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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텔 5주년 기념 앨범 'We Will Be Together'의 첫번째 CD이자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선공개된 'Pastel Season Edition'.

 

파스텔뮤직의 지난 5년을 돌아보는 이 컴필레이션 앨범의 첫번째 CD에는 새로운 5년을 책임질 뮤지션들의 곡들이 담겨있습니다. 2006년과 2007년에 각각 발매된 'Cracker'나 '12 Songs about you'도 좋았지만 이번 'Pastel Season Edition'은 국내 뮤지션들로만 채워진, '베스트 라인업'에 가까운 위용을 보여줍니다.

 

'미스티 블루'의 '이란성 쌍둥이 자매'인 '벨 에포크(Belle epoque)'는 첫모습을 보여준 'Cracker'의 수록곡 'May'처럼 월(月)이름인 'December'로 돌아왔습니다. '미스티 블루'의 '은수'와 비슷하지만 더 건조한 느낌의 보컬은, 차분히 쌓이는 눈처럼 담담하게 떠오르는 추억을 슬프지 않게 노래하는 가사와 잘 어울립니다. 더불어 '벨 에포크'가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앨범'으로 결실을 맺길 기대해 봅니다.

 

3집을 통해 사운드의 미숙함을 벗어던지고 세련됨을 보여주면서 'Wanna be Casker'가 되고 있는 듯한 '허밍 어반 스테레오(Humming Urban Stereo)'는 '더 멜로디'의 '타루'와 만나 '스웨터'라는 곡을 들려줍니다. 제목으로는 뭔가 아기자기한 초기의 '허밍 어반 스테레오'같은 음악같으면서도 세련됨을 놓치지 않습니다. 여러 보컬들과 만나는 허밍은 어쩌면 'wanna be M-flo'인지도 모르겠네요.

 

2005년에 EP 'Rock Doves'를 발표하고 영화 OST에도 참여하며 활발한 모습을 보이다가 소식을 알 수 없었던 '짙은'은 파스텔뮤직에 새로 합류하면서 새로운 비상을 준비합니다. 모던 락 밴드에서 여성 보컬 파워가 압도적이었던 파스텔뮤직으로서는 호소력 짙은 보컬의 '짙은'을 영입하면서 약점을 보완해가고 있습니다.

 

일렉트로니카 영역에서 '허밍 어반 스테레오'라는 유망주를 영입해 3번 타자로 키우고 '캐스커(Casker)'라는 기량을 인정받은 4번 타자를 영입한 파스텔뮤직은 'Sentimental Scenary'라는 또 다른 유망주를 5번 타자로 세워 '클린업 트리오'를 완성합니다. 'True Romance'는 피아노와 일렉트로니카의 절묘한 만남 그리고 멋드러진 보컬의 featuring까지 '파스텔뮤직'의 'Next Big Thing'이 될 'Sentimental Scenary'의  잠재력을 100% 들려주고 있습니다. 한국형 IDM으로 디지털 싱글을 통해 입소문으로 알려지던 'Sentimental Scenary'의 풍부한 감성의 일렉트로닉을 CD로 만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티어라이너'의 프로젝트 밴드 'Low-End Project'는 파스텔뮤직의 컴필레이션 전문 프로젝트가 되어가는 느낌이네요. 'Cracker'와 '커피향 설레임'에 이어 이번 컴필레이션까지 말이죠. '보고 싶어서, 안고 싶어서, 만지고 싶어서'라는 긴 제목은 이 프로젝트가 긴 제목 지향 프로젝트라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이 프로젝트의 이미 발표한 두 곡의 제목이 '연애를 망친 건… 바로 나란 걸 알았다'와 'Love Is Weaken When It Comes Out Of Mouth'였으니까요. 어쩐지 '티어라이너'보다 정규앨범이 기대되는 'Low-End Project'의 이번 참여곡은 이 프로젝트다운 어설프면서도 진지한 첫사랑같은 느낌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애타게 기다리던 '미스티 블루(Misty blue)'는 '한쪽 뺨으로 웃는 여자'라는 심상치 않은 제목의 곡으로 돌아왔습니다. 보컬 '은수'의 읊조리는 보컬 때문인지 가사가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한 장면처럼 지나갑니다. 이제 '미스티 블루'는 소녀에서 여성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여전히 '미스티 블루'답지만 그 속에서 어른의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파스텔뮤직의 새로운 아이콘이 될 만한 '요조'는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만을 걸고 참여한 첫 곡 '하모니카 소리'를 들려줍니다. 그녀는 몇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 걸까요? '하모니카 소리'에서는 지금까지의 새침했던 그녀와는 다른, 담백해진 그녀를 들려줍니다. 추운 겨울의 따뜻한 햇살과도 같은 목소리입니다.

 

데뷔앨범이 좀 아쉬웠던 'Donawhale'은 '눈 내리는 소리'로 쌓인 아쉬움을 남김 없이 날려버립니다. 고요한 새벽의 눈 내리는 모습과도 같은 이 곡을 듣고 있으면 가슴 한 구석이 시려지고 누군가 그리워지는 기분입니다.

