. 그녀의 가능성을 확인한 Pastel music은 두 번째 full-length album을 서두르기보다는 확실한 singer-songwriter로서의 능력에 담금질을 시작했는데, 그 결과물이 2012년과 2013년에 발표된 두 장의 EP다.

지금 소개하는 EP는 2012년 10월에 발표한 첫 EP "décalcomanie"다. 그런데 수록곡 list를 보면 재미있다. EP 수록곡이 무려 10곡인데, intro나 outro 없이 모두 vocal track으로만 채웠다는 점이다. 최근 수 년동안 가요계를 보면 'full-length album(정규앨범)'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intro/outro를 포함해도 10 track이 안되는 '부실한 음반'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 EP는 그런 세태를 비웃는 듯하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부실한 음반'은 비단 track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total play time이 약 74분인 compact disc의 절반도 채우지 않은 경우들이다.) full-length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volume을 가진 이 음반를 굳이 'EP'로 발표한 이유는, 모든 수록곡들이 바로 주제에 집중해서가 아닐까. 여느 여가수들의 음반처럼 '안빈낙도'나 '심심한 위로'를 전하는 곡으로 track 수를 채울 수도 있겠지만, concept album이라고 분류해도 될 정도로 그녀가 집착한 그 주제는 바로 '사랑'이다. 그리고 이 EP는 Lucia가 '사랑'이라는 물감으로 찍어낸 10가지 "décalcomanie"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concept album 자체가 흔하지 않지만, 최근의 국내 앨범으로는 '호란'의 band 'Idadi'의 "Songs for Ophelia"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최근 수준있게 완성한 singer-songwriter의 앨범을 에둘러 'well-made pop'이라고 부르는데, 굳이 그녀가 쓴 자작곡들의 style을 분류하자면 'adult contemporary(이하 AC)'정도가 될 듯하다. 'AC'도 기본적으로 'verse-chorus structure'로 쓰여지는데, 이 EP의 수록곡들도 style과 structure에서 AC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easy listening이 가능하지만, 나쁘게 해석하면 모든 곡이 비슷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각 곡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구조적 유사성을 극복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하면서도 힘이 담겨 있고, 우아하면서도 간절함이 깃들어 있다. 그녀의 청명한 목소리(음색) 뿐만 아니라 호흡(발성)과 발음까지, 이토록 완벽하게 자신 '발성기관'을 지배하는 vocalist가 indie scene에 있었던가. 그녀는 한 가지 구종으로도 완벽한 control로 mound를 지배하는 pitcher가 되어 listener를 알고도 strike out를 당하는 hitter가 되게 한다. 그만큼 그녀의 음성과 완급조절은 listener가 그녀의 목소리 자체에 오롯이 집중하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음성과 완급조절은 그녀의 써내려간 가사들이 전달하는 의미를 견고하게 한다.

잔잔하고 평온한 호흡으로 간절함을 노래하는, 이 album이 있게 한 '사랑'의 발단, '소중한 사람'을 지나면 전형적인 'verse-chorus structure'로 들려주는 3곡이 이어진다. 'I Can't fly'는 발음과 발음, 단어와 단어에서 들리는 완벽한 완급조절이 돋보이고, 부드러운 음성 속에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그대의 고요'는 그 호소력 덕분에 EP의 title 'Savior'보다 더 title처럼 들린다. 전작의 수록곡 'Sue'의 변주처럼 들리는 'Savior'의 고독함과 간절함은 listener의 감정을 흠뻑 적시기에 충분하다. 이 전형적인 구조는 최근의 노래들보다 2000년 이전의 노래에 가깝게 들리는데, 그래서 이 구조와 다른 무엇보다도 노래를 빛나게 하는 그녀의 '가창력'은, 뛰어난 가창력으로 1990년대 adult contemporary music의 마지막 전성기를 빛낸 Diva들, 'Mariah Carey'와 'Celine Dion'이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또 이는 EP를 AC로 분류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격양된 음성과 빠른 tempo로 사지 말단까지 전해지는 사랑의 기쁨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필로소피'를 지나면 앨범의 후반부에 접어든다. 사실 10 track은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으로 나누어 2장의 disc에 담아 각각 EP로 발매해도 될 volume이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점은 2013년 올해 발표된 두 번째 EP을 생각한다면, 결과적으로 '담금질'의 한 chapter를 온전히 완결하겠다는 의지와 후속 album을 위한 왕성한 창작력 및 결과물들의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Lucia와 '짙은'의 아름다운 harmony가 돋보이는 'What Should I Do'와 날카로우면서도 처연한 비유의 가사가 인상적인 'I Still Love'에서도 곡에 완벽하게 녹아드는 그녀의 음성은 빛난다. 그런데 이 두 곡에서도 1990년대의 익숙한 그림자가 느껴지는데, 바로 'Mr. Big'의 'To Be With You'와 'Richard Marx'의 'Can't Help Falling In Love' 같은 곡들이다. (전작도 그런 점이 옅게 존재했지만) 1990년대 향수를 뜸뿍 느껴지는 점은 Pastel Music이 설정한 Lucia의 소비층이, 일반적인 indie music 소비층인 '20대~30대 초반'보다 높은, 88서울올림픽 이후 급격한 문물개방과 맞물려 1990년대 영미권 Pop Music을 흡수한 '30대~40대 초반이상'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는 1990년 3월에 첫방송을 시작한 '배철수의 음악캠프'세대라고 봐도 되겠다.)

