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thirst) - 2009.04.30.

10년 만에 완성된 박찬욱 감독 숙원(?)의 작품 '박쥐 (thirst)'.

한국영화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 '뱀파이어'를 소재로한 '박쥐', 제 관점에서는 'B급 판타지 로맨스물'이라고 하고 싶네요. 대부분 평생 독신으로 사는 남자 수도사에게 발생하고 흑인에게는 발병하지 않는 EV(이브) 바이러스의 특성은 크리스트교를 은근히 풍자하고 있습니다. 평생 신을 섬기는 독신의 남자(아담)들에게 잘 발병하는 EV(이브)는 언어유희에 가깝습니다.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크리스트교와 관련된 성화(聖畵)들이 모두 백인들만 등자하는 점도 비꼬고 있는 듯합니다. 이 외에도 뱀파이어가 되길 갈구하는 노신부(박인환)의 모습도 그렇구요. 하지만 종교에 대한 풍자의 수위는 강하지 않습니다. 사실 영화에서 풍자하는 모든 대상들에 대한 풍자의 강도는 상당히 약한 편입니다.

'전 이제 모든 갈망을 갈구합니다.'

인간도 짐승도 될 수 없는 뱀파이어의 모습을 대변하는 의미에서 '박쥐'라는 제목을 선택하였나 봅니다. 이 영화가 공포나 액션물이었다면 적절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영어 제목인 'thirst'에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우리말로 '갈망'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뱀파이어로서 '피'에 대한 갈망과 사람으로서 '육체'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갈망들은 결국 '사랑'으로 귀결되구요. 그리고 '피'와 '사랑' 두 갈망이 만나면서 두 주인공 사이의 틈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하여 애증이 교차하는 비극적 로맨스가 완성되지요.

마지막에 '태주'가 '상현'의 헌 구두를 다시 꺼내어 신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점점 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지만, 태주가 마지막까지 그 구두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은 놀라웠습니다. 아마도 서로를 가장 사랑했던 순간에 대한 증거의 의미였을까요?

송강호의 성기 노출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만, 반드시 필요했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김옥빈의 탐욕스러운 연기도 좋았고, 용감한 노출도 대단했습니다. 조영욱 음악감독과 류성희 미술감독에 대한 언급이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을 듯하네요. 역시 박찬욱, 별점은 4.5개입니다.
2009/05/02 18:37 2009/05/02 18:37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 2008.7.25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 최고의 주연급 배우를 세 명을 '쓰리톱'으로 내세운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반칙왕', '장화, 홍련'과 '달콤한 인생' 등 각기 다른 장르의 영화들을 멋지게 소화해낸 '김지운' 감독의 작품이기에, 또 칸에서 극찬과 일명 '김치 웨스턴'을 만들어냈다기에 이 영화에 대한 기대는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라는 '꿈의 캐스팅'에 가까운 라인업에 그 기대는 배가 되었구요.

결론적으로 메시지는 크지 않았지만, 충분히 눈을 즐겁게 하고 즐길 만한 영화가 탄생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관객에서 역사의식을 묻지 않는, 어깨에 힘을 빼고 볼 수 있는 오락영화 말이죠.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괴물' 등이 한국 역사의 특수성을 매우 적절히 이용한 작품들이 었지만, 이 영화에서 그 역사는 그저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세계인이 즐길 만한 오락영화를 이제 우리도 만들 수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하지만 캐릭터들은 좀 아쉽습니다. '정우성'은 멋진 와이어 액션과 마상 전투를 모여주었지만 액션 외에 캐릭터는 무게감은 좀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이병헌'은 대단한 녀석처럼 나오지만 영화 속에서 그의 활약은 조무래기들을 상대로 한 것들 뿐입니다. 세 남자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단서 중 하나인, 일명 '손가락 귀신'의 과거 행적들이 좀 더 자세히 보여졌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별점은 4개 입니다.

2008/08/09 19:46 2008/08/09 19:46

괴물 - 2006. 7. 28.

지난번 극장 갔던 일이 벌써 한 달도 넘은 일이군요. 오랜만에 간 용산 CGV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을 보았습니다. 수요일과 목요일 관객이 합쳐 60만이 넘었다고 하던데 제가 금요일 저녁시간에 보았으니 한 100만 좀 넘은 순위였을까요?

"스스로를 구원하라."

