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과 웹진 '가슴네트워크'가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가운데 유일한 일렉트로니카 음반이었던 '클래지콰이(Clazziquai Project)'의 데뷔앨범 'Instant Pig'.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이라고 해서 무조건 신봉할 만하지는 않지만, 100장의 앨범 가운데 '유일한 일렉트로니카 음반'이라는 점은 큰 상징을 갖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일렉트로니카 역사가 짧다는 반증이 되지만, 그 극히 짧은 역사 속에서 100대 명반에 뽑힐 만큼 잘 만들어진 음반이라는 것이죠. 더구나 일렉트로니카 쪽에는 상당히 짠, 철지난 음악들을 잡고 늘어지기 좋아하는 평론가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점은 나름대로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일렉트로니카/라운지 음악이 아직은 대중에게 생소하던 시기에 그 매력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 이 음반의 성과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음반으로 '러브홀릭'과 함께 대한민국 음악시장에서 음악성으로 인정받는 대표적인 레이블 '플럭서스뮤직'의 대표 밴드가 된 점에서도 이 음반의 또 다른 가치입니다.

지금까지 식상했던 대중가요에 젖어있는 청자를 비웃기라도 하는 제목의 'You Never Know'를 시작으로 클래지콰이의 음악 세계가 시작됩니다. 가사에서 흔하게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자 세 번째 트랙의 제목인 'Futuristic'을 외치는 것은 의도적인 장치였을까요? '내게로 와'는 호란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트랙입니다.

'Futuristic'은 음반 녹음에만 참여하는 또 다른 여성 보컬이나 남성 보컬 알렉스의 친누나인 '크리스티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트랙입니다. 영화에서 샘플링했다고 생각되는 인상적인 대사로 시작되는 'After Love'는 일렉트로니카와 접목된 클래지콰이식 발라드를 들려주는 트랙입니다. 여유로운 일상을 노래하는 'Novabossa'는 제목처럼 보사노바풍의 트랙이고,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이라고 할 수있는 'Sweety'가 이어집니다. 알렉스와 호란의 듀엣과 사랑스러운 가사는 제목처럼 달콤한 라운지를 만들어냅니다.

다시 크리스티나의 보컬과 그루브한 리듬이 어우러진 'Stepping out'에 이어지는 'Tattoo'는 제목처럼 인상적인 트랙입니다. 보컬리스트로서 기교가 상당한 호란의 기교를 절재한 세련미가 느껴지는 보컬이 인상적입니다. 더불어 이 앨범 수록곡의 절반 이상의 곡에서 단독 혹은 공동 작사로 참여한(이 곡에서는 단독 작사) 호란의 작사 실력 또한 빛이 납니다.

스타일리쉬한 보컬과 트랜스의 느낌도 가미되어있는 'I will never cry'는 클럽 음악과 대중음악의 묘한 경계선 위를 지나고 '세련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클래지콰이표 음악'의 한 축을 들려줍니다. 위태위태한 두 보컬의 '스타일'은 1집 수록곡들 가운데 최고라고 생각되구요. 'Gentle Rain'은 말이 필요없는, DJ클래지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트랙입니다. 혹시 원곡이 외국곡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탁월하며 어쿠스틱으로 연주되는 멜로디와 수려한 보컬 듀엣, 그리고 이별의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하는 아름다운 가사는 클래지콰이표 음악의 또 다른 축인 '신선함'을 대표합니다.

'After Love'의 Extra Remix를 지나 'Flower'는 제법 무거운 비트와 어우러진 알렉스의 보컬의 보컬과 호란의 코러스가 빛나는 클래지콰이식 발라드의 연장선에 있는 트랙입니다. 두 여성 보컬의 매력을 각각 다시 한 번씩 느낄 수 있는 'Play Girl'과 'My Life'가 이어지고, 마지막은 보너스 트랙인 'Cat Bossa'가 담당합니다. 크리스티나의 보컬에서 앞선 트랙들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의외의 천진함을 들을 수 있고, 이는 고양이이 귀여운 소망이 담겨있는 가사와 함께 상승효과를 일으킵니다. 'Gentle Rain'에 이어 DJ클래지의 센스가 다시 빛나는 트랙입니다.

한 곡 한 곡의 완성도 뿐만아니라 다양한 분위기의 곡들이 잘 녹아들어서 앨범 전체의 완성도에서도 상당한 완성도를 들려줍니다. '세련됨'과 '신선함'을 적절히 배합하여 완성된 'Instant Pig'는 제목처럼 짧은 순간 즐기고 잊혀질 앨범이 아닌 오래 즐길 만한 앨범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클래지콰이'을 단숨에 대한민국 대표 일렉트로니카 밴드로 격상시켰구요.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일렉트로니카와 라운지의 조용한 반란, 그 선봉는 클래지콰이가 있었습니다.