 

파스텔뮤직을 통해 얼마전 새 앨범을 발표한 '큰 형님' '스위트피'는 'Are You Ready?'라는 곡을 내놓았습니다. 보컬이 없는 연주곡이지만 '어린왕자'같은 그의 감수성이 느껴집니다.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배다른 형제 'Instant Romantic Floor'의 'Lie'는 나쁘지 않지만 '허밍'을 생각한다면 여전히 아쉽기만 합니다. 개인적으로 멤버간의 궁합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면 그런 언밸런스한 느낌이 이 밴드의 매력일까요?

 

파스텔뮤직에 합류한 거물 4번 타자 '캐스커'는 '달의 뒷면'으로 드디어 정식 파스텔뮤직 앨범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캐스커'다운 세련된 도시적 감수성에 융진의 호소력 짙은 보컬도 여전합니다. 3집이 조금 아쉬웠지만, 새로운 레이블과 함께할 이들의 새 앨범은 역시 기대됩니다.

 

파스텔뮤직 소속답지 않은 느낌의 변방 밴드(?) '불싸조'는 이미 발표했던 '지랄이 풍년이네'로 참여했습니다. 거친 락 사운드를 들려주는' 불싸조'이지만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일렉트로니카와 닿아있다는 느낌입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여성 목소리의 샘플링도 참 재밌습니다.

 
참여 밴드들 가운데 가장 오래 파스텔뮤직 소속인 '티어라이너(Tearliner)'는 'Regretto'라는 연주곡으로 참여합니다. 그 동안 드라마 음악에 참여하면서 갈고 닦은 내공일까요? 그의 연주음악은 잘 만들어진 크로스오버 곡을 듣는 느낌이네요.

'파니핑크(Fanny Fink)'의 '좋은 사람'은 '캐스커'의 손을 거쳐 전혀 다른 느낌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원곡이 조금은 심심한 느낌이었는데, 리믹스를 거치면서 '캐스커'다운 전자음들의 강렬함은 '주객전도'를 일으켜 마치 '캐스커'의 곡에 파니핑크의 '묘이'가 featuring으로 참여했다는 착각까지 들게 합니다. 그 만큼 '캐스커'의 센스는 대단합니다. 어둡고 무거운 발걸음은 '캐스커'라는 모퉁이를 돌면서 리드미컬하고 흥겨운 발걸음으로, 바로 180도 기분 변화 같습니다.

'어른아이'의 보컬 '황보라'는 '별이 되어'로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어른아이'는 밴드 포맷을 벗어난 그녀의 목소리는 더 짙은 감성과 자유가 느껴집니다. '파스텔뮤직'의 '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마지막 곡을 통해 드러나고 있을 법도 합니다.

이 앨범은 현재 파스텔뮤직을 대표할 만한 밴드의 대거 참여로 파스텔뮤직이 앞서 발매했던 컴필레이션 앨범들에 뒤지지 않는 내용물을 들려줍니다. 파스텔뮤직의 지난 5년을 함께 했던 밴드들과 2007년을 통해 새롭게 합류해 또 다른 5년을 꾸려나갈 밴드들이 함께 하면서 그 임팩트는 'Cracker'나 '12 songs about you'를 뛰어넘구요.

더구나 2004년 말부터 파스텔뮤직의 행보를 지켜본 저에게는 그 느낌이 남다릅니다. 홍대 라이브 클럽을 통해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다른 소속이었던 밴드들이 파스텔뮤직에 편입되고, 성장해 나가고, 또 해체되는 현장을 지켜본 증인(?)으로서 더욱 그렇네요.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는 5주년 기념 앨범입니다. 튼튼한 종이케이스에 담겨진 5장의 디지팩은 눈을 즐겁고 소장 욕구를 자극합니다. 하지만 파스텔뮤직을 통해 발매된 앨범을 여럿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느낌이 5장에 담긴 수 많은 곡들은 '적당함의 미덕'을 잃은 '과잉'이 아닌가 하네요. 수록곡들이 좋은 곡이지만 나머지 4장의 CD에는 소장 CD들과 겹치는 곡들이 상당하기 때문이죠. 'Pastel Season Edition' CD만 별도로 구매할 수 없는 점은 그래서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이 '음반의 상징성'은 대단합니다. 메이저 음반사가 아닌 작은 레이블이 이렇게 방대한 음원 모음집을 발표할 수 있다는 점은 가뜩이나 어려운 현재의 음반시장에서, 게다가 더더욱 어려울 인디음악 시장에서 '대단한 일'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겠습니다. 우리나라같이 '소수의 취향'이 무시되는 상황에서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귀를 만족시킬 만한 음원들을 찾기 어려운데, 파스텔뮤직은 그런 부분에서 꾸준한 생명줄과 같은 레이블 중 하나였으니까요. 파스텔뮤직이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이런 앨범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We Will Be Together'은 별점 4개입니다만 'Pastel Season Edition'만은 별점 5개를 주고 싶네요. 음악성과 대중성에서 한 인디 레이블 소속 밴드만을 모아서 이런 라인업의 음반을 냈다는 점은 한국에서 전무후무할 만한 일이 아닐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