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발표되었고 2008년 파스텔뮤직을 통해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된 'Ephemera'의 세 번째 앨범 'Monolove'는 앨범의 완성도 면에서 분명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앨범입니다. 더구나 정식발매와 함께 이전 앨범 수록곡들 중 2006년 국내에 소개된 베스트 앨범에 수록되지 못했던 트랙들을 보너스로 포함한 2CD 사양으로 발매되었습니다.
'Ephemera', 사전적 의미는 '하루살이' 혹은 '순식간, 덧없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노르웨이의 여성 삼인조 밴드는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입니다. 혹시 몇몇 CF에 삽입된 그녀들의 음악을 들려준다면 조금은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기작품 '상실의 시대'의 원래 제목이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노르웨이는 여전히 우리에게는 너무나 먼 나라입니다.
실로폰 소리로 시작되는 'Chaos'는 다양한 소리들을 들려주어 제목처럼 혼란스러운 작은 마녀들의 실험실을 연상시킵니다. 이어지는 'On the surface'는 결국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에 대한 아쉬움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후회가 담겨있지만 서글프지는 않습니다. 'City light'는 제목처럼 도시의 밤거리를 연상시킵니다. 붉은 신호등은 초록 신호등으로 바뀌고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이 지나갑니다. 도시의 불빛 아래서 쓸쓸해 보이는 그녀의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Leave it at that'은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 소녀를 연상시키는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정적으로 가득한 카페를 소란스럽게 혹은 즐겁게 뒤집어놓으려는 야심이 느껴진달까요. 'Thank you'는 자신을 강하게 만들고 인도해주는 지난 사랑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왠지 서글픈 현악 연주와 더불어 'You left your footprints in the snow'라는 구절이 가슴에 절절히 닿습니다.
자신을 위해 웃어달라고 노래하는 'Put-om-smile'과 용기를 북돋는 조언같은 'Dos and don'ts'를 지나면 신나고 힘찬 발걸음같은 'Paint your sky'가 귀를 즐겁게 합니다. 역시 좌절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될 기사를 들려줍니다.
박수소리와 우쿨레레가 흥겨운 'Dead against plan'에 이어 이 앨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Monolove'가 흐릅니다. monolove라는 단어는 사전에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monologue가 독백을 의미하듯 mono가 '홀로, 혼자'를 의미하기에 '혼자하는 사랑', '짝사랑'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고통과 아름다움, 좋음과 나쁨같은 사랑의 모순된 감정들을 노래하는 가사에 공감합니다.
마지막 세 트랙은 '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트랙들입니다. 'Call me home'은 바람들이 주문처럼 들리는 곡이고, 'End'는 사랑의 끝에서도 그대를 믿는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곡입니다. 'like a tongue stuck on a frozen iron bar'같은 가사는 생활의 발견이라고 할 만큼 공감이 갑니다. 철막대기는 아니더라도 여름날 아주 차가운 하드바에 혀가 붙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식하지 않을까요? 그대와 함께 '영원한 끝(forever end)'을 바라는 마음은 처절하게 다가옵니다. 마지막 'long'은 사랑에 대한 강렬한 갈망을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밴드의 이름처럼 한순간 덧없이 지나가겠지만, 그럼에도 소중하고 공감할 만한 '소녀적 감수성'을 들려주는 앨범 'Monolove', 수록곡 한 곡 한 곡이 유리병에 든 형형색색 여러가지 맛의 알사탕만큼 달콤하고 소중합니다. 더불어 앨범 소장가치를 높여주는 보너스 CD에 수록된 곡들도 Ephemera답게 흥미롭고 소소한 소리들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시련을 당한 친구에게 진실된 위로를 노래하는 'Air'는 강력 추천 트랙입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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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hemera - Mono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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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 - Lightgoldenrodyellow
오랜 기다림 후의 결실, '해오'의 데뷔앨범 'Lightgoldenrodyellow'.
'데뷔앨범'이지만 사실 '해오'는 '중고신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올드피쉬'(현재는 Soda 혼자 활동 중인)의 초창기 멤버로 올드피쉬가 가장 좋았던 시기의 음반들, EP '1-3(2004)'과 1집 'Room. Ing(2005)'에 참여하였습니다. 올드피쉬의 1집 제작을 끝으로 해체하였고 소식을 들을 수 없다가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지금은 사라진 '밀림닷컴'에서 '옐로우 마요네즈(yellow mayonaise)'라는 이름으로 올린 데모곡을 통해서 였습니다. 음반을 제작해도 될 정도로 많은 곡들이 올라와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결국 음반으로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2009년 '해오'라는 낯선 이름의 뮤지션을 온라인 음반샵을 통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수록곡 리스트를 보니 눈에 익은 제목이었습니다. '바다로 간 금붕어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 제목은 밀림닷컴에 올라왔던 데모곡과 동일한 제목으로 그 독특함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본명이 '허준혁'인 '해오'는 아마도 성씨 '허'를 영어로 'Heo'로 표기하고 그 발음이 '해오'일 수 있기에, 지금의 '해오'라는 별명을 쓰지 않나 추측해봅니다.