R&B style의 '보통'은 제목과는 다르게, 수록곡 가운데 그녀의 singer-songwriter의 역량이 가장 빛나는 곡이다. midtempo의 rhythm 위로 '사랑의 설램'을 표현해내는 그녀의 음성과 완벽한 완급조절은 listener의 심박동수까지도 synchronization(동기화)되어 황홀경으로 안내하기 충분하다. 특히 그녀의 vocal이 저음의 chorus와 대비되는 부분에서는, 그녀의 목소리를 봄날의 어린아이처럼 들뜬 감정을 아른하게 그려낸다. 처절한 절망과 간절함이 교차하는 감정의 회오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연극이 끝나기 전에'와 마지막 track답게도 공허와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전해지는 '신이 그를 사랑해'로 EP "décalcomanie"는 막을 내린다.

EP 전곡에 걸쳐 piano 및 string을 비롯한 모든 연주가 상당히 제한적으로 절제되어 사용됐는데, 이는 그녀의 vocal을 상대적으로 더욱 부각시켜 listener가 오롯이 그녀의 음성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려는 고민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mixing 및 mastering을 포함한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그 점을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으리라 생각되는데, 이런 노력들 덕분인지 그녀의 음반은 Epitone Project와 함께 audiophile의 사랑을 받는 몇 안되는 indie label의 음반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Pastel music이 설정했으리라 예상되는 소비층의 연령대와 보통 30대 이상인 audiophile들의 연령대가 겹치는 점은 우연만은 아니리라. indie label에서 전혀 indie답지 않은 음악을 들려줘서 일까? audiophile의 우호적인 평가와는 다르게, 전반적으로 Pastel music 소속 artist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가가 박하다는 점은 irony다. 사실 "décalcomanie"라는 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Rorschach test"였다. Pastel music과 Lucia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음반을 "단지 '얼룩'으로 볼 것인가?" 혹은 "의미가 있는 '그림'으로 볼 것인가?"는 이제 listener의 몫이다.

더불어 전도유망한 illustrator 'Kildren'이 artwork 참여한 booklet은 CD 구매자들을 위한, 국내에서 가장 CD packaging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label이라고 할 만한 pastel music의 '심심한 배려'라 하겠다.


*Pastel music은 고음질의 flac을 DVD로 발매해주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more..

2013/05/25 05:38 2013/05/25 05:38

페퍼톤스(Peppertones) - Beginner's Luck

'페퍼톤스(Peppertones)'의 discography에서 전환점이 될 네 번째 정규앨범 "Beginner's Luck".

남성 2인조 밴드 '페퍼톤스'는 2004년 3월 EP "A Preview" 발표하고 'Next Big Thing'으로 큰 기대와 함께 데뷔하였습니다.  2013년, 올해로 데뷔 10년을 채워가는 이 듀오는 지금까지 4장의 정규앨범과 2장의 EP를 발표하였고, 그 기대만큼의 꾸준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소개하려는 앨범은 2012년 4월에 발매된 네 번째 정규앨범 "Beginner's Luck"입니다. 앨범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 밴드의 디스코그라피를 살펴보면 재밌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총 6장의 앨범이 특정한 두 시기에 발매되었다는 점입니다. 첫 EP "A Preview"와 첫 정규앨범 "Colorful Express"가 각각 2003년 3월과 2005년 12월에 발표되었고, 후속 앨범들은 이 두 시기에 번갈아가면 발표되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2집 "New Standard"가 2008년 3월에, 3집 "Sounds Good!"이 2009년 12월에, 4집 "Beginner's Luck"이 2012년 4월,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발매된 두번째 EP "Open Run"이 11월에 발매되어, 3/4월과 11/12월에 번갈아 발매된 점을 확인할 수있습니다. 각각 봄과 겨울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름이나 가을에 녹음을 시작하여, 모든 작업이 순조롭게 끝나면 겨울에 발표되고, 그렇지 않고 미뤄진다면 이듬해 봄에 발표된다고 추측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수록곡 리스트를 살펴보면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페퍼톤스표 음악'의 한 축이었던 '여성 객원보컬'이 참여한 곡이 단지 하나라는 점입니다. 페퍼톤스의 데뷔 당시에 인디밴드로서 과감한 객원보컬의 참여는 분명 신선한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앨범의 숫자가 늘어가면서, 객원보컬의 목소리는 곡에 상큼함을 더해주는 점 외에는 오히려 이 밴드의 정체성과 음악적 발전에 있어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듯합니다.

