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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single 'Scent of Orchid' 발표 후 다시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에 선보이는 '로로스(Loro's)'의 데뷔앨범 'Pax'.

'TuneTable Movement'의 2008년 첫 작품, '로로스'의 'Pax'가 드디어 발매되었습니다. 2006년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의 '숨은고수'로 발탁된 후, 앨범 계획이 있었지만, sinlge로 축소되고 이후 차일피일 미뤄지던 정규앨범이 결국 우여곡절 끝에 빛을 보는군요. 바람에 흩날리는 쓸쓸한 느낌의 디지팩 이미지는, 60분에 이르는 앨범 'Pax'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서 내용물을 살펴봅시다.

'첫 트랙 intro'는 다분히 (90년대 즈음에 유행했던) 트랙을 거꾸로 돌렸다는 생각이 드는 소리를 들려줍니다. 거꾸로 흐르는 소리는, 기억 저편으로 향하는 이 앨범의 입구와도 같습니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시작되는 ‘I say’의 ‘로로스’의 서정성을 잘 들려주는 곡입니다. 쓸쓸함을 담은 보컬은 먼지처럼 흩어지는 단어들 같고 그 잔영은 마음 속의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피아노와 첼로, 기타와 드럼의 충돌은 표현할 수 없는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뿜어내는 것만 같습니다.

'방 안에서'는 정중동(靜中動)'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동양적 정서가 녹아있는 곡입니다. 방 안에서 고요함 속에 움직이지 않는 화자이지만, 그의 가슴은 뛰고 그의 눈물은 흐르고 그의 마음은 소용돌이 칩니다. 첼로의 선율은 피아노를 보조하며 가슴 아린 서정성을 더하고 드럼은 가슴 치며 터질 듯한 격정을 표현합니다. 모든 파트가 폭발하는 절정에서 ‘제인’의 보컬은 마음을 위로하는 주문 같습니다.

'비행'은 하늘을 가르는 그 느낌처럼 젊은이의 기상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 하늘을 향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르는 비행, 하지만 그 비행은 실제 비행이 아닌 명상을 통한 ‘마음의 비행’일지도 모릅니다. 보컬 없이 연주만 흐르는 곡으로, 시냇물이 강을 만나고 강이 바다를 만나듯,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느낌은, 일본 밴드 ‘Mono’의 연주에서나 느껴보았을 찬란한 ‘포스트락’의 인상을 강하게 남깁니다. ‘포스트락’은 밴드 ‘로로스’의 지향점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네요.

‘It’s raining Pt.1’은 Pt.2의 ‘intro’ 같은 곡입니다. ‘It’s raining’은 앞선 ‘방 안에서’와 2006년 싱글로 공개되었던 ‘너의 오른쪽 안구에서 난초향이 나’와 더불어 로로스 초기의 서정성이 담겨있는 3대 인기곡이기도 합니다. 곧 쏟아질 법한 비를 머금고 밀려드는 먹구름과 천둥이 쳐도 이상할 것 없는 어두운 하늘, 그리고 잿빛 거리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It’s raining Pt.2’는 키보드는 거리의 흐름을 첼로는 마음의 흐름을 그려냅니다. 간간히 들리는 드럼 심벌즈의 소리는 멀리서 들리는 천둥이 연상됩니다. 비가 내리는 거리, 무관심한 사람들 속을 걷는 쓸쓸한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를 찾은 듯, 발걸음은 빨라집니다. 단지 그림자일 뿐이었을까요?

‘Doremi’는 앨범 수록곡들 중 독특한 느낌의 곡으로 홍일점 ‘제인’의 취향이 많이 반영된 곡이라고 생각됩니다. ‘제인’은 ‘피카’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하면서 월드뮤직 같은 음악들을 많이 들려주어왔고, 이 곡도 그런 분위기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주문과도 같은 독특한 그녀의 보컬과 드럼이 만들어내는 리듬은 어떤 부족의 신비한 주술을 듣는 느낌입니다.

‘바람’, 피아노 연주에 드럼과 기타 연주가 곁들여진 크로스오버 형식의 곡입니다. 4분 정도되는 길이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지만 대부분의 로로스의 곡으로서는 짧게 느껴지네요.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은 점에서 크게 인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또 그런 자극적(?)이지 않은 점이 이 곡의 미덕이 아닌가 합니다.

앨범 타이틀과 같은 제목의 ‘Pax’는 라틴어로 ‘평화’를 의미합니다. 기도하는 듯한 남녀 두 보컬과 가사, 오르간처럼 들리는 평온한 연주는 고풍스러운 성당과 평화를 위한 기도를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Pax’의 사전적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강국 등의 지배에 의한 국제적 평화’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교와 함께 서양 문화의 뿌리가 되는 ‘로마’를 이야기할 때 듣게 되는 ‘Pax Romana’가 좋은 예가 되고, 현대에서는 ‘Pax Americana’라는 말이 종종 들을 수 있죠. 군사경제적인 폭력인 제국주의와 맞물려 그리스도교가 행한 문화종교적 폭력에 대한 반어일까요? 혹은 로로스가 꿈꾸고 있는 것은 대중음악계의 ‘Pax Lorosana’ 건설일까요?

이어지는 두 곡은 single에 수록되었던 곡들입니다. ‘너의 오른쪽 안구에서 난초향이나’라는 긴 제목의 곡에서 폭발할 듯한 로로스의 서정을 들려줍니다. 각 악기들이 자유로우면서도 조화를 이뤄내는 점이 로로스표 음악의 매력입니다.

‘Habracadabrah’이라는 제목은 주문의 한 구절로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의미가 있답니다. 느슨한 주문 부분과 급격한 연주 부분의 대비가 인상적입니다. 주문 외에도 알 수 없는 짧은 단어들은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흑마술에 대항하는 선한 마술사의 이야기는 아닐까요? 비교적 뚜렷한 기승전결은 그런 생각이 들게 합니다.

마지막 곡 ‘She didn’t go to the party’은 어두운 방안에서 반짝이는 꼬마전구 같은 곡입니다. 파티에 가지 않은 그녀가 누워서 보고 있던 것은 바로 반짝반짝 꼬마전구가 아니었을까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무슨 꿈을 꾸었을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로로스'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 음악계에서 상당히 독특한 존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이루어진 락 밴드의 기본적인 포멧에 키보드와 첼로의 전면으로 내세운 밴드 구성이 그렇습니다. 게다가 뉴에이지의 서정성과 크로스오버의 양식에 포스트락과 월드뮤직을 첨가한,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듣는 입장에서 선택이 폭이 좁은-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연주는 좋았지만, 보컬의 역량은 조금 아쉽습니다. 공연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아쉬움이 앨범에서는 기술의 힘을 빌려 멋드러지게 나올 법도 했지만 그러지 않은 점은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라이브와의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더 멋진 앨범을 기다렸을 팬들에게는 아쉬움이 좀 더 클 법도 하지만, 앨범 발매의 즐거움을 넘을 수는 없겠죠.  라이브를 듣고 있으면 정말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드는 장엄하고 서정적인 '로로스'의 음악들, 이제 더 큰 날개를 달고 널리 퍼져나갈 때입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