앨범 'Lightgoldenrodyellow'의 첫인상은 역시 '시티팝'입니다. 쓸쓸한 도시인의 감성이 절절히 담겨있다고 할까요? 길고 톡특한 제목의 첫 곡 '바다로 간 금붕어는 돌아오지 않았다'에서부터 그러한 감성은 뚜렷합니다. 특별한 클라이막스 없이 슬로우 템포로 흘러가는 잔잔함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깜빡이며 점멸하는 가로등처럼 편안합니다. 제목은 일탈을 꿈꾸는 도시인의 허황된 꿈이야기 같습니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하듯, 금붕어는 민물고기로 바다를 꿈꾼다고 하여도 바다에서는 살 수 없습니다. 문명 속에서 지친 도시인이지만 도시라는 문명을 벗어나서는 결코 살 수 없습니다. 바다로간 금붕어는 어떻게 되었길레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요? 혹시나 죽지않고 용궁에서 용왕을 만나 호사를 누리고 있을까요? 일장춘몽(一場春夢)만 같습니다.
기계음처럼 변형된 목소리의 울림이 인상적인 'UFO'에서도 그런 일탈의 꿈은 계속됩니다. 결코 만날 수 없을 UFO가 그 덧없음을 이미 단정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가사 '나 여기 있어'에서 그 만큼의 간절함이 밝은 후광에 휩쌓인 뚜렷한 형체처럼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다가옵니다.
한 번 즈음은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법한 제목의 '오후 4시의 이별'은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의 수필같은 곡입니다. 익숙함의 상실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익숙함이 사라진 시간 또한 어쩐지 익숙합니다. 사랑도 이별도, 도시인에게는 모두 고독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도시인이라는 가면을 쓰고 하는 사랑은 '고독의 출구'가 아닌 '고독으로의 입구'이고, 이별은 그 가면을 벗고 익숙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도시의 고독이란 들판을 버리고 도시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원죄일까요?
'작은 새'는 시종일관 무거운 평정을 유지하는 이 앨범에서 몇 안되는 밝은 분위기의 트랙입니다.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라고, 사랑 이야기로서는 용기 없는 우회적인 고백입니다. 새의 날개를 빌어 꿈은 계속됩니다. 하지만 '작은 새'로 한정지음으로써 현실에도 타협하는 느낌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작은 존재일뿐이니까요.
담담한 이별을 노래하는 '작별'은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심상이 담겨 있는 트랙입니다. 맑은 날 해질 무렵의 공기처럼 알 수 없는 그리움은 노을처럼 붉게 물들어갑니다. '비'에는 애써 쿨한 척하는 모습이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La Bas'는 프랑스어로 '그곳으로'라는 뜻으로, 프랑스어 제목은 익숙한 현실에서 이방인이 된듯한 낯선 기분을 표현한다고 생각됩니다. '기차 기나던 육교'는 한 편의 그림일기같은 트랙입니다. '건네지 못한 이야기'은 '작은 새'에 이어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트랙입니다. 긴 기다림의 끝에서 만나는 기쁨의 순간들은 기다림의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눈 덮인 밤'은 보사노바 뮤지션 '소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트랙입니다. 고요한 밤 소복히 내리는 눈처럼 피아노 연주는 은은합니다. 해오와 소히, 두 사람의 화음은 잊혀진 이야기들을 떠오르게할 것만 같은 그리움을 담고 있습니다. 조용하고 잔잔한 곡이지만 가사를 살펴보면, 죽어서 나무가 되고 그리움이 되는 상당히 슬픈 이야기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과 그리움이 만나 노래가 됩니다.
'내 작은 방' 역시 그리움을 노래합니다.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하던 잔잔함은 현악과 합세하면서 절정에 이르고, 그리움은 단순히 방구석의 지질한 감정이 아닌,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추억의 향연이 됩니다. '푸른 밤, 푸른 잠'은 시티팝다운 마지막 보컬 트랙입니다. 도시인의 하루를 마감하는 밤과 잠이지만 꿈을 통한 또 다른 일탈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소박한 사치인 꿈을 통해서라도 도시인이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연주 트랙 '눈 내리다'는 올드피쉬의 EP '1-3'에 히든 트랙으로도 실렸던 곡입니다. '눈 덮인 밤'의 intro로 쓰였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총 13트랙으로 55분에 이를 정도로 짧지 않은 앨범이지만, 한 번 듣기 시작하면 건너뛰는 트랙없이 끝까지 듣게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아마도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일관성과 탄탄한 완성도에서 그런 매력이 나오지 않나 합니다. 화려하지 않고 오히려 기운 없는 해오의 보컬은 일상에 지친 도시인으로서의 공감대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는 도시인의 꿈과 고독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가슴 한 구석에 잔잔한 공명이 됩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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