앨범을 여는 첫곡 'For All Dancers'는 제목처럼 댄서블한 곡입니다. 헐리우드 B급 무술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기합소리로 시작되어, '사용 설명서'같은 나레이션까지 포함하고 있는 이 곡은, 확연히 달라진 페퍼톤스의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이전 발랄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일렉트로닉과 락이 결합된 역동적이고 강렬한 사운드는 앞으로 듣게 될 변화들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앨범 타이틀 '행운을 빌어요'는 기존의 장점과 새로운 변화가 융합된 '새로운 페퍼톤스표 음악'을 들려줍니다. 기존의 대표곡들의 가볍고 경쾌한 연주와는 다르게, 강렬해진 연주와 보컬은 이 밴드가 지향하는 장르적 변화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집까지 이 밴드가 들려주었던 '일렉트로닉 팝'과 '팝락'과는 다른, 견고한 '락'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데 그런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위해 '초심자의 행운'을 뜻하는 앨범 제목을 붙였나봅니다. 어휘에서는 페퍼톤스 고유의 개성이 아직 남아있지만, 가사가 전달하는 메시지에서는 그런 변화는 또렷합니다. 이전까지 '소소한 생활의 즐거운 발견'을 노래하는 곡들이 주류를 이뤘던 점과는 달리, '행운을 빌어요'는 '뜨거운 사랑 노래'라고 할 수있겠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언제나 끝이 있고,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잊고 있었던 진리를 다시 일깨워주는 가사는, 이별을 인종의 인류애로 승화시킵니다.  1집의 'Fake Traveler'나 2집 'New Hippie Generation'처럼 두 멤버가 보컬을 욕심낸 곡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뜨거운 열기가 넘치는 곡은 처음이라고 생각되네요. 따라부르기 어렵지 않은 가사와 흥겨운 멜로디가 주는 강한 호소력은, 수 년 혹은 십수 년 후에도 이 밴드가 왕성하게 활동한다면 이 곡이 콘서트들에서 '절정의 싱얼롱'을 장식하리라 예상하게 합니다.

'러브앤피스'는 제목이 주는 따사로움 만큼이나 자유롭고 평온한 느낌의 곡입니다. 무엇보다도 째즈의 즉흥연주(잼)만큼 자유분방한 느낌의 연주가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그 자유분방함 넘어 복잡한 설계를 생각한다면, 어느때보다도 음향적인 면을 치밀하게 고려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앨범 전반에서 들을 수 있는 견고해진 연주 뿐만 아니라, 과거 앨범들에서 언제나 아쉬웠던 믹싱과 마스터링에서도 확실히 나아진 점들을 느낄수 있습니다. 앞선 '행운을 빌어요'가 '뜨거운 이별 노래'였다면 '러브앤피스'는 '추억에 잠겨 짓게된 옅은 미소'같은 노래라고 하겠습니다. 'Robot'은 제목에서 일렉트로닉 팝정도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차분한 모던락 트랙입니다. 이 앨범에서는 확연하게 이전보다 많아진 사랑 노래들을 들을 수 있는데, 이 트랙도 '로봇'처럼 얼어붙은 마음이 봄바람같은 사랑에 녹아내리는 상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Wish-List'는 두 멤버가 번갈아 나열하는 그들의 '위시리스트'가 인상적인 노래입니다. 곡의 진행이나 유유저적의 가사에서는 2집의 'New Hippie Generation'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곡이 전하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갈망도, '행운을 빌어요'에서도 이야기했던 '인류애'의 연장선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 같은 연주와는 어울리지 않는 제목의 '아시안게임'은 페퍼톤스의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담아낸 트랙입니다. 질주하는 펑크락 사운드의 공격적인 연주와 역시 도발적인 가사는 전혀 다른 밴드의 곡을 듣고 있는 기분이 들게합니다.

