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신 - 세븐틴

오래전에 읽었는데, 최근 '황경신'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고하여 뒤늦게 쓰는 '세븐틴'의 독후감.

월간지 '페이퍼'에 연재된 글들을 모아서 출간한 소설인데, 나는 마침 페이퍼에 실린 '사랑받지 않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라는 제목을 글을 인상깊게 읽었었고, 이후 그 글이 이 소설 '세븐틴'에 실렸다고 알게 되어 읽게 되었다. 다만 페이퍼에 실린 단편들을 모아놓은 소설집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페이퍼에 연재된 글을 모아서 완성한 '한 편의 소설'이라는 점은 알지 못했다.

'니나'와 '시에나', 10세 이상 차이나는 두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소설은 두 여자 주변의 남자들 '제이', '대니', 그리고 '비오'가 등장하면서 서로 얽히고 섥혀있는 관계도를 그려나간다. 어떻게 그런 우연과 기연이 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섯 사람의 관계는 복잡한데,그들의 관계구도보다 흥미로운 점은 각 장(소설 속에서는 니나와 시에나의 피아노 레슨에 빗대어 Lesson이라고 표기한다)이 클래식 음악과 관련되어 풀어나간다는 점이다.

니나와 시에나는 피아노 레슨을 통해 만났고, 시에나와 비오가 바이올린으로 연결되어있고, 시에나가 실력있는 피아니스트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이유도 있겠다. 물론 황경신 작가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까지 중고등학교 시절에 음악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던던 클래식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점은 흥미롭다. 차이코프스키 죽음의 비화라던지, 베토벤이 청력을 잃은 이유, 베토벤이 되고 싶었던 슈베르트 등 '클래식'하면 모두 알만한 유명 작곡가들이 이야기부터, 나와 같은 클래식 문외한이라면 한 번 정도 들어보았을 유명 연주자들인 '하이페츠'나 '글렌 굴드'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그런 이름들은 궁금즘을 불러일으켜 그들의 음반들 찾아보게 만드니,   클래식 견문을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는 책이라고나 할까?

남자 독자로서 솔직히 시에나의 사랑 이야기를 이해하기는 쉽지않고, 그만큼 책장을 넘기기도 쉽지는 않았다. 이해하기 힘든 어른들이 사랑이야기, 어른이 되어가는 17세의 니나와 어른이 되었지만 혼란스러운 30대의 시에나가 풀어나가는 '세븐틴'은 살면서 겪는 일련의 연애 이야기들을 함축한 축소판일지도 모르겠다.
2010/12/13 12:17 2010/12/13 12:17

황경신 - 그림같은 신화

작가 황경신이 쓴 그림으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 '그림같은 신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꾼은 작가 이윤기일 것이다. 해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고전으로 생각되는 '토마스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은 번역자이기도 한 이윤기는, '신화를 읽는 12가지 열쇠'라는 주제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를 4권까지 펴내기도 했죠. 조금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에세이 형식의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쓰기도 했죠.

'페이퍼'로 유명한 작가 '황경신'이 바로 이 신화에 도전했습니다. 그냥 신화가 아니고 '그림에 깃든 신화의 꿈'이라는 주제로 말이죠. 하지만 그림 작품에 촛점을 맞추지 않고, 화가들의 단골 주제가 되는 신화 속의 인상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사건에 관련된 그림들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에로스와 프시케'라던지, '비너스의 탄생', '피그말리온'같이 신화에 관심있는 이야기라면 모를 수 없는 이야기죠. 그 '모를 수 없다'는 단서 때문에 신화 서적을 몇권 읽은 사람들에게는 신선함은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전문적인 신화 이야기뿐 이윤기와는 다르게, 이야기 자체의 전달 보다는 주인공들의 감정이나 작가의 느낌들을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신화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 하는 접근이기에, 어떤 점에서는 신화를 전혀 모르는 문외한들에게는 더 어려운 접근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사건 속의 조연이나 그림을 그린 작가에도 시선을 주어, 단순히 신화에 국한 되지 않고 작품과 작가에까지 알 수 있는, 서양 문화를 이해하는 두가지 코드인 '그리스 로마 신화'와 '크리스트교' 가운데 전자를 폭넓게 이해하는 썩 괜찮은 교양서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조금은 짙게 느껴지는, 작가의 페미니즘적인 성향이 싫지 않다면, '페이퍼'에 실린 그녀의 글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선물이 되겠습니다.(사실 이런 점에서 신화에 대한 지식이 많이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랑, 욕망, 슬픔, 외로움이라는 주제로 각각 네 가지 이야기씩 총 16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신화적 지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법도 합니다. 하지만 유명한 명화에 대한 안목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지식을 얻고 교양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은 변함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비너스의 탄생'이 가장 인상적이더군요. 비너스(아프로디테)는 바로 사랑의 여신으로 물거품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도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밖에 없다죠. 신화 속에 녹아있는 옛사람들의 삷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재미와 더불어 신화를 읽는 가치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 통찰력은 보편적인 것이기에 모든 인류의 공통적인 문화 유산이구요.

2009/07/27 11:17 2009/07/27 11:17

티파니에서 아침을

그대가 내게 오지 않으시니
난 다른 사랑에 빠지겠어요
꿈결처럼 그대를 잊고 날아가겠어요
날아가다 뭔가가 눈에 들어오면
그것으로 또 그대 생각을 하게 될 테니
눈을 감고 날아가겠어요

그럼 난 하늘도 바다도 나무도 풀도 볼 수 없을 테니
빨간 벽돌로 만든 담도 단단한 콘크리트 건물도 볼 수 없을 테니
언젠가 어딘가에 부딪혀 떨어지겠죠
하얀 날개에 선홍색 피가 흐르면
난 날개를 다쳤으니 더 이상 날아갈 수가 없어, 하고
그대에게 돌아갈 이유를 만들겠죠

그대가 내 마음을 가져가시니
난 다른 꿈을 꾸겠어요
둥글고 커다란 유리볼에 치커리와 브로콜리를 넣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과 포도로 만든 비니거를 뿌려
티파니로 가겠어요
차가운 유리벽 너머로 반짝이는 블루 사파이어를 보며
초록색 샐러드를 먹으며
그대를 까맣게 잊겠어요

그럼 난 그 눈도 입술도 손가락도 다 잊을 테니
그렇게 간절하던 맹세의 말도 다 잊을 테니
언젠가 어디선가 그대 다시 만나도
그대인 줄 모르고 스쳐지나가겠죠
그렇게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 다른 사람으로 다르게 만나면
그대와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질 수 있겠죠

그대가 나를 버리시니
난 영원을 약속하겠어요
변하고 변하고 변하여
완전한 무(無)가 되어
그대 마음에 그림자 하나 드리우지 않겠어요

그럼 난 그대에게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가 될 테니
그대에게 영영 잊혀지지도 않겠죠


황경신, '티파니에서 아침을'(황경신의 한뼘스토리 '초콜릿 우체국' 中)
2009/04/06 00:53 2009/04/06 00:53

새장과 새

"오래 전부터 프레베르의 그 시를 좋아했지만
전 늘 제가 새장을 그리고 새를 기다리는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사랑의 주체가 나 자신이고, 그것이 잘못되는 것은 나의 잘못이라고.
하지만 저도 누군가에게 새가 되기도 했겠죠.
가둬두고 싶지만 가둘 수 없는, 오래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않는.
이제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나이가 된 걸까요.

지금은요, 수백 장의 새장을 그리고, 새를 기다리고, 그런 과정들이
너무 막막하고 힘들게만 느껴져요.
전 그냥 누군가 그려놓은 새장 속으로 날아 들어가서
마음 놓고 노래만 부르면 좋겠어요.
하지만 하루키가 그런 말을 했죠.
누구도 종교에서 기적만 잘라 가질 수는 없다고.
그러니 사랑에서 기쁨만 잘라 가질 수도 없겠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아요.
모든 것이 끝없이 되풀이된다면,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의외로 전 잃을 것이 별로 없는지도 몰라요.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었으니까.
잃은 게 있다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멈출 수 없었던,
그 불안했던 마음이겠죠. 그렇게 생각할레요."

작가 '황경신'이  '황인뢰' PD에게 보낸 메일 중일부...

2009/03/01 20:50 2009/03/01 2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