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 Mon Amoureux'는 우리말로 '사랑의 단상'으로 번역되는데, 프랑스 작가 '롤랑 바르트'의 작품과 같은 제목입니다. 이 앨범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에 소개된 음반은 딱 세 장인데 그럼 한 장은 아직 소개가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된 'note of dawn + avant la pluie'가 우리나라에는 특별히 'note of dawn'과 'avant la pluie'의 합본으로 발매되었기 때문이죠.
연주와 프로그래밍을 담당하는 'Toshiya'와 보컬을 담당하는 'Junko'의 '사랑의 단상'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이 앨범에는 8곡을 수록하며, 사랑에 대한 일련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희미해져가는 기억의 터널 끝자락에서, 기억을 더듬어 되돌아가며 시작됩니다.
'Tunnel'은, 터널의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달려가는 물체를 볼 때의 모습에서 착상한 곡으로, 희미한 점이 되어 빛 무리 속으로 사라져가는 사랑을 노래합니다. 조금은 쓸쓸한 분위기의 가사인데, 곡은 희망차고 밝은 느낌이네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기에 나쁜 기억은 돌이킬 수 없는 망각으로 천천히 흐려지고, 또 인간은 '추억의 동물'이기에 좋은 기억만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나 봅니다.
'Sous Les Branches'은 먼 기억이 되기 전 사랑의 끝자락을 잡은, '기다림'을 노래합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슬프지만, 눈물을 머금은 미소처럼 영롱합니다. 은은하게 울리는 벨은 그 끝에 걸린 눈물 방울의 쓸쓸한 떨림만 같습니다.
'Voile De Larmes'은 '눈물의 면사포'라는 의미로, 사랑의 한 종착역(혹은 반환점)을 이용해 다른 종착역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면사포'라는 큰 반환점 앞에 '눈물'을 붙여 전혀 다른 반환점인 '이별'을 의미할 테니까요. 새로운 아침이지만 싸늘한 기운이 느껴질 뿐입니다. 그 순간에는 하루 하루가 또 다른 시련을 의미할까요?
'En Chantant'은 -어린 시절 연주해보았을 법한- 담백한 피아노 연주가 인상적으로, '기쁨의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지금의 기쁨이 아닌, 어린 시절을 생각하게 하는 피아노 연주처럼, 지난 기쁨의 끝자락 같습니다. 간간이 들리는 종소리와 에그쉐이크가 그 기쁜 시절에 푸근함을 양념합니다.
'Nuage'는 '구름'을 의미하는데, 제법 친근하며 낭만적인 제목이지만, 그 속을 알 수 없고 또 구속 없이 유유히 흐르는 '사람의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완전히 알 수 없고 또 완전히 구속할 수 없기에 두 사람에겐 오해와 갈등이 생기나 봅니다. 두 사람의 구름은 어디로 향해 흐르나요? 새침한 Junko의 보컬과 보사노바의 리듬은, 우리를 분위기있는 파리의 어느 멋진 바로 옮겨놓고, 어느듯 Modialito가 들려주는 French Pop의 세계로 빠져들게 합니다.
'Brouillard Mouvant'는 '움직이는 안개'라는 뜻으로 세련되고 도시적인 느낌의 곡입니다. 안개처럼 흩어지는 인연에 대해 노래하는데, 쓸쓸하지만 슬프기보다는 도도한 느낌입니다. 프랑스어로 부르던 노래의 마지막 소절의 영어 가사 'You fade, fade and fade'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네요. 또각거리는 당당한 걸음으로 도시의 안갯속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처럼 말이죠. 그리고 이 곡 즈음에서 한 순간 한 순간 거슬러가던 흐름은 제자리를 맴돌기 시작는 느낌입니다.
'Mes Cheveux', '나의 머리카락'이라는 제목인데 오히려 안개같은 곡입니다. 슬프면서도 가라앉는 느낌의 보컬과 흩어지는 코러스가 그렇고 단조롭고 쓸쓸한 기타 연주도 그렇습니다. 붉게 펼쳐진 저녁 노을 아래로 아스라이 흩어지는 물안개 같은 덧없음을 노래하는 듯만 합니다. 가사는 묶인 머리카락이 풀리는 모습에 비유해여 인연이 멀어짐을 노래합니다.
'Notre Histo'는 '우리의 이야기'로 첫 번째 앨범에 수록되었던 'Notre ?chec(우리의 실패)'가 떠오르는 제목입니다. 하지만 제목처럼 두 사람의 이야기가 쓰여진 '가장 찬란했던 시간'보다는, 그 시간이 허망하게 사라지던 순간에 초점은 맞줘져 있네요.
앨범 'Mondialito'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번 앨범에서도 발전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Junko의 보컬은 더욱 발젼하여 감성 표현력은 발전했고, 곡 한 곡에서 그 목소리가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습니다. 더욱 세련되고 멋진 사운드를 들려주는 점도 물론이구요. 처음에는 낯설었던 느낌은 들으면 들을 수록 빠져들게 됩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가사를 살펴보면 슬픈 감정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곡은 가사만큼 쓸쓸하거나 서글프지 않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눈물을 머금은 미소'같다고 할까요? 그 점이 French Pop의 매력일까?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어떤 글이 생각났습니다.
안녕, 언젠가
인간은 늘 안녕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하는 거야
고독이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친구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
사랑 앞에서 몸을 떨기 전에, 우산을 사야 해
아무리 뜨거운 사랑 앞이라도 행복을 믿어서는 안 돼
죽을 만큼 사랑해도 절대로 너무 사랑한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사랑이란 계절과도 같은 것
그냥 찾아와서 인생을 지겹지 않게 치장할 뿐인 것
사랑이라고 부르는 순간, 스르르 녹아버리는 얼음 조각
안녕, 언젠가
영원한 행복이 없듯이
영원한 불행도 없는 거야
언젠가 안녕이 찾아오고, 또 언젠가 만남이 찾아오느니
인간은 죽을 때,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 거야
난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바로 Mondialito와 같은 일본인 작가 '츠지 히토나리'의 글입니다. 이별이 찾아오겠지만 그럼에서도 사랑한 기억만을 간직하고 싶다는 이글의 심상은, 이별에도 아름다웠던 순간을 놓치않는 '사랑의 단상'들과 닮지 않았나요? Mondialito의 '사랑의 단상'은 여기서 끝이지만, 여러분의 과거의 이야기였거나 혹은 미래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끝나지 않은, 끝나지 않을 '사랑의 단상' 별점은 4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