지난 앨범에서도 불안했던 두 사람의 보컬은 이번 앨범에서야 '뛰어나지는 않지만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할 수준에 도달했지만, 깊은 울림과 여운을 전하기에는 아직도 부족하게 들립니다. 그 부족함을 누구보다도 잘 인지하고 있는 두 사람이기에, 이 앨범에서 가장 서정적인 곡인 '검은 산'에서 유일하게 '여성 객원보컬'로 여성 듀오 '랄라스윗'의 '김현아'의 목소리를 빌려왔습니다. 가사 속 화자의 나이를 쉽게 가늠하기 어렵게 하는 김현아의 목소리는 '검은 산'이라는 묘한 이미지와 어우러져 애잔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그리움이 가득한 뭍어나는 가사를 읊조리는 김현아의 목소리에서는 단어와 단어에서, 그리고 행간에서도 그 절절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의 울림은 어쩐지 애잔하면서도 공허합니다. '검은 산'이 그대에게 가는 길을 막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장애물처럼 들립니다. 그렇기에 이 곡이 전하는 심상은 너무나도 쓸쓸하고 먹먹합니다.

여름의 바캉스 시즌을 노렸는지, 페퍼톤스답지 않게 노골적인 제목의 'BIKINI'는 제목처럼 '행운을 빌어요'와는 또 다른 의미로 '뜨거운' 트랙입니다. 이 곡에서도 참신한 시도가 녹아있는데, (페퍼톤스가 처음으로 시도한) 오토튠을 적당히 사용한 감각적인 랩과 세련된 연주는 '페퍼톤스가 이토록 트랜디한 락밴드였나?'하는 생각까지 들게합니다. '남녀상열지사'를 노래하는 가사에서 '호기심 가득한 소년의 감성'으로 시작했던 페퍼톤스가 어엿한 '청년 취향'의 밴드로 성장했음을 실감하게 합니다. 놀이기구가 떠오르는 제목의 '바이킹'은 제목처럼 지난 앨범들의 채취가 조금은 남아있는 트랙입니다. 신나는 놀이동산이 떠오르는 제목과 다르게 차분한 어쿠스틱 연주와 경험에서 우러나온 '성숙한 단어 선택(밥솥, 건배)'이 돋보이는 가사는, 추수를 앞둔 가을의 들판처럼 익어가는 페퍼톤스의 음악적 역량을 그려냅니다.

outro를 남겨둔 마지막 곡 '21세기의 어떤 날'은 어려모로 '행운을 빌어요'와 닿아있는 곡입니다. '행운을 빌어요'에서 끝에서 이어지는 새로운 '시작'을 노래했다면, 이 곡에서는 또 다시 '끝'을 노래합니다. '행운을 빌어요'가 전혀  새로운 '음악적 시작'을 하는 밴드 자신에게 행운을 비는 곡이었다면, 이 곡에서는 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더불어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에서 시작되어 21세기 전파를 지구 밖 우주로 쏘는 행동까지, 누군가에게 기억되길 바라는 '인류의 보편적 소망'도 노래합니다.

앨범을 닫는 outro는 'fine'입니다. 잔잔한 올드팝 넘버의 느낌으로 영어 가사를 읊는 보컬과 그런 느낌을 살려주는 연주는 페퍼톤스의 네 번째 앨범도 여기서 끝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영어 가사의 문맥에서는 '좋은'을 의미하는 형용사 'fine'이지만, 마지막 곡의 제목으로만 본다면 악곡의 '끝'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fine'가 될 수 있기에, 'fine'이라는 제목은 다분히 중의적입니다.

앨범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작사/작곡/편곡/연주/보컬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놀라운 음악적 변화와 성숙으로 가득합니다. 이 밴드의 음악을 신선하고 상큼하게 만들었던 장점들을 포기하고, '신재평'과 '이장원' 두 사람의 밴드를 완성하기 위해 선택한 변화는 결과적으로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벗겨도 벗겨도 새로운 껍질을 드러내는 양파처럼, 페퍼톤스는 치기 어린 재기발랄함을 벗고 밴드의 '장수와 번영(live long and prosper)'을 향한 신선한 껍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야 두 사람이 정말로 입고 싶었던 꼭 맞는 옷을 찾나봅니다. 이 앨범이 밴드 '페퍼톤스'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위에 있을 앨범이 되리라고 예상해봅니다. 페퍼톤스, 두 사람의 또 다른 힘찬 걸음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프로젝트 밴드'가 아닌 '진정한 락밴드'로서 '두 번째 데뷔'를 시작한 두 사람에게 "Beginner's Luck"을 기원합니다. 이 앨범은 질리지 않고 꽤나 오래 즐겨 들을 듯합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2013/05/23 00:37 2013/05/23 0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