영화 괴물, 한 마디로 '무규칙 가족 액션 영화'라고 하고 싶습니다. 괴수와 사투를 다룬 '액션 영화'이자, 한 가족과 그 가족을 압도하는 사회와의 충돌을 다룬 '스릴러 영화'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족의 비극적인 모습을 그려 가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우는 '가족 영화'이기도 합니다.

매점을 운영하는 아버지(변희봉), 정신질환을 앓았었던 큰 아들(송강호), 운동권이었고 무능한 작은 아들(박해일), 양궁 기대주 막내딸(배두나)과 큰 아들이 사고로 갖게 된 손녀(고아성)의 가족 구성도 비범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면 진행상 괴물과 상대하기 위한 가족 구성이라고 할 수 도 있지만, 소위 '남성 상위 사회'에서 '남녀 평등 사회'로 넘어가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가족 구성입니다. 은퇴를 할 나이까지 가족의 경제적 기둥의 역할을 하는 아버지와 무능한 두 아들들의 모습에서 세대가 갈수록 작아지는 '남성과 아버지의 입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반면 현재 '가족의 자랑거리'라고 할 수있는 양궁 기대주인 막내딸과 가족 구성원 사이의 유대관계조차 엉망인 '오합지졸의 가족'이지만 그런 가족 모두의 '꿈과 희망'인 손녀의 모습은 현재 한국의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새로운 여성성에 대한 기대'라고 생각됩니다.

영화 초반부에 보여지는 무책임한 미군, 무능한 정부, 무지한 언론의 모습은 현 한국의 상황에 대한 냉소라고 생각됩니다. '반미'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현 미국의 폭압에 대한 풍자라는 느낌이 더 강하고, '반정부'도 '친정부'도 아닌, 오히려 '무정부주의'가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개인과 '나'보다는 '우리집', '우리식구' 등 '우리'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땔래야 땔 수 없는 '개인의 확장'인 가족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정작 가장 필요한 상황에서 구실을 못하는 '정부'나 그 정부에 반대하는 '이념'이나 '집단'이 아닌, 개인과 가족의 피눈물나는 희생과 노력 뿐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괴물'의 의미도 되세겨 볼만 합니다. 천 만 인구의 '삶의 원천' 겸 '배설구'이자 '휴식처' 겸 '자연 재난'일 수도 있는 '한강'에 나타난 '괴물'은 단순히 포악한 한 생명체가 아닌 한강을 삶의 기반으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경험한 '한민족 원념의 집합체'이자 '자연의 경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구나 많은 비로 수해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자연의 경고'가 강하게 와닿습니다.

결말이 약하다는 논란이 있는데, 그렇다면 묻고 싶습니다. '그런 당신은 괴물에 맨몸으로 매달려 사투를 벌이다 마지막에 괴물 아가리에 수류탄 까놓고 멋지게 전 국민적 영웅이되는 액션 영화를 바랬는가?'라고... 그것은 한국 영화가 지향해야 할 점도 관객들이 바래야 할 점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영화가 경쟁력을 갖고 위해서는 헐리우드의 단순한 모방이 아닌, 보편적으로 인류가 공감할 만한 '한국적인 점'을 가미하고 승화시켜야 할 것이고, 정말 '괴물'이 헐리우드 영화의 아류가 되었다면 논란은 비난이 되었을 것입니다.

요즘 많은 한국 영화들이 배우들의 연기력에는 흠 잡을 틈이 없고 영화 '괴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영화계 최고의 흥행 메이커 중 한명인 '송강호'가 있지만, 영화 속에서 비중은 크게 편중되지 않고 변희봉, 송강호, 박해일에게 고루 분포하는 느낌입니다. 배두나도 작은 편은 아니지만 등장시간 때문에 조금은 비중이 작은 느낌입니다. 이점에서 한국 사회는 아직은 '남성 우위'라고 확대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괴물 사냥에서 '가장 인상적인 한방'을 날리는 사람이 배두나이기에 그런 확대 해석은 위험합니다.

괴물의 CG가 좀 아쉽기도, '물리적'으로 좀 아쉬운 장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쉬어가는 틈 없는, 2006년 하반기 최고 기대작이자 올 최고 영화가 될 만한 영화 '괴물' 별점은 5개입니다.

*영화 중에 등장하는 소품, 오징어와 꼴뚜기. 오징어, 꼴뚜기, 그리고 괴물 이 땔 수 없는 상관관계 때문에 오징어를 당분간 못 드시는 분이 생길지도...
2006/07/29 08:42 2006/07/29 0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