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텔뮤직으로의 이적 후 정식으로 인사하는 '캐스커(Casker)'의 2년만의 정규 앨범 'Polyester Heart'.

사실 '캐스커'가 '파스텔뮤직'에 입성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주로 말랑말랑하고 정말 파스텔 톤의 음악을 추구하는 파스텔뮤직에 한국 일렉트로니카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있는 '캐스커'가 합류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었거든요. 물론 파스텔뮤직에도 'Humming Urban Stereo'같은 비슷한 계열의 뮤지션이 있었지만, Humming Urban Stereo가 들려주는 말랑말랑함은 파스텔뮤직의 이미지와 크게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캐스커의 음악들은 좀더 성인의 취향(?)에 가깝고 좀더 세련된 이미지이니까요.

하지만 몇몇 컴필레이션 및 프로듀싱, 피쳐링 등으로 파스텔뮤직의 앨범들에 참여하면서 의외로 파스텔뮤직과 '코드의 일치점'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이렇게 'Polyester Heart'로 등장했습니다.

'점멸하는 등'과 '흐느낌'의 intro '역광'에 이어지는 '빛의 시간'은 오랜 갈증을 날려버릴 만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흩날리는 듯한 융진의 보컬은 서로 융화되지 못하고 서로를 산란시킨 두 사람의 빛을 안타깝게 들려줍니다.

'You'가 캐스커다운 도시적 느낌의 세련됨이 살아있는 트랙이라면 이어지는 '칫솔'은 많이 다른 분위기의 트랙입니다.  '칫솔'은 따뜻함과 사랑이 담겨있는 목소리를 통해 아스라한 추억들을 더욱 안타깝게 들려줍니다. '칫솔'이라는 정말 평범한 소재를 통해 소중했던 기억들을, 차마 다시 펼쳐보지 못하는 일기장처럼, 달콤쓸쓸하게 노래합니다.

'2월'은 '겨울의 끝'이듯, '사랑의 끝'에 노래합니다. 담담함으로 시작되어 점점 격양되어가는 분위기가 인상적입니다. '아무도 모른다'는 짧은 동요를 부르듯 툭툭 던지는 보컬이 독특하며, 이어지는 '비밀'과 더불어 '의사소통의 부재'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무려 '하동균'이 참여한 '너를 삭제'는 다분히 대중성을 노린 트랙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하동균의 참여는 그다미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캐스커의 음악이 아니다'라는 느낌이 든 사람은 저뿐인가요? 잔이 깨지는 효과음으로 시작되는 싱글로 선공개 되었던, '틈'은 '관계의 균열', 그 '틈'에 대해 노래합니다. '이명'은 캐스커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라틴풍의 연주곡입니다.

'만약에, 혹시'는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니카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캐스커표 발라드' 트랙입니다. '만약에'와 '혹시'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느껴지는 두 단어는 가사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정법을 통해 이야기하는 가사에 두 단어는 어디에 들어가더라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사랑에 대한 소망과 기다림의 자세는 평온하지만 너무나 깊게 느껴집니다.

'빙빙'은 재밌는 제목만큼이나 -결국 어느 부분에서는 슬픔과 어둠이 느껴지는 다른 트랙들과 다르게-모든 면에서 이 앨범 수록곡들 중 유일하게 밝은 트랙입니다. 'Adrenaline'은 제목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음악에 몸을 맏기고 가볍게 몸을 흔들만 한 트랙이구요.

'너와 나'는 '전주곡'을 의미하는 'prelude'라는 부제처럼 'Polyester Heart'를 위한 prologue입니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Polyester Heart'의 어조는 '칫솔'의 어조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점이 재밌습니다. '칫솔'의 어조가 '추억만은 아름답도록'이라면, 이 곡은 몰아부치는 '분노의 역류'에 가깝습니다. 인간의 트라우마를 받아들이는 5단계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중 앞의 두 단계라고 할까요?(칫솔은 '타협과 우울'의 어느 즈음이겠구요.)

이어지는 'hidden track'은 앞선 Polyester Heart의 'epilogue'격으로 본곡의 종반부에 이어지는 분위기로 진행됩니다. 차분한 융진의 어조와 간결해진 사운드는 5단계 중 '우울과 수용'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게합니다.

홀로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보여준 1집 '철갑혹성', 보컬 '융진'이 합류하며 새로운 스타일로 완성된 2집 'Skylab', 좀 더 세련되졌지만 아쉬웠던 3집 'Between'까지, 캐스커의 음악들은 언제나, 3집의 타이틀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 대해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한 캐스커의 탐구들은 4집 'Polyester Heart'에서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본인의 음악보다도 프로듀싱과 피쳐링으로 더 바빠보이는 '파스텔뮤직의 플레잉 코치(?)' '캐스커(이준오)'와 역시 피쳐링의 꾸준히 소식을 전하는 '융진', 두 사람의 끈끈한 파트너쉽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좋은 음악들 꾸준히 들려주었